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확한 일정 제시, 문제 해결 신뢰성 보여야
위험성 주장하면서 처분장 건설 반대는 모순

[에너지신문]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에 나선 것은 2013년 3월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위원회를 설치하고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위한 공론조사를 시작한 것으로부터 볼 수 있다.

21대 국회에는 국민의힘에서 김영식, 이인선 의원이, 민주당에서는 김성환, 홍익표 의원이 특별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특별법 발의로 고준위방폐물이 국회에서 논의된 지도 1년이 넘었다. 여야는 10차례의 법안 소위원회 회의를 가졌지만 아직까지도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상정하지도 못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한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은 사실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탈원전을 에너지 정책의 기조로 삼은 문재인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공론화에 붙였으나 결과는 건설의 지속 추진이었다. 이 공론조사에서 원자력의 이용을 위한 과제로 안전한 이용과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이 국가 과제로 제시됐다.

원전의 안전한 이용을 위해 가동원전의 규제 감독이 강화됐다. 기술적으로는 기존의 대형 원전과 차별화되는 안전성을 갖는 소형모듈원전(SMR)이 윤석열 정부 들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에서 2013~2015년 공론조사를 통해 수립한 제1차 고준위방사성페기물관리 기본계획이 ‘민주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재검토위원회를 설립, 다시 한번 공론조사를 시행했으나 특별법 제정에 이르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1차 공론화위원회는 사용후핵연료 처분의 안전성 검증과 중간저장을 위해 2020년까지 지하연구시설 부지를 확보하고 궁극적으로 2051년까지 처분 시설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1차 고준위방페물 기본계획이 수립됐다. 만약 그대로 진행이 됐다면 유럽연합이 택소노미에 원자력을 기후위기 대응 수단으로 포함하면서 내걸었던 조건인 ‘2050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마련’을 선제적으로 구현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다시 한번 공론조사가 추진됐다. 재검토위원회는 이전의 공론화 과정이 민주적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시민단체 등 보다 많은 이해관계자를 포함하여 추진했으나 결론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안전과 신뢰에 기반한 사업추진, 처분시설 유치 지역의 참여 및 지원, 과학과 수용성에 기반한 부지 선정 등 처분장 마련을 위한 원칙은 변함이 없었다.

1차 공론화위원회의 권고사항도 임시, 중간, 영구처분의 3단계 처분과정을 제시하고 있었으며, 2차 역시 같은 단계적 처분을 제시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분 문제 해결의 본격적인 시작으로 특별법 제정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같다.

윤석열 정부는 이전 정부에서 풀지 못한, 어쩌면 풀지 않고 미뤄둔 문제를 떠안았다. 시간이 갈수록 포화되는 발전소의 사용후핵연료 상황과 탄소중립에 필요한 원전 이용을 생각하면 더 이상 미루기 어려운 과제이기 때문이다.

영구처분장의 운영 시기는 사용후핵연료의 최종적인 해결 시기를 제시하는 것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루빨리 처분장을 마련하라는 국민의 여망은 물론 원전 지역 지자체가 요구하는 사용후핵연료의 조속한 반출 요청에 부응해 김영식 의원 발의안은 2050년 처분장 운영의 시한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수차례 협의 결과는 2060년 이전 운영을 목표로 조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사용후핵연료 특별법의 지연과 1,2차 공론조사로 인한 행정지연을 처분장 마련에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2015년 공론화위원회의 제안을 바탕으로 마련된 1차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은 2016년 사용후핵연료 처분 특별볍 제정을 상정하고 35년 후 운영을 예상, 2051년 준공을 제시했다.

2021년 수립된 2차 고준위방페물 기본계획에서는 특별법 제정 후 37년을 영구처분장 일정으로 제시하고 있어 2023년에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37년 후인 2060년에 처분장 운영이 개시되는 것이다.

▲ 지난 6월 열린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안 연속회의.
▲ 지난 6월 열린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안 연속회의.

즉 현재의 논의 결과는 2차 기본계획에 따라 법안 통과 후 37년의 일정을 반영한 것으로 연구용 지하연구시설을 이용한 인허건설 소요 기간의 단축 가능성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

1,2차 기본계획의 추진 방식은 동일하다. 특별법 제정 후 처분시설 유치 지역을 공모하고 과학적 검증을 거쳐 부지 척합성을 판정한 후 중간 저장을 거쳐 최종 처분하게 된다. 또한 처분장 인허가를 위해 처분장 지역에 지하연구시설을 설치한다.

