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마지막. 전력산업의 발전 방향 (하)

▲ 전기설비 자격증을 갖고 있는 국회 김영환 국회 지경위원장은 한전을 중심으로 하는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강조하고 있다. 9·15 정전사고 당일 전력거래소를 방문한 김 위원장이 관계자들에게 수요관리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전력산업 효율추구 앞서 공공기능 우선해야

9·15 정전사태 전력시장 구조개편이 원인
분리된 전력거래소계통운영 통합 의견대두
민간발전協 전력민영화 요구, 결론 오리무중


전력산업 구조개편 10년이 지났다. 2001년 4월 한국전력 발전부문이 화력발전소 5개사, 수력원자력 1개사, 전력거래소로 각각 분할됐다. 정부는 2단계로 배전부문 분할을 시도했으나 전국전력노동조합의 반대로 2003년 추진을 하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9월15일 블랙아웃 직전까지 가는 전력대란이 발생했다. 이에대한 원인분석과 책임공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가 잘못한 것인지, 단지 몇몇 전력책임자의 잘못인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진행과 관련,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사를 시리즈로 독점 게재한다.          /편집자 주 

9.15 정전사태

KDI 보고서 파동이 끝난 후 1년이 지나자마자 사상 초유의 강제순환정전사태가 발생했다. 9.15 정전사태로 불리는 2011년 9월15일의 강제정전조치는 말 그대로 전기의 수요와 공급 원칙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추석연휴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난 9월15일 오후 세 시경, 전력거래소는 늦더위로 폭증하는 전력수요에 비해 공급 가능한 전력생산량이 모자라는 사태가 발생함에 따라 한전에 강제 전력공급 중단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세 시부터 8시까지 전국 650만 세대가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씩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유례없는 경험을 했다.

이날 발생한 정전사태의 근원적인 원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표면적으로 드러난 사고원인은 전력거래소의 수요예측 실패에 있었다.

대통령마저 한전 본사를 방문, 전력당국 전체를 집합시키고 불호령을 내린 이날의 정전사태의 핵심적인 이유는 아직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전력노조를 비롯한 구조개편 반대진영은 즉각 구조개편이 정전사태의 주범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력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한전분할로 인한 전력산업의 두뇌 기능이 현장과 분리된 현 전력산업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가 정전사태의 원인임을 지적하며 한전재통합만이 정전사태 재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의원들도 입을 모아 이에 동의했다. 정전사태 직후 열린 2011년도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의 주제는 정전사태였다.

의원들은 2009년과 마찬가지로 한전재통합을 강력하게 주문했고 지경부 관계자들은 근원적인 정책 재검토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역시 지켜지지 않았고 지경부 장관의 사퇴라는 결과만 가져왔다.

여야의원 전원이 동의한 전기사업법 개정안

2011년 10월5일, 당시 한나라당 소속 정태근 의원은 9.15 정전사태의 원인이 한전과 거래소의 기능 분리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력거래소의 계통운영기능을 한전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전체 지경위 의원 25명의 동의와 함께 대표발의 했다.

정태근 의원의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정전사태를 계기로 구조개편 정책의 방향을 뒤흔들 수 있는 폭발적인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1월25일로 예정돼 있던 찬반토론을 겸한 지경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22일에 발생한 한나라당의 한미FTA 비준 날치기와 이에 따른 국회공전으로 무산됨에 따라 열리지 못하면서 법률개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12월에 다시 열린 국회에서도 22일 법안심사소위에 재상정 됐지만 FTA 후속법안을 놓고 여야가 충돌하는 바람에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해를 넘기고 말았다.

2012년 2월에 열린 임시국회에서 전기사업법 개정안은 다시 상정됐다. 8일 열린 법안심사소위에서는 여야의원이 법률개정안 통과를 원칙적으로 합의했지만 정족수 부족으로 차기 회의로 넘어갔고 10일 속개된 법안심사소위 역시 정족수 부족으로 처리되지 못했다.

그 결과 곧이어 열린 지경위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소속 김영환 위원장은 2월14일로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비롯한 4개 쟁점 법안 심사기일을 지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2월13일 오후에 열린 지경위 법안심사소위와 전체회의에서는 정족수가 훨씬 넘는 의원들이 참석했지만 전기사업법 문제를 아무도 논의조차 않고 회의를 마침에 따라 이 배경을 놓고 많은 추측들이 오가게 됐다.

2월8일의 법안심사소위에서 지경부 제2차관은 법률개정안이 단순히 계통운영기능 이관 문제에서 끝나지 않고 구조개편 정책 자체의 방향을 훼손한다고 반대 입장을 밝혔고, 이에 대해 여야 막론하고 참석 의원들은 그 동안 정부가 보여준 무성의한 태도 보이다가 막판에 와서 반대입장을 천명하는 이유를 따져 물의며 질타했다.

지경부는 그 동안 전기사업법 개정안이 자연스럽게 회기를 넘기며 자동폐기 될 것으로 믿고 있었지만 임시국회서 재상정되자 크게 놀랐다는 후문이었다.

그 결과 조직의 존폐 위기에 처한 전력거래소와 한전이 계통운영권을 가지게 될 경우 수익률 하락을 우려하는 민간발전사업자들이 적극적으로 의원설득 작업에 나섰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판단이다.

특히 2월13일의 전체회의를 앞두고서 민간발전회사들로 구성된 민간발전사업협회는 지경위원장 면담을 통해 강력한 반대입장을 표하면서 압력을 행사했으며, 당일 오전 모 경제전문지는 지경위원장의 이름을 거론하며 법률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지탄을 면치 못한다는 식의 협박성 사설을 싣기도 했다.

이와 같은 많은 압력과 회유 속에 처음 법률 개정안 발의에 지경위 소속 의원 전원이 동의했지만 선거를 앞두고 의원들의 마음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한편의 드라마와 같던 전기사업법 개정안 소동은 필자가 이 글을 쓰는 현재까지 지경위에 계류 중인데 많은 사람들은 18대 국회 중 통과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이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폐기된다면 지경위 의원들은 자신들 모두가 함께 동의하고 발의한 법률개정안을 스스로 외면하는 꼴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심각하게 왜곡된 전력산업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국가적으로 큰 아쉬움도 함께 남게 된다.

전력산업 발전을 위해 모두가 나서야 할 때

지금까지의 연재에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배경과 진행과정 그리고 외국에서의 사례를 통해 우리의 현재 상황과 미래를 살펴봤다.

앞서 기술한 것과 같이 전력산업은 현대 생활의 필수서비스인 전기를 생산하고 공급함으로써 국가와 국민경제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기간산업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전력산업을 필수공공서비스로 규정하고 에너지정책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는 전력산업을 필수공익서비스로 지적하고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도 제약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전력산업은 한 번 해 봐서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인 그런 벤처사업이 아니다. 정책결정 과정에서 그 어떤 산업보다 더 신중한 논의와 검토,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서 민주적 참여가 필요한 중요한 산업이다. 한 나라의 운명을 떠받치는 기간산업이기 때문이다.

구조개편을 시작하던 당시에는 그 결정 자체가 졸속적이고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길을 먼저 간 나라들의 운명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전력산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과거보다 더 심도 깊고 진정성 있으며 무엇보다도 민주적인 논의 절차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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