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 원장
▲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 원장

[에너지신문] 트럼프 대통령은 ‘광물협정’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광물에 대한 속내를 숨기지 않고 있다.

광물협정의 핵심은 우크라이나의 희토류 등의 개발에 미국이 참여하고, 그 이권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토록 트럼프 대통령이 광물에 집착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광물로부터 시작된 로마의 군사력

미국을 보면 이 나라가 떠오른다. 바로 로마 제국이다.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해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지중해 전역에 걸쳐 제국을 확장했다.

로마 군사력의 핵심은 효율적인 훈련과 지휘 체계, 그리고 우수한 품질의 철제 금속 무기였다. 대표적인 것이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 주력 무기로 사용된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짧은 양면의 칼. 이뿐만 아니라, 화살, 필룸(투창: pillum), 헬멧, 방패의 돌기 등에도 철이 사용됐다.

글라디우스를 만드는 데는 약 1.2kg, 필룸 하나를 만드는 데는 약 0.25kg의 철이 필요했다. 군단 하나가 일반적으로 4000~6000명으로 구성됐는데, 로마가 가장 강성했던 시기에는 약 30개 군단이 있었다.

이들 모두 무장을 해야 했으니, 필요로 하는 광물의 양이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게다가 무기는 전투에서 소모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식되기 때문에 광물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했다.

로마의 권력 절정기에는 매년 약 8만 5000톤의 철이 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는 군사력을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 전례 없는 규모의 광물이 필요했다.

영토 확장은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동시에 광물을 확보하는 수단이었다. 로마의 광물 공급망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지역은 이베리아(현재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였다. 광물의 보고인 이베리아를 정복한 덕분에 로마 군대에 필요한 무기 생산이 급격하게 늘어 나게 된 것이다.

스페인 중부 톨레도 주변의 품질 좋은 철광석과 남서부의 우엘바 주(Huelva Province)에 있는 황철광 지대, 동쪽으로는 세비야(Seville)에서 서쪽으로는 포르투갈의 알주스트렐(Aljustrel)까지 뻗어 있는 풍부한 광상은 로마제국 군사력의 핵심이자 원천이었다.

최첨단 무기의 필수 재료, 희소금속

그럼 다시 21세기 미국으로 돌아와 보자. 미국 역시 제2의 로마제국이라 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2024년 국방예산은 9680억달러로, 원화 환산 시 1398조원이 넘는다. 이는 국방비 2위부터 12위까지를 합한 것보다 많은 금액으로, 중국의 4배, 전쟁 중인 러시아의 6배 이상이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는 미국 군사력의 핵심인 최첨단 무기 개발과 유지에 사용되는데, 이들 무기에 희소금속은 필수다.

첨단전투기에 탑재돼 두뇌 역할을 하는 에이사(AESA) 레이더의 경우, 갈륨(Ga)으로 제작되는 질화갈륨(GaN) 반도체가 핵심부품으로 들어간다.

또 잠수함에서 발사하는 마크 48(MK. 48) 등의 어뢰 모터에는 부식 및 산화에 강하고, 영하 200도에 달하는 등 혹독한 환경에서도 자력이 유지되는 사마륨코발트(SmCo) 자석이 들어간다. 그런데 갈륨은 중국이 전 세계 공급망의 98%, 사마륨코발트 자석은 90%를 차지하고 있다.

심지어 사마륨(Sm)은 전량 중국에서만 생산되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F-35 전투기는 대당 생산에 희토류가 약 417kg, 이지스함에는 2.4톤, 버지니아급 핵잠수함에는 4.1톤이 필요하다.

미국이 2024년 12월초 인공지능(AI) 칩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의 대중 수출통제에 들어가자 중국은 갈륨, 게르마늄, 안티모니, 흑연의 대미 수출을 통제하며 보복에 나섰다.

이들 광물이 사용된 미국 무기체계 1075개는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게다가 미 국방부와 해안경비대가 사용하는 각종 무기 부품 2만개 이상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중국이 단 4개의 광물을 수출 통제함으로써 미국이 새로 제조하는 무기뿐만 아니라 이미 운용 중인 무기와 장비의 유지 보수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이 2025년 3월까지 미국에 수출을 통제한 광물 품목 수는 총 20개에 달한다.

트럼프의 핵심 국방 공약 ‘군대 재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무력해진 미국 군대의 재건을 핵심 국방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대선 공약집 ‘어젠다 47’에서는 "미국의 무기고가 텅 비어 있다"며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해서 미 군대에 기록적인 자금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중국을 대체할 광물 공급망에 대해 구체적인 방안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런데 2024년 9월 27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트럼프가 뉴욕에서 만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의 추가 무기 지원과 장거리 미사일 사용 제한 해제, 희토류 등 여러 광물을 미국과 같이 개발하자는 내용을 담은 ‘승전 계획’을 제시했다. 당시 트럼프 후보는 미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공개적으로 반대해왔기 때문에, 젤렌스키 대통령으로서는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중국으로 인한 희토류 트라우마를 겪은 트럼프 후보 입장에선 젤렌스키 대통령이 제안한 광물 개발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이들의 만남 이후 트럼프 후보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해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등 신중한 입장을 보이며 ‘지원 중단’과 같은 기존의 입장과 배치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한 이후 보인 가장 활발한 외교적 움직임은 우크라이나와의 광물협정 체결을 위한 것이었다.

2025년 2월 28일, 미국과 우크라이나 정상들의 회담은 파행으로 끝났지만 3월 3일, 트럼프 대통령은 TSMC 회장과의 면담 후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가서 희토류를 개발하는 것이 우크라이나에도 좋다” 트럼프 대통령이 희토류에 푹 빠져 있음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의 지원 없이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는 현실을 젤렌스키 대통령도 알고 있다. 로마에게 이베리아가 있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를 중국을 대체할 광물 공급망 대안으로 여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 강화를 낳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라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고 러시아와의 관계 정상화 이후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대응이 주목된다. 중국이 미국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부할 것은 광물말고는 거의 없기에 중국의 광물 무기화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 위에서 한국 제조업체들이 유탄을 맞지 않도록 철저한 장단기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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