전자가속기 이용해 ‘VOCs 가스→다른 물질’ 전환
사업화, 아직까지 장애물 많아…해결해 나가는 중

[에너지신문] 전자가속기는 전자를 높은 에너지로 가속시켜 전자선을 발생시키는 장치다.

전자의 가속에너지에 따라 300킬로전자볼트(KeV) 이하의 ‘저’, 300KeV 초과 3메가전자볼트(MeV) 미만 ‘중’, 3MeV 이상 ‘고’ 에너지 전자가속기로 구분되는데, 가속 에너지가 높을수록 전자의 속도는 빛의 속도에 가까워지고 투과도 또한 커진다.

전자선을 물질에 조사하면 물질에 다양한 물리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전자선을 고분자에 조사하면 가교(cross-linking), 분해, 그래프팅(grafting) 반응 등 다양한 물성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첨단 소재를 만들 수 있다.

악취나 대기 오염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가속기 안에서 전자빔을 쪼인 악취나 오염물질은 화학결합이 절단되면서 분자구조가 깨지며, 악취나 오염물질도 근원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렇듯 전자가속기의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한 만큼 전자가속기를 이용한 연구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으며, 동시에 상용화를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하다.

저에너지 전자선 기술 상용화, 대기 정화의 가능성을 보다

지난 2016년 봄 어느 날, 필자는 악취 처리 및 컨설팅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김 박사, 우리나라 악취 문제가 너무 심각해서 해마다 민원은 급속히 늘어나고 있는데 현재의 기술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전자선 기술을 이용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이 한 통의 전화가 대기 오염 해결에 전자선 기술이 본격적으로 활용되는 출발점이 될지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다. 당시에도 전자선 기술은 이미 황산화물(SOx), 질소산화물(NOx), 휘발성유기화합물(VOCs) 처리 등 대기 정화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었고 중국, 폴란드 등에서는 대형플랜트 공장에 설치돼 있었다.

하지만 1MeV 이상의 중·고 에너지 이상의 전자가속기를 이용하다 보니 구축 비용이 비싸고 설치 부지가 컸다. 아울러 방사선 차폐 등 여러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인해 더 이상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않았다.

당시 필자가 속한 연구팀은 200KeV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이용해 나노입자 제조를 위한 연구를 수행 중에 있었다. 필자는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활용하면 구축 비용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차폐도 쉽고 소형화도 가능해 운영이 상당히 쉬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침 연구원이 운영하는 기업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악취제거 분야에 대한 저에너지 전자가속기의 적용 가능성을 확인했고, 연속 처리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처리 용량이 분당 50리터(L)에 불과해 상용화는 불가능했다.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는 전자의 가속에너지가 작아 투과 깊이에 한계가 있었고, 조사 면적도 작아 처리용량 확대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연구팀은 반응기 내부에 나선형 구조를 도입해 반응기를 통과하는 공기에 전자빔이 골고루 균일하게 조사할 수 있도록 설계함으로써 낮은 투과 깊이 문제를 극복하고, 조사면적을 획기적으로 확대했다.

▲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기반 대기정화 융합시스템 상용화 모델.
▲ 저에너지 전자가속기 기반 대기정화 융합시스템 상용화 모델.

지난 2020년말 시작품 제작에 성공한 이후 상용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시스템을 개선했고, 2023년 드디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해 파일럿 테스트를 수행하면서 상용화를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이용해 악취나 VOCs를 처리한 사례는 보고되지 않아 감히 우리가 ‘세계 최초’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사업화를 위해서는 아직 넘어야 할 장애물이 많다. 우리 연구팀은 그러한 장애물들을 하나씩 해결해가고 있으며, 조만간 전자선 기술의 사업화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선 기술로 지구온난화 문제 해결까지

온실가스(CO2, N2O, CH4)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다. 전 세계는 매년 기록적인 폭염을 겪으며, 지구 평균온도 또한 해마다 갱신되고 있다. 일부 국가는 바닷물에 의해 침수되는 지역이 나타나고,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지구 탄생 이후 가장 심각한 위기에 빠진 지구를 우리는 구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22개국은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를 통해 원자력 발전량을 지난 2010년 대비 3배 더 늘리는 데 서명했다. 원자력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이러한 지구의 위기를 인식하고, 지난 12월 온실가스를 저감하기 위해 방사선 기술을 활용하고자 긴급 컨설팅 회의를 개최했다. 필자도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이용해 대기 정화 융합시스템을 개발한 개발자 자격으로 회의에 초청받았다.

회의에 참석해서는 향후 IAEA의 역할과 새로운 프로젝트 발굴 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필요한 기술들을 논의했는데, 논의된 내용은 크게 4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 전자가속기에서 가속된 전자가 공기 중으로 인출돼 반응기에 전자빔이 조사되는 장면.
▲ 전자가속기에서 가속된 전자가 공기 중으로 인출돼 반응기에 전자빔이 조사되는 장면.

4가지 논의는 △전자선을 이용한 온실가스 전환 기술 △온실가스 캡쳐, 환원, 전환 및 재활용을 위한 재료에 관한 기술 △생물학적 처리를 위한 재료 및 방법에 관한 기술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과 연구자 네트워크 구성이다.

앞서 소개된 3가지 기술은 방사선 기술을 이용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고, 연구자 네트워크도 타 연구 분야와 비교해 쉬울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전자선을 이용해 온실가스를 직접 다른 물질로 전환하는 것에 대해 다수의 연구가 진행됐으나, 괄목할 만한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이용한 연구는 실용적 연구로 유명한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를 제외하면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앞서 언급한 저에너지 전자가속기를 이용한 악취 및 VOCs 제거 기술을 통해 암모니아(NH3), 황화수소(H2S), 이소프로필알코올(IPA) 등의 VOCs 가스를 다른 물질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아직까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한 저에너지 전자선 기술은 넘어야 할 산이 무척 많으나, 차츰 해결해 나간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더 늦기 전에 관련 기술을 신속히 연구해 온실가스 저감 기술의 선두주자로 나서야 한다. 저에너지 전자가속기가 위기의 지구를 구할 미래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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