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시대적 과제이자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
경쟁 밀리지 않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 기울여야

▲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실장.
▲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실장.

[에너지신문] 인류 공동의 생존 과제로 기후위기가 부상하면서 탄소중립은 이제 국제사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와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저탄소 전환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미국, 중국, 독일, 일본 등 주요 제조 강국들은 자국의 경제 구조와 산업 환경에 맞는 전략적 접근을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시급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 미국, 대규모 투자와 기술 혁신 중심의 접근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저탄소 전환을 국가 경쟁력의 핵심 축으로 설정하고,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같은 핵심 법안을 통해 강력한 재정 지원을 실행하고 있다.

특히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핵심 산업에 63억달러 규모의 실증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는데, 이 프로그램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진행 중이다.

철강산업에서는 수소환원제철과 전기분해제철 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클리블랜드 클리프스와 같은 대형 철강기업은 이미 수소환원제철 실증 공장을 건설 중이다.

시멘트 산업에서는 친환경 원료 전환과 탄소포집저장(CCS) 기술 도입을 위한 대규모 실증사업이 진행 중이며, 석유화학산업은 나프타 분해 공정의 친환경화를 위한 전기 가열 기술과 바이오 원료 활용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민간 주도의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적극 활용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법은 단기간에 민간 투자를 크게 증가시키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으며, 특히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의 그린테크 분야 투자가 급증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 중국,  강력한 정부 주도의 산업구조 개편

중국은 14차 5개년 계획을 통해 에너지 다소비 산업에 대한 엄격한 생산량 및 배출량 할당제를 도입하며 체계적인 탄소중립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차별화된 접근 방식을 통해 구체적인 실행 계획으로 구현되고 있다.

철강산업의 경우, 2025년까지 전기로 비중을 15% 이상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했으며, 석유화학산업에서는 에너지 효율성 기준 강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 중이다.

동시에 전환금융 체계를 체계적으로 구축, 저탄소 기술 혁신을 지원하고 있다. 중국인민은행 주도의 녹색금융 시스템은 저탄소 기술 개발 기업들에게 우대 금리와 대출 보증을 제공함으로써 국영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 주요국 산업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및 비중.
▲ 주요국 산업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및 비중.

■ 독일, 명확한 로드맵과 혁신적 정책 수단

독일은 산업 부문 탄소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중간 목표와 로드맵을 수립하고, 탄소차액계약제도(CCfD)와 같은 혁신적 정책 수단을 도입했다.

CCfD는 기업이 저탄소 기술에 투자할 경우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정부가 보전해주는 제도로, 철강과 시멘트 기업 등이 15년간 탄소가격 차액을 보전받아 녹색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BASF와 같은 화학기업도 전기 가열로를 통한 친환경 화학제품 생산 기술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 일본, 실용적 접근과 체계적인 금융 지원

일본은 150조엔 규모의 그린전환(GX, Green Transformation) 민관 투자를 통해 산업 전반의 저탄소화를 추진 중이다. 일본의 접근법은 기존 생산 설비의 고도화와 효율화를 통해 전환 비용을 최소화하는 실용적 전략이 특징이다.

특히 철강산업에서는 고로-전로 공정의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하고 수소 혼합 환원 기술을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은 다양한 금융 기법을 활용한 민간 참여 촉진에도 적극적이다. GX 경제 이행채권으로 민간 자본을 저탄소산업에 유도하고 있으며, 일본정책투자은행은 저탄소 기술 개발 기업에 대한 우대 금리 대출과 기술 평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명확한 중장기 로드맵 설정을 통해 정책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산업별로 세분화된 탄소감축 목표와 기술 개발 계획을 수립, 체계적인 전환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일본은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자국기업의 저탄소 기술 수출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JCM(Joint Crediting Mechanism)과 같은 양자 협력 체계를 통해 일본 기업의 저탄소 기술이 개발도상국에 도입될 경우 탄소크레딧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 기업의 해외 진출과 탄소감축을 동시에 지원하고 있다.

■ 한국, 저탄소산업 현황과 한계

우리의 저탄소 전환은 현재 초기 단계에 있으며, 특히 산업 부문의 구조적 특성으로 인해 상당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2022년 기준 산업 부문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38.3%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철강(약 30%), 석유화학(약 15%), 시멘트(약 10%) 산업이 산업 부문 배출량의 주요 원천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배출 구조는 제조업 중심의 국가 경제 특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당 산업들의 저탄소 전환 성패가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지대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문제는 이들 핵심 산업이 이미 생산 공정 및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어, 추가적인 배출 저감을 위해서는 공정이나 원료의 근본적 전환이 요구되고, 여기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이다.

▲ 전세계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 전세계 부문별 온실가스 배출량. 

■ 저탄소 전환의 구조적 장벽

대한민국 산업의 저탄소 전환이 지연되고 있는 핵심 원인은 다음과 같은 구조적 장벽에 있다.

첫째,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R&D 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의 저탄소 산업 기술 R&D 투자는 GDP 대비 0.15% 수준으로, 독일(0.35%), 미국(0.28%)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철강, 시멘트와 같은 핵심 산업의 혁신 기술 개발을 위한 대규모 실증사업이 부족, 파일럿 단계에서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이 존재한다. 

둘째, 정책적 지원 체계가 미흡하다.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은 주로 규제 중심으로 이뤄져 있으며, 기업들의 저탄소 전환을 촉진할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가 부족하다.

특히 독일의 CCfD와 같은 혁신적 정책 수단이 도입되지 않아 기업들은 장기적인 투자 결정에 필요한 안정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부처 간 협력이 부족해 산업, 에너지, 환경 정책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

셋째,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은 2022년 기준 약 7.5%로, OECD 평균인 28.7%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이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과 같은 에너지 집약적 산업의 전기화를 위해서는 대규모 재생에너지 공급이 필수적이나, 현재의 인프라로는 이를 충족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넷째, 저탄소 전환을 위한 금융 지원이 부족하다. 한국의 녹색금융은 초기 단계로, 저탄소 기술 개발을 위한 전환금융 상품이 제한적이다. 또한 기후리스크를 고려한 투자의사결정 체계가 미흡, 민간 자본의 저탄소산업 유입이 저조한 상황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은 아직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전문성이 부족해 저탄소 기술의 경제성과 잠재력을 정확히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다.

■저탄소 전환 극복 위해 전략적 접근 필요

이러한 격차와 한계를 극복하고 주요국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첫째, 핵심 저탄소 기술 개발과 실증에 대한 과감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 수소환원제철, 바이오매스 활용 기술, CCS 기술 등 산업별 혁신 기술의 개발과 상용화를 위한 명확한 로드맵과 지속적 지원이 시급하다.

둘째, 탄소차액계약제도와 같은 선진 정책 도입을 통해 기업의 저탄소 투자 환경을 안정화해야 한다.

독일과 일본의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장기적 투자리스크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은 산업 저탄소화의 필수 조건이다. 안정적이고 경제성 있는 청정에너지 공급을 위한 국가적 투자와 지원이 대폭 확대되어야 한다.

넷째, 민관 협력 기반의 전환금융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기후금융특별법 제정을 서둘러 저금리 전환금융 상품을 개발하고, 기업의 저탄소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국제 협력을 통한 기술 개발과 시장 선점 기회를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을 확대, 선도 기술을 신속히 도입하고 국내 기업의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탄소중립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자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이다. 정부와 산업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기술 혁신, 정책 지원, 재정 확충, 국제 협력 등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만 세계적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미래 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행동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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