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전지, 도시형 분산전원 핵심 자리 잡아
도심 분산전원, 촘촘한 에너지 네트워크 재편
[에너지신문] 도시 한복판에서도 소음과 매연 없이 24시간 돌아가는 소형 발전소로서, 주유소 옥상, 체육관 옆 유휴부지, 주거지 인근 공공시설까지, 도시의 빈틈을 에너지 거점으로 바꾸는 발전용 연료전지를 주목해야 한다.
서울 금천구 ‘박미주유소’의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은 300kW급 연료전지와 20.6kW 태양광을 결합해, 한 달 반 만에 연료전지만으로 약 313MWh를 생산했고(연간 환산 약 2500MWh), 같은 모델이 양천구 개나리주유소로 확산됐다.
도심 내 MW급 프로젝트로는 인천 서구 ‘신인천빛드림’ 80MW 단지와 추가 20MW 단계사업 등이 상징적이다. 강원 동해시는 4.2MW SOFC에서 나오는 배열(廢熱)로 인근 수영장 난방·온수를 공급하는 생활형 열병합(CHP)을 도입했다.
더 가까이 들어오면 ‘동네 목욕탕 보일러를 연료전지로 바꿔 전기·온수를 동시에 얻는 아이디어처럼 주유소·체육관·도서관·복지관 등 생활 인프라와 결합한 설치가 가능하다.
모듈(수십~수백kW) 단위로 맞춤 증설이 쉬워 부지 제약이 적고, ESS(배터리)와 동시 설치로 피크저감·정전대응·전압안정 같은 계통 기여도까지 높일 수 있다. 이런 작은 성공과 아이디어가 모이면 도시의 빈틈은 ‘우리 동네 발전소’라는 촘촘한 에너지 네트워크로 재편된다.
왜 연료전지인가:도심 분산전원의 ‘맞춤형’ 해법
연료전지는 연소가 아니라 전기화학 반응으로 전기를 만든다. 전기효율은 기술·운전조건에 따라 대략 40~60% 범위이며, 열을 함께 쓰는 CHP 운전으로 총효율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다.
무엇보다 이용률이 높다. 도심형 발전용 연료전지는 연중 가동률을 높게 유지하는 데 유리하고, 모듈 단위 확장이 쉬워 대규모 부지나 굴뚝 없이 도시 인프라와 공존성이 높다.
다만 고온형(특히 SOFC)은 급격한 램핑·다회 기동에 제약이 있어, 기본적으로는 상시운전에 최적화돼 있고, 빠른 응답은 ESS 결합으로 보완하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다.
분산전원이 주는 사회·경제·환경 편익
연료전지와 같은 분산전원은 다음과 같은 사회·경제·환경 편익을 국민경제에 제공한다.
첫째, 송·변전 투자 회피(또는 지연). 분산전원은 수요지 인근에서 생산·소비를 맞물리게 해 혼잡 ·손실을 줄이고, 여건에 따라 송·배전 설비 증설을 대체·유예하는 비선로 대안(NWA)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매년 약 19TWh 내외의 송·배전 손실이 발생해 왔고, 손실 자체의 구조적 저감은 곧 자원 절감이다.
둘째, CHP 결합 시 연료·온실가스 동시 저감. 국내에서 주로 설치되는 발전용 연료전지 유형의 CO2 배출계수는 261g/kWh(열활용률 72% 전제) 사례가 확인되며, 이는 국내 LNG 복합발전 평균(389g/kWh 추정)보다 낮다.
다만, 전기만 비교하거나 특정 효율 가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CHP 전제에서의 상대적 우위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단, 청정수소로 전환하면 운전 단계 배출은 ‘제로’에 가까워진다.
셋째, 신뢰도·복원력. 다수의 소규모 전원은 송전선·대형발전 정지 위험을 분산하고, 필요한 시 마이크로그리드로 지역 공급을 담당할 수 있다.
국내 비상용 디젤발전기는 업계 추정 약 28GW 수준으로, 연료전지가 이런 설비를 점진 대체하면 상시 효율·대기 질·안전성이 함께 개선된다.
