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최우선 과제…‘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에너지신문] 이번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고, 이에 따라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이 구체화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단순한 행정조직 개편을 넘어,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 그리고 국가경제의 발전이라는 복합적 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하나의 실험이다.
그동안 기후정책은 환경부, 에너지 정책은 산업부로 나뉘어 추진됐고, 이원화된 구조로 인해 온실가스 감축은 매번 계획보다 미흡했고, 재생에너지 보급 또한 지지부진했다는 등 기후변화 대응에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기후위기 대응은 환경부의 ‘기후탄소정책실’, 에너지 공급과 수급은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정책실’이 맡아왔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현실은, 온실가스 배출의 90% 이상이 에너지·산업 부문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환경부가 기후대응을 강조해도 산업부가 전력수급 계획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성과를 낼 수 없다. 실제로 지난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도 환경부의 요구를 모두 반영하지 못했다.
결국 정책의 주도권을 한데 모아 ‘컨트롤타워’를 세우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고,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 논의로 이어진 것이다.
문제는 구체적 설계다. 국회에 제출된 정부조직법 개정안만 해도 제각각이만 현재로서는 산업부의 에너지 부분을 떼 내서 환경부에 흡수시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사무 범위 역시 혼란스럽다. 기후변화 정책을 어디까지 포함할지, 지하자원 관리 권한을 부처 간 어떻게 나눌지가 여전히 풀어야 할 쟁점이다. 제도적 기초가 정리되지 않은 채 출범을 서두르면, 새로운 부처가 또 다른 불협화음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는 원전이 있다.
지금까지는 산업부가 원전 정책을 총괄했지만, 앞으로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를 맡게 된다. 환경부 출신 장관이 부처를 이끌 경우, 규제 논리가 강화되면서 신규 원전 건설은 사실상 후퇴할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037~2038년 신규 원전 2기와 SMR 1기를 도입한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지만, 실제로는 부지 선정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신설 부처가 정비되는 동안 정책 결정은 늦어질 수밖에 없고, 환경단체와 지역사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최근 대통령은 “신규 원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못 박으면서 신규 원전 추진 중단,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직면한 또 다른 과제는 규제와 진흥의 공존이다. 한쪽에서는 기후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외치고, 다른 한쪽에서는 에너지 안보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이 두 기능이 같은 부처 안에서 화학적으로 결합하기는 쉽지 않다. 한쪽이 종속되거나 무시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부처 통합은 행정적 혼란을 동반한다. 기상청,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 한국전력, 에너지공단 등 주요 기관들을 어디에 소속시킬지도 풀어야 할 숙제다. 조직이 비대해지면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반대로 소규모로 출범하면 정책 실행력이 떨어질 수 있다.
새로운 부처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조직 문화와 인사 관행이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재생에너지 확대는 더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비용이다. 태양광과 풍력의 발전단가는 원전에 비해 최대 6~7배 높다.
현재 신재생에너지의 전력 비중은 10% 안팎에 불과한데, 이를 빠르게 늘리려면 전력망 확충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그 결과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제조업과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 축이다. 이들에게 에너지 비용은 곧 경쟁력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산업 경쟁력을 해치지 않으면서 기후위기 대응까지 병행할 수 있을지, 그 균형이 최대 관건이 될 것이다.
기후위기 컨트롤타워 역할…‘기후에너지환경부’의 필요성
산업경쟁력·국민부담·기후위기 대응 등 3가지 과제 해소해야
최근 독일 경제를 두고 ‘유럽의 병자’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그 배경에는 복잡한 국제정세와 산업 구조 변화가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전기요금 상승이다. 독일은 에너지 전환(Energiewende)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해왔고, 산업 경쟁력에 뚜렷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일 중앙은행(Bundesbank)은 이미 2022년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독일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수치로 보면, 에너지 비용 증가만으로 경쟁력이 약 0.9% 떨어졌다는 평가다.
산업계의 우려는 더 직접적이다. 독일 상공회의소 연합(DIHK)은 앞으로 수십 년간 에너지 전환 관련 비용이 수조 유로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 전력망 확충, 탄소감축 비용이 모두 기업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특히 전기요금이 낮은 미국, 동유럽, 아시아 국가들과 비교하면 독일 기업들이 경쟁에서 점점 불리해지는 것은 자명하다. 실제로 일부 기업들은 국내 생산을 줄이고 해외로 이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타격을 입는 것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이다. 화학, 철강, 반도체, 데이터센터 같은 분야는 전력 단가에 민감하다. 현재 독일에서 태양광, 풍력 발전단가는 원전의 6~7배에 이른다.
그 결과 전기요금 상승은 곧장 생산비 증가와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기업의 수익성은 줄고, 투자 여력도 떨어지며, 결국 고용과 성장률까지 흔들린다.
독일 사례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 역시 기후에너지환경부 신설을 앞두고 에너지 전환과 산업 경쟁력의 균형이라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목표와 ‘산업 경쟁력 유지’라는 제약조건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는다면, 기후정의에 기반한 정책이 국가경쟁력을 상실하게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급기야 독일 새 연립정부가 결국 전기요금을 낮추기로 합의했다. 전력망 사용료를 줄이고, 전기세를 유럽 최저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것이다.
산업계와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그만큼 독일 사회에서 전기요금 문제는 국가경쟁력과 생활 안정의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결국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런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산업 경쟁력, 국민 부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세 가지 무거운 과제를 어떻게 동시에 풀어내야 하는데, 실패한다면 우리 경제와 산업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지금이라도 더 깊은 숙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독일이나 미국, 호주처럼 신재생자원이 풍성한 국가도 아니고, 영국이나 일본처럼 제조업을 졸업한 나라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