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 공청회, 산업부 ‘불참’
노조 “소통 의사 無, 민영화 추진 의지 재확인”

▲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방안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에너지신문]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폐합 등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안이 담긴 연구용역 결과가 공청회에서 발표됐다. 양 공사 노동조합의 극력한 반대와 충돌도 예상됐지만 공청회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다만 개편방안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크다는 견해가 대다수였다. 5억원이라는 예산을 주고 얻은 연구용역에서 각 방안별 구체적인 투입 비용 및 경제적 효과, 대체 방안에 대한 논의가 빠진 모호한 결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개편 주체인 정부의 불참으로 공청회의 의미를 무색케 했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민간이 검토한 방안으로 적용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6월 공기업 기능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일종의 간보기식 행사를 무리하게 진행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딜로이트, “석유ㆍ광물 자원개발 기능 독립 또는 민간 이전 필요” 


해외자원개발 추진체계 개편 공청회가 2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해외자원개발협회 대회의실에서 개최됐다.

이날 공청회는 산업부의 의뢰를 받아 연구용역을 진행한 딜로이트안진 회계법인의 결과 발표를 시작으로 이에 대한 유관 공기업과 민간기업, 학계의 리뷰와 참가자 질의‧토론으로 진행됐다.

딜로이트안진, 우드맥켄지 컨소시엄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지난 5월 16일까지 6개월간 연구용역을 진행했다.

▲ 송태인 딜로이트안진 전무가 연구용역 결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송태희 딜로이트안진 전무는 용역결과를 발표하며, 석유·가스 자원개발 개편 방안으로 △석유 자원개발 기능의 민관 이관 △석유 자원개발 전문회사 신설 △석유공사 자원개발 기능의 가스공사 이관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통합 등 네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광물 자원개발 개편방안으로는 △한국광물자원공사 산하 전문 자회사 설립과 △민간 참여 확대 등 두 가지를 제안했다.

송 전무는 “국내 에너지자원공기업은 투자 프로세스에서 유가 급락과 같은 리스크 관리 및 통제, 견제 기능이 부족하고, 투자 이후 관리 감사 체계도 미흡다는 단점이 있다”며 “글로벌 메이저 대비 사업추진역량을 추산했을 때 BP가 100이라면 3사의 자원개발역량은 50%, 사업관리역량은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해외자원개발은 지속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며 “민간 자본 참여를 확대시켜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위험요인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자회사 설립의 경우 독립성을 얻을 가능성이 낮아 현재의 부실상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실현 가능성이 없어 사실상 석유, 광물공사의 자원개발 기능을 제거하고 핵심자산은 민간으로 이양해 경영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 석유ㆍ광물공사 “자원개발 역량 사장 안돼”
   민간 “공기업 중심 지속 투자ㆍ제도 지원 필요”

▲ 이재웅 석유공사 기획예산본부장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석유, 광물공사는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재웅 석유공사 기획예산본부장은 “공사가 부채 중심의 자본조달로 대형화를 한 것은 실수이나 이것이 석유개발의 지속적인 당위성을 훼손할 수는 없다”며 “민간기업이 효율성은 있겠지만, 석유개발은 리스크를 감당하고 일관적으로 추진해야하는 만큼 일정 규모, 즉 시장이 형성되기까지는 국영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기 한국광물공사 본부장도 “2012년 이후 광물공사의 노력으로 현재 탐사본은 선진기술에 육박하고 마다카스카르 광구 운영 등 자원개발 역량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며 “우리나라 해외자원개발 상황에서 민간 중심 추진은 비현실적인 만큼 사업이 궤도에 오르기 전까지는 공공기관의 참여와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호준 가스공사 해외사업처장은 “석유공사와의 부분 또는 완전 통합은 관련 인력‧자산의 중복 투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한 기업에 자원개발 리스크가 집중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며 “특히 가스공사 민간 소액주주의 입장, 통폐합시 양 공사의 인적 반발 등의 문제에 대한 심도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드러냈다.

