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AE 바라카 수주 이후 15년, 전세계에 K-원전 각인
산업 생태계 복원 가속화...‘원전 최강국’ 전기 마련해
[에너지신문] 17일 20시 50분경(체코 현지시간 13시 50분) 체코 정부는 신규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을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두코바니에 2기, 테믈린에 2기로 대형원전 총 4기를 건설하는 이 사업은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프로젝트다.
체코 정부에 따르면 총 예상 사업비는 1기 당 약 2000억코루나(한화 12조원)로, 한수원이 우선협상 대상으로 확정된 두코바니 5,6호기는 총 24조원 규모다. 다만 한수원과의 계약금액은 최종 계약 예정인 내년 3월 이전까지 협상을 거쳐 결정될 예정이다. 테믈린 원전의 경우 현재 체코 정부가 검토 중에 있으며, 건설이 결정되면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이 된다.
이번 우선협상대상 선정은 주계약자인 한수원뿐만 아니라 팀코리아 전체의 시너지 효과가 컸다는 평가다.
한전기술(설계), 두산에너빌리티(주기기·시공), 대우건설(시공), 한전원자력연료(핵연료), 한전KPS(시운전·정비) 등 설계부터 유지보수까지 원전 벨류체인 전반을 책임지는 팀코리아의 구성이 체코 정부에 신뢰를 줬다는 분석이다.
팀코리아는 1000MW급 APR1000의 설계, 구매, 건설, 시운전 및 핵연료 공급 등 원전건설 역무 전체를 일괄 공급할 예정이다. APR1000 1기는 체코 수도 프라하의 연간 소비전력량(2022년 기준 5.8TWh)의 약 1.2배를 생산할 수 있다.
▶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어떤 의미인가?
이번 우선협상대상 선정은 지난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 이후 15년 만에 이뤄졌다. 특히 지난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용원전(Calder Hall, 영국)을 건설한 ‘원전 본산지’ 유럽 시장에서 승전보를 울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현재 전세계 가동원전 416기의 40%에 해당하는 167기가 유럽에서 가동 중이며, 향후 건설 계획인 102기 중 37기(36%) 역시 유럽에 건설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1982년 유럽형 원전을 도입했던 우리나라가 오히려 유럽에 원전을 수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는 얘기도 나온다. 당시 한울원전 1,2호기에 프랑스 프라마톰(950MW) 노형을 채택한 바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우선협상대상 경쟁사가 프랑스 EDF였다.
아울러 이번 성과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이라는 목표를 내건 윤석열 정부의 목표 달성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가다. 단순 기업간 경쟁을 넘어 한국 대 프랑스라는 국가 총력전으로 치러진 수주 경쟁에서 승리하며 세계적 수준의 경쟁력을 입증함과 동시에 향후 후속 수주로 이어갈 가능성을 배가시켰다.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 온 원전 생태계 복원 역시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원전 10기 계속운전 절차에 이어 내년 3월 체코 원전수출 계약이 최종 성사될 경우 양질의 수출일감 대량 공급으로 국내 원전 업계가 새로운 호황을 누릴 것으로 기대된다.
▶체코 신규원전 입찰 과정은?
이번 입찰은 2022년 3월 체코전력공사(CEZ)의 두코바니 5호기 건설사업 국제 공개경쟁 입찰 공고로 시작됐다. 같은 해 11월 대한민국 한수원과 프랑스 EDF,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입찰서를 제출하며 3파전의 경쟁을 시작했다. 당시 글로벌 원전기업 간 각축전으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올해 1월 변수가 생겼다. 체코전력공사가 에너지 안보, 국익 극대화를 선언하면서 입찰 규모가 당초 1기에서 최대 4기로 확대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웨스팅하우스가 체코 정부의 새로운 요구조건(수정입찰)을 충족하지 못하며 중도 하차했고, 지난 4월 수정입찰서를 제출한 한수원과 EDF의 양자 대결로 좁혀졌다.
