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수소산업 성장 전략
[에너지신문] 전 세계가 2050 탄소중립(Net Zero)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소는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산업 부문 탈탄소화를 촉진하는 핵심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2019년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 발표 이후 수소 보급과 산업육성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2019년 5083대에 불과했던 수소차 보급은 2022년말 3만 7930대로 약 7.5배 증가했으며 수소충전소는 같은 기간 34기에서 2024년 기준으로 408기로 늘어 12배 가까이 확충됐다.
또한 발전용 연료전지 보급은 1129MW로 세계 1위를 기록했고 국내 수소산업 종사자는 3만4000명 이상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수소산업의 급성장은 곧 수소 안전관리체계의 고도화 필요성을 느끼게 한다.
기존 산업 현장에서만 다뤄지던 수소가 대규모 모빌리티, 발전, 도시 인프라로 확산되면서 ‘안전이 곧 산업경쟁력’이라는 인식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정부는 2019년 ‘수소안전관리 종합대책(로드맵 1.0)’을 통해 충전소·연료전지 등 초기 인프라 안전관리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2023년에는 ‘수소안전관리 로드맵 2.0’을 발표해 한 단계 진화된 안전 전략을 내놓았다.
로드맵 2.0은 총 3대 전략, 10대 분야, 64개 세부과제로 구성된다. 이미 2023년과 2024년 사이에 20개 과제가 완료됐고 대표적으로 △융복합 수소충전소 안전기준 적용대상 확대(모든 LPG 충전소에 수소충전소 설치가능) △대용량 암모니아 저장탱크 이격거리 합리화 △도심형 수소충전소 안전거리 완화 등이 실현됐다.
수소경제의 본격 확산은 청정수소 공급망 구축과 액화수소 기술 상용화에 달려 있다.
청정수소의 공급에 있어서 2030년까지 75만톤, 2050년까지 200만톤 도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단가는 2030년 3500원/kg에서 2050년 2500원/kg 수준까지 낮추는 것이 정책 목표다.
안전관리 강화 필요조건 불구 지나친 규제 기술 상용화 가로막아
데이터 기반 안전성 검증 후 합리적 수준의 제도 전환 과정 필요
액화수소는 기체대비 부피가 1/800로 줄어 대량 저장·운송에 유리하지만 -253℃ 초저온 특성으로 인해 저장탱크, 운송선, 충전소 전반에 새로운 안전기준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27종의 임시 안전기준을 바탕으로 액화수소 실증사업을 추진 중이며 2025년과 2026년 단계적으로 제도화할 계획이다.
예컨대 올해 1월 액화수소 저장탱크와 기화장치 등 5종의 상세기준이 마련됐고 하반기에는 액화수소 플랜트, 충전소, 운반차량 관련 상세기준(12종)과 2026년 액화수소 판매, 이동식 충전소 관련 상세기준(10종)이 마련돼 제도화가 완료될 예정이다.
이는 단순한 기술 검증을 넘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 기반 조성이라 할 수 있다.
수소 안전관리 강화는 필요조건이지만 지나친 규제는 기술 상용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로드맵 2.0은 현장 실증을 통해 안전성과 편의성을 함께 확보하는 규제혁신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도심형 충전소의 한정된 부지 문제를 고려해 방호벽 등 안전시설을 전제로 안전거리 규제를 완화한 것과 수소충전소에서 운전자가 직접 충전할 수 없으나 실증사업을 거쳐 긴급차단장치·압력방출설비 등 안전장치의 보완을 조건으로 셀프충전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규제혁신은 단순히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의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한 후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도로 전환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그러나 기술과 제도가 마련돼도 결국 현장을 움직이는 것은 사람이다. 이에 정부는 수소안전 아카데미(2024년 완공)와 수소안전 뮤지엄(2022년 개관)을 통해 수소산업 종사자에 대한 전문 교육과 대국민 수소 홍보를 병행하고 있다.
이는 수소 안전문화를 형성해 나가는 데 있어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수소용품검사인증센터, 수소제품시험평가센터, 액화수소검사지원센터 등 수소안전 핵심인프라를 충북·전북 지역에 구축해 기업의 실증시험과 국제인증 획득을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또한 사업자에게 고성능 점검장비를 대여하고, 주민 체험형 교육을 확대해 안전에 대한 사회적 신뢰 기반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주민의 수용성 제고와도 연결된다. 이는 수소가 안전하다는 경험적 신뢰를 국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적절하다고 평가된다.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로 수소법을 제정하고 전주기 안전관리 로드맵을 수립한 나라다. 이제는 그 경험을 기반으로 청정수소·액화수소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
국제 경쟁이 치열해지는 지금, 안전은 비용이 아니라 기술경쟁력을 담보하는 투자이며 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가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로 나아가기 위한 성장전략이다.
수소경제의 미래는 기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안전이 곧 경쟁력’이라는 철학이 함께할 때 대한민국은 세계 수소시대의 확실한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