민간기업도 공공의 역할이 필요하며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응규 LG상사 전무는 “장기적인 인력육성 및 경험 축적이 필요한 자원개발산업을 민간이 전부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석유공사의 운영능력 등 무형자산 활용방안을 고민하고, 민간에 대한 성공불융자 확대 등 제도적 지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강성욱 포스코 원료그룹장 역시 “포스코가 20년전 투자한 브라질 펠릿의 경우 10년 만에 수익을 냈지만 이후 10년 넘게 연 250억원의 수입을 얻고 있다”며 “자원개발은 장기적 호흡으로 봐야 하며, 조세지원 등 정부의 우호적 정책 전개도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계 “통폐합 비용 및 효과 보완
…시스템 재정립이 우선”

▲ 신현돈 인하대 자원공학과 교수가 말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이번 개편안에서 실행시의 구체적 투자비용과 효과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을 아쉬움으로 지적했다. 또한 기관 기능 조정 또는 통폐합이 아니라 합리적인 투자와 육성이 가능한 장기적이고 독립적인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제안했다.

신현돈 인하대 교수는 “공기업의 해외자원개발 투자 및 평가에 대해 20원을 주고 100원짜리 빵을 사오라는 ‘빵셔틀’이 연상된다”며 “단기적 성과에 치중하지 않고, 장기적인 투자와 육성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해법”이라고 일갈했다.

김태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자원개발전략실장은 “자원개발 역량과 경험이 소실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현시점에서 자산 매각은 헐값 매각이 우려돼 다른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며 “정부가 민간을 지원한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포기한다는 인상이 있어 정부의 지속적인 의지를 표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좌장을 맡은 허은녕 서울대 교수 역시 “각각의 방안에 얼마 정도의 재원이 소요되고 이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보완을 요구했다.

또한 허 교수는 “마침 어제 산업부가 한전과 전력신산업펀드 2조원 재원 조성을 발표했다”며 “과감한 투자, 실패를 용인하는 투자, 장기적 투자, 공공성 투자라는 데 이는 해외자원개발에 필요한 것”이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 방청객 “정부 빠진 보여주기식 공청회 무의미 ” 비판 
   석탄ㆍ광물공사 노조 “책임회피 정부, 기능조정 중단하라” 성토   

▲ 광물공사 노조원이 공청회장내에서 반대 카드를 내걸고 있다.

공청회에 지켜본 이들도 아쉬움을 표했다. 특히 정부가 자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공청회를 방청한 국회 관계자는 “정작 주체인 정부가 불참하면서 개편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토론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입장만 일방적으로 표명하는 자리가 됐다”며 “딜로이트가 연구를 수행했지만 정부의 입김이 반영됐음이 분명한 만큼, 6월 공기업 기능조정안 발표를 앞두고, 후폭풍을 우려한 정부가 공청회를 앞세워 간을 본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다른 참관자는 “공기업의 무분별한 해외자원개발 투자에 대한 비판과 개선은 필요하나 성격이 다른 기관을 통폐합 하는 등 공기업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자원개발은 결국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투자와 육성의지가 중요한 만큼 이를 위한 시스템 재정립이 우선돼야 하는데 이같은 방안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쉽다”고 평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서는 석유공사 및 광물공사 노조원 십여명이 플래카드를 들고 반대구호를 외쳐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정부가 사실상 자원개발 투자 및 추진을 주도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전부 공기업에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향후 전개 추이에 따라 보다 강력한 투쟁에 나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병수 석유공사 노조위원장은 “이번 개편안은 사실상 정부 돈을 들이지 않고 부채를 해결하려는 꼼수”라며 “얼마 남지 않은 우량자산을 민간에 이양해서, 재벌 배만 불리려는 정책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성토했다.

신승재 광물공사 노조위원장 역시 “추진체계개편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에너지안보를 포기하려는 이번 개편안은 반드시 재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정기 광물자원공사 기획관리본부장이 말하고 있다.
▲ 고호준 가스공사 해외사업처장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 허은녕 서울대 교수가 말하고 있다.
▲ 공청회장 앞 복도에서 석유공사 노조원들이 플래카드 등을 걸고 반대 구호를 제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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