넷째, 주민·지자체 참여형 비즈니스. 주유소·체육시설·공공시설 등 생활 밀착형 부지에 설치하면 ‘우리 동네 발전소’의 체감이 커지고, 배열을 지역 난방·온수에 쓰는 생활형 혁신이 가능하다. 동해시 수영장 난방 모델은 그 상징적 출발점이다.
그런데도 시장은 이 가치를 충분히 보상하지 않는다. 분산전원의 계통·환경 편익 다수는 여전히 ‘외부효과’로 남아 있다. 특정 지역 분산전원 덕에 송전선 증설을 유예해도 그 가치가 사업자 수익으로 환류하지 않는다.
현행 체계에서 연료전지는 재생자원과 한 바구니에 묶여 가격 변동성 위험을 안아 왔고, 유연성·신뢰도 같은 공공가치는 가격 신호로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회적으로는 필요한데 시장에서는 과소공급이 발생한다.
답은 ‘편익의 사회적 내부화’ : 캘리포니아 SGIP의 교훈
캘리포니아 SGIP(Self-Generation Incentive Program)은 분산자원의 계통·환경 가치를 수치화해 재정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대표 모델이다. 2025년 기준, 예산의 88%가 저장장치(ESS)에 배분되고, Generation(청정수소 기반 연료전지 등)은 12%다.
연료전지에 대한 인센티브는 기본 $2.00/W + 복원력 $2.50/W가 적용된다. 이때 모든 가스 기반 발전기는 인센티브 수령을 위해서는 100% 청정수소 사용이 의무화돼 있다.
여기서 핵심은 세 가지다. △가치를 숫자로 평가, △안정 재원으로 보상, △계통취약지역·취약계층·저탄소 고효율 자원으로 정밀한 지원 방안 설계 등이다.
한국의 현주소와 과제 : 특별법 이후 ‘실행 설계’ 방향
한국도 2023년 제정돼 2024년 6월 14일 시행된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과 시행령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 법은 분산전원의 편익 산정과 비용 보전, 분산특화지역에서의 전력 직접거래와 지역별 요금 제도를 가능하게 했다.
동시에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CHPS)는 2024년 첫 입찰에 이어 2025년 3000GWh 규모의 2차 공고로 연료전지 발전에 새로운 수익 경로를 열어줬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가격 신호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 그리고 편익 계량과 보상 간의 정합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여전히 보완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그리고 앞으로의 보완은 ‘숫자’와 ‘시장’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설계돼야 한다. 우선, 송·배전 회피, 혼잡·손실 감소, 신뢰도와 예비력 확보, 환경 편익 등을 통합적으로 반영하는 편익 가치평가 모델을 구축해 지역·시간대별로 수치화하고, 이를 인센티브 단가와 사업자 선정의 객관적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재원은 전력산업기반기금, 배출권 경매수입, 특별회계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 재원을 활용해 경기와 정치 사이클에 흔들리지 않는 상시 프로그램으로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정책적으로는 재생에너지 보급 지원과 분산전원의 계통 편익 보상을 분리, 각각의 기능을 명확히 하는 검토가 요구된다.
아울러 송전망 취약 권역, ESS 결합형, 저탄소·고효율 기술 등 계통 기여도가 큰 자원을 우선 선정하고, 투명한 공모와 영향평가 절차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치 보조와는 별도로 용량가격, 보조서비스, 피크자원 조달시장과 연계해 분산자원이 민간 차원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지속해서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 과제이다.
연료전지를 ‘도시의 기저 전원’으로 대우할 때
연료전지는 도심이 원하는 거의 모든 조건인 높은 이용률, 작은 면적, 낮은 오염, 열병합, 모듈 확장성 등을 갖춘 드문 분산전원이다.
다만, 고온형 연료전지는 급격한 램핑·빈번한 기동에 제약이 있어, 상시운전+ESS 결합이라는 ‘현실적인 기저+유연성’ 조합이 합리적이다. 정책은 이제 ‘우리 동네 발전소’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를 제값에 사주는 체계로 이동해야 한다.
출발점은 편익의 정량화와 상시·안정 보상이다. 그러면 연료전지는 도시형 분산전원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 송전망 투자 일변도의 해법을 보완하고, 탄소중립과 전력망 안정화를 함께 이끌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이미 입증된 가치를 인정하는 제도적 결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