최근까지도 유럽 원자력동맹을 주도하고 있는 프랑스의 강력한 영향력과 더불어 유럽 원전사업 경험이 풍부한 EDF가 우세하다는 관측이 많았다. 그러나 우선협상대상 확정을 앞두고 EDF 대비 거의 절반 수준(약 9조원)인 건설 비용과 UAE 바라카 원전으로 입증된 적기 준공 능력이 체코 정부의 선택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수원과 팀코리아는 2년 4개월에 걸친 수주전에서 승리하며 한국 원전의 국제적 위상을 전세계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 산·학·연·관 유기적 협력의 결과물
해외 원전사업은 흔히 월드컵에 비유된다. 기업 매출 신장의 수준을 뛰어넘는, 그 나라의 위상과 직결된 국가 대항전이자 총력전인 것이다.
이번 성과는 지난 2년여간 한수원과 협력사, 원자력 학계와 연구기관, 정부 부처 및 지원기관들의 유기적 협력으로 탄생한 결과물로 꼽힌다.
팀코리아는 내륙 국가인 지리적 조건과 전력 인프라 등을 고려, 체코 현지 환경에 최적화된 1000MW급 노형(APR1000)을 제안했으며 지난해 3월 유럽사업자요건(EUR)을 취득, 기술력과 안전성을 입증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 50여 년간 축적한 세계 최고 수준의 건설능력과 UAE 바라카 원전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경험을 살려 가격·품질·납기 3박자를 모두 갖춘 사업계획을 체코 정부에 제안했다. 2021년 기준 kW당 원전 건설단가는 한국이 3571달러인 반면 프랑스는 7931달러로 2배 이상 격차를 보였다.
또한 이번 선정에는 1990년 수교 이후 34년간 쌓아온 한-체코 간 신뢰관계, 그리고 현지에 진출한 국내기업들이 구축해 온 우호적 협력 환경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다.
현대자동차, 넥센타이어 등 100여개 진출기업들은 체코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 왔으며, 두산과 대우건설은 150여개 현지 기업과 함께하는 파트너쉽 행사를 열어 체코 원전은 양국 기업이 함께 건설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특히 지역사회와 상생하고 현지 공급사와 동반성장하는 ‘아웃리치’ 활동을 전개했다. 200여개에 이르는 잠재협력사를 발굴하고 현지 아이스하키팀 후원, 방역물품 지원, 봉사활동 등을 통해 지역 주민들과 긴밀히 소통해왔다.
이처럼 현지에서의 수용성 확보에 주력한 결과, 원전건설 예정지인 두코바니 지역협의회가 지난달 팀코리아 지지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상 차원의 원전 세일즈 활동과 함께 정부도 전방위 지원 활동을 펼쳤다. 총리, 장·차관, 실무진에 이르기까지 고위급 교류 활동을 펼치는 한편 지난해 한-체코 직항로를 재개하고 원자력 규제협력 MOU를 체결했다.
▶ 최종 계약까지 긴장의 끈 놓지 않아야
이번 우선협상대상 선정으로 사실상 체코 원전수주는 확정적인 분위기다. 다만 최종 계약은 내년 3월로, 향후 8~9개월 간 체코 정부 및 발주사와 세부적인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협상 기간 중 중대 변수가 발생할 경우, 가능성은 낮으나 우선협상대상 선정이 파기될 수도 있다. 한수원과 발주사 간 계약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 최종계약에 이를 수 있다.
정부는 계약협상 등 후속조치를 철저히 이행한다는 방침이다. 한수원을 중심으로 팀코리아 전체가 참여하는 ‘협상전담 TF’를 구성, 계약 협상에 만전을 기하고 정부-민간이 보조를 맞춰 지원을 한층 강화한다. 이와 함께 산업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원전수출전략추진위원회’를 조속히 개최, 후속조치 추진방안을 점검할 계획이다. 추진위는 기재부·외교부 등 정부 10개 부처 차관급 및 민간위원(19명)으로 구성된다.
아울러 정부는 이번 성과가 제3, 제4의 원전 수출로 이어져 국내 원전산업이 글로벌 선도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수출 전략을 고도화할 계획이다.
수출 유망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국가별 맞춤형 수주 마케팅을 추진하는 한편 신규원전 수주와 원전설비 수출을 병행, 종합 원전수출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전략이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2027년 원전설비 수출 10조원을 목표로 잡았다. ‘2050 원전산업 로드맵’ 수립, ‘원전산업 지원 특별법’ 제정으로 원전수출 장기비전을 제시하고 관련 지원체계를 강화한다는 계획도 세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