동일한 방법과 절차인데 재검토와 2차 계획의 수립, 특별법 제정 지연으로 당초 2051년에서 9년이나 늦어지게 됐다. 결국 지난 10년간 처분장 준비에 필요한 기술개발, 인허가 규제 준비, 처분장 유치를 위한 사전 준비 등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모양이 됐다. 이는 특별법 제정이 늦어지면 그대로 처분장 운영시기도 순연될 것이라는 얘기다.

2050년이든 2060년이든 처분장 운영시기를 못 박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 처분장 유치의 불확실성, 인허가의 불확실성 등 많은 불확실성 때문에 정부 일각에서는 시기를 명시하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국민과 원전 지역에 명확한 일정을 제시해 사용후핵연료 문제 해결의 신뢰성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특별법에 대해 여전히 여야가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발전소 내에 건설되는 임시저장 설비의 용량이다. 여당 안은 ‘발전소 운영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양을 임시저장의 규모로 제시하고 있는 반면, 야당은 ‘발전소 설계수명’ 동안 발생하는 양을 한계 규모로 제시하고 있다.

1,2차 기본계획 모두 중간저장 시설이 준비되기 전까지는 발전소 부지 내 임시저장을 제시하고 있다. 임시저장은 원자력안전법상의 원전 관계시설로 인허가를 받아 월성원전에서 이미 하고 있다.

하지만 특별법에서는 보다 명확히 임시저장에 대해 명시함으로써 사용후핵연료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지역에 대한 지원도 명확히 하자는 취지로 임시저장을 특별법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리, 영광, 울진 등 경수로 원전 단지에서 임시저장을 원활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보고 특별법 제정을 기대하며 미뤄뒀던 것이 임시저장 허용의 명분을 두고 특별법 제정 논의를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임시저장의 규모는 그다지 중요한 관건은 아니다. 중간저장 시설이 준비되면 임시저장에 보관하던 사용후핵연료를 이전할 수 있으므로 2050년까지라도 준비된다면 현재 기준 30년 분량의 임시저장 설비면 된다. 경수로 설계수명 40년을 고려할 때 계속운전을 하더라도 운영에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발전소 내부에 사용후핵연료 일부를 현재와 같이 계속 보관하고 있어야 해 폐로를 결정해도 일부 안전기능을 계속 유지해야 하므로 해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야의 의견 차이는 임시저장 시설 규모제한에 따른 원전 운영 문제보다는 계속운전을 원칙적으로 용인하느냐, 아니면 계속운전 없이 폐로를 원칙으로 하느냐라는, 원전 이용을 둘러싼 명분 논쟁으로 보인다.

계속운전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용후핵연료의 임시저장 시설 규모를 설계수명으로 제한하는 것은 원전 안전을 위해서나 논리적으로나 합당하지 않다. 하지만 임시저장의 용량 규모를 두고 다투는 것은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현세대에서 해결한다는 더 큰 명제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다. 

영구처분장의 조속한 건립이 국민이 바라는 것인 만큼, 특별법으로 첫발을 내딛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탈원전주의자들은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을 처분장 건설 반대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사용후핵연료의 위험성을 주장하면서 이를 땅 속 깊숙이 묻어 우리 생활 공간과 영원히 격리시키는 처분장 건설에 반대하는 것은 모순이다.

스웨덴의 처분장 안전성 분석 결과를 보면,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한 구리용기를 찰흙으로 둘러싸 지하 수백 미터 암반에 묻은 처분장에서 만에 하나 지하수 침투로 방사성물질이 지표면에 나오더라도 그 기간은 수만년에 달한다.

기후변화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지 않으면 금세기 내에 인류 생존에 재앙이 닥칠 위기 상황에서 당장 80년 앞을 걱정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수만년 후를 걱정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처분장 건립을 반대하는 것이 정답일까.

그 어느때 보다 사용후핵연료의 최종 처분을 위한 특별법의 통과가 기대되고 국민의 열망이 높은 시점이다. 비록 야당이 탈원전을 에너지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사용후핵연료를 발미로 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특별법은 문재인 정부에서 수립한 2차 고준위방폐물관리 기본계획을 수용하고 있으므로 야당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정기국회에서 특별법을 통과시켜 10년 논의의 종지부를 찍고, 우리 세대의 문제는 우리가 풀고 간다는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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