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에너지기본계획, 수립 과정과 내용에 대한 우려

[에너지신문] 문재인 정부 한 해 동안, 에너지와 관련해 특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탈핵 로드맵으로 시작해 미세먼지와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 석탄화력 축소 그리고 현재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서 다양한 측면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준비, 실험되고 있다.

바야흐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올해 말 수립 예상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집대성될 예정이다. 5년마다 수립되는 에너지기본계획은 이명박 정권 시절, 녹색성장이란 미명하에 공급 및 시장 확대 정책으로 귀결됐다. 박근혜 정권 하에서는 과다한 수요전망에 기초한 37% 이산화탄소 감축안이라는 국제적 사기행각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이러하기에 문재인 정부가 수립할 이번 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기존 안과의 명백한 차별성뿐 아니라 향후 20년을 가름할 에너지 정책의 새로운 초석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충만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진보적 이론 진영과 건강한 에너지 노동조합들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던 에너지 공공성과 관련한 내용과 의제가 담겨 있다고 보기 어렵다. 둘째, 에너지 전환의 방식·경로·주체에 대해 정부뿐 아닌 워킹 혹은 의견그룹들의 주장들이 모호하거나 우려스럽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 간략히 논의해볼 것이다.

최근 에너지 전환과 관련, 한전과 발전자회사, 가스공사 등 전력과 가스의 독점체계에서는 에너지전환이 성공하기 어렵기 때문에 민간주도의 시장개방 및 지역과 시민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한 한국의 독점적 에너지 산업구조가 불공정한 시장을 조성하고 있으며, 독과점 시장을 민간의 참여와 개별 시민의 참여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주장 자체는 에너지공기업 민영화 찬성론에 기반한 것이기에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에너지 전환을 위한 방식, 경로 그리고 주체 형성을 숙고해야 할 이 중요한 시점에 이 논지가 부활했다는 점이 씁쓸하면서 아이러니하다.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와 사회공공연구원 등은 지속적으로 공적 에너지전환에 대해 제안하고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왔다. 그 이유는 첫째, 에너지 민영화·시장화는 중단된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는 팩트 때문이다. 전력의 발전분야는 에너지 재벌기업 과점 상태에 진입했고 천연가스 직수입 역시 발전분야와 도시가스, 집단에너지를 소유한 특정·소수 에너지 재벌기업의 이해관계에 좌우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산업구조의 불공정한 시장은 한전이나 가스공사의 독점적 지위 때문이 아니라 민영화를 위한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끊임없이 민간기업의 과다수익 혹은 유리한 위치를 보장하기 위한 특혜가 누적되는 과정에서 기이한 한국의 전력거래제도가 탄생한 것이다. 천연가스 직수입에 따른 체리 피킹 역시 마찬가지이다.

셋째, 독일을 비롯해 유럽·일본·미국 등에서 신재생에너지가 확대된 이유는 민간개입과 시장이 활성화됐기 때문이 아니다. 민영화·시장화 정책이 선행(유럽), 유지(미국과 일본)된 상황에서 신재생 확대를 위한 규제가 도입되고 FIT와 같은 보조금 등 정부의 개입과 보호에 의해 확대된 것이다. 독립적 규제기관 역시 민영화·시장화로 인해 통제 불능인 시장에 대한 전형적인 국가개입의 형태이다. 나아가 미국과 유럽에서 지역분권화가 재공영화 흐름과 연계되고 있는 흐름 역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공공적 개입과 기획의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넷째, 신재생에너지 확대 및 에너지 전환에 소요되는 높은 비용은 필연적인 것이 아닌 시장의 결과물이다. 국민이 마땅히 지불해야 할 것이라는 편견은 버려야 한다. 물론 현재보다 높은 비용이 들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 비용을 충분히·꽤나 공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토대가 있다. 이를 버리고 시장을 통해 해결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에 다름 아니다.

다섯째, 시장은 공정한 거래를 낳지 않고 다양한, 소수의 이해관계자를 결코 보호하지 않는다. 급진적 민영화를 경험한 유럽 사례를 보면, 민영화 직후 수십 수백 기업들이 몇 몇 초국적 기업들의 과점으로 인해 반짝하고 명멸했다. 에너지 초국적 기업의 다각화, 수직계열화 때문이다. 최근 일본 역시 후쿠시마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하던 신재생에너지 소규모 사업자들은 에너지 대기업들의 시장장악에 밀려 퇴각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에너지 전환은 시장에서가 아닌, 시장에서 가능할 것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환상에서 헤맬 것이 아닌 명확히 공적 전환의 방향을 설정하고 출발해야 한다. 공공이 주도해 시장의 폐해를 수렴하고, 이 속에서 시민자치와 에너지 민주주의를 확보할 수 있는 ‘한국적 에너지전환’의 길을 찾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정부의 3차 에기본 수립 과정과 내용은 걱정을 우선 앞서게 하고 있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첫째, 전력거래시장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해야 한다. 에너지 민간기업에게 유리하게 세팅된 제도는 신재생에너지 확대뿐 아니라 이를 보완해야 할 전원으로서 천연가스 발전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둘째, 경쟁적 천연가스 직수입은 설령, 특정 시기 도입비용을 낮출지언정 결코 전력거래 가격 전반을 낮추지 않아야 한다. 민간회사, 발전공기업을 불문하고 낮게 도입한 차액만큼을 도입한 회사가 거두어가고 착복하는 것이 현행 전력거래제도다.

3차 에기본은 에너지정책의 ‘새로운 초석’ 될 것

에너지공기업, 에너지전환 주체로서 역할 부여해야

셋째, 전력거래시장을 공적으로 전면 재편하는 동시에 중소기업, 소규모 신재생사업자가 진입할 수 있는 우호적 규제 및 보호시장을 분리할 필요가 있다. 이는 FIT 재편, RPS의 민간 발전기업 및 이산화탄소 다량 배출 기업에 대한 규제로의 확대, REC 시장의 효율화 등을 통해 해결해나갈 수 있다.

넷째, 원자력과 석탄화력을 줄이며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보완 전원으로서 천연가스 발전을 늘이기 위해서는 현재 6개로 분할된 발전자회사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이들 6사 체제는 2001년 민영화 즉 매각을 위한 체제에 불과하다. 에너지 전환을 위해서는 반드시 한전과 이들 6사의 수익을 적절히 분배하고, 전환 비용을 수렴하며 해당 노동자들을 적절히 배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합 혹은 재편해야 한다.

다섯째, 신재생에너지 백업전원으로서 천연가스 발전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유지하기 위해 천연가스 도입·도매를 담당하는 가스공사와 발전사들 간의 협력적 관계가 필요하다. 이는 민생연료인 도시가스 수급 및 가격안정화와도 직결된 과제이다.

여섯째, 에너지 지역분권화 및 에너지 자치 문제는 전력의 판매시장을 개방하거나 배전분야 일부를 개방하는 것으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원자력과 석탄을 줄이는 과정에서 한국의 에너지 수급 편중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천연가스 발전을 공적으로 계획, 배치해나가야 한다.

에너지의 공적 전환 주장에 대해서도 두 가지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먼저 공적 전환이 그 자체로 에너지 공기업 중심의 혹은 국가주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장은, 혹은 얼마정도는 국가 주도와 공기업 주도 혹은 지자체의 주도적 결합이 필연적이라고 본다. 이 과정에서 공적 전환을 위한 자치, 민주주의적 질서를 함께 만들어나가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신재생에너지 소규모 사업자 혹은 공동체 혹은 시민은 다시 에너지 대기업에 의해 침식당하고 말 것이다. 과도기적 질서를 즐겁게 깨나가는 대안을 만들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에너지 공기업은 물론이거니와 대다수 에너지 관련 노동조합이 그다지 건강하지 않다는 점은 그야말로 현실이다. 바로 이 때문에 에너지 전환을 고민하는 많은 전문가와 시민·환경단체가 공적 전환 경로를 회피하고 질리게 만들고 있다.

현 상태가 유지된다면 한전과 발전자회사, 그리고 한수원과 원전관련 회사, 가스공사 등 대다수 에너지 공기업이 에너지전환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본다. 에너지 공기업의 민주적 거버넌스를 확립, 이들을 공론화 및 전환의 주체로서 역할을 부여하고 이를 위해 재편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물론 이 일은 해당 노동자들이 정부와 함께 해나가야 한다. 바로 이를 문재인 정부에게 기대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시장은 민간기업이 규제할 수 없고, 하기도 어렵다. 끔찍한 오너들의 악행을 수년째 목도하고도 사회적으로 단죄할 수단이 매우 적은 바로 그 대한항공이 혈세로 만든 공기업이었다. KT와 SK, 포스코와 두산중공업도 공기업이었다. 그러나 시장은, 재벌 대기업은 국가 규제의 한계선을 매번 넘어서고 국민들을 우롱한다. 현재의 에너지 공기업들은 신뢰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사회가 의지를 가진다면, 규제하고 재편하고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다. 이 때 에너지 전환의 비용은 줄어들고 비로소 정의롭게 분배될 것이라 확신한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