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흔든 ‘다윗’ 찬사 대신 ‘시장교란자’ 비판 고개
날세운 정유사‧등떠미는 정부…저유가가 되레 ‘악재’
업계, “화물카드 조속 도입 등 정책적 지원 필요”

[에너지신문] 국내외 유가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알뜰주유소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7일 현재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729.41원으로 2010년 3월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공급과잉과 달러화 강세로 당분간 이같은 국제유가 하락이 지속될 전망이다.

저유가가 지속되면서 알뜰주유소의 행보엔 적신호가 켜졌다. 고유가 바람을 타고 유가안정을 목적으로 등장한 만큼 현 상황에서는 가격인하 효과가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국감에서 알뜰주유소는 막대한 예산지원에 비해 성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이 다수 제기됐다.

저유가 바람을 타고 적자행진을 벌이고 있는 정유업계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정부의 정책적 배려를 요구하면서 알뜰주유소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연일 높이고 있다.

석유시장에서 정유사들의 독과점적 지위를 타파했다는 호평을 뒤로 하고 정부기관이 시장을 억지로 통제, 시장질서를 교란하고 있다는 비판에 다시금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실제 지난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공공기관의 시장참여 기능 분석’ 보고서를 통해 석유공사의 알뜰주유소 사업이 시장 교란을 발생시킬 여지가 높아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연구를 진행한 허경선 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유일하게 적정 이익률을 가격산정 기준으로도 채택하지 않았다”며 “적정 이윤을 가격에 산정하지 않는다면 시장결정 가격보다 낮은 가격을 제시하게 되고 역시 시장질서와 공정경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부정적 평가는 최근 해외자원개발, 4대강 등 지난 정권에 대한 심판론과 맞물려 상당한 시너지를 발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체 경쟁력 확대의 열쇠로 주목받았던 화물복지카드의 진행도 저유가의 마수에 휘말렸다. 산업부가 최근 정유사들의 실적 악화로 경쟁 강화를 불러올 신규 카드 도입에 조심스러운 입장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한국자영알뜰주유소협회는 소비물량이 큰 화물차량을 유인하기 위해 기존 카드보다 할인폭과 물량을 대폭 확대한 새로운 카드 도입을 추진했다. 전국 알뜰주유소 운영자와 화물자동차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요조사를 진행했고, 이를 바탕으로 협회와 카드사가 손을 잡은 것.

정부의 별도 예산 지원 없이 알뜰주유소 경쟁력 확대 및 소비자 이익 극대화 등을 실현할 수 있는 만큼 무리없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하지만 국토교통부에서 “기존 카드사와 정유사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미심쩍은 이유로 통과를 반려한 뒤, 현재까지 표류하고 있다.

반면 산업부는 비교적 도입에 호의적이었으나 최근 정유업계의 호소에 저유가 대책 수립에 돌입하면서,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 명분엔 공감하나 전체 산업적 측면에서 정유 산업이 저유가로 어려운 상황에서 경쟁을 부추기기엔 무리가 있다며 한발 물러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연내 화물복지카드 도입은 사실상 요원하게 됐다.

저유가가 정유사 뿐만 아니라 알뜰주유소의 발목까지 잡은 셈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은 향후 알뜰주유소의 미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정부는 현재 알뜰주유소 자립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석유공사와 농협, 한국도로공사가 운영하고 있는 알뜰주유소를 별도 법인으로 분리해 민간기업에 알뜰주유소 운영을 일부 맡기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하지만 고유가라는 배경이 사라져 가격 인하라는 눈에 보이는 효과를 상실한 알뜰주유소의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석유업계에서는 산업부와 석유공사가 말많은 알뜰주유소를 민간에 이양하고 동북아 오일허브사업에 몰두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민간기업, 즉 정유사는 유통망 확대의 기회로 삼을 수는 있지만 공급가 격차로 부작용이 만만치 않아 거리낌이 크다.

유력한 자력 방안이었던 화물복지카드마저 막히면서 업계 내에서마저 알뜰주유소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알뜰주유소업계 관계자는 “여기서 알뜰주유소의 입지가 약화되면 또다시 정유사 중심의 비정상적 석유 시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의 막대한 예산지원과 사업자들의 희생 역시 무위로 돌아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알뜰주유소 가격이 국내유가 기준가가 되면서 기존 정유사 폴 주유소들과의 눈에 보이는 가격 격차가 줄었을 뿐, 여전히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며 “정유사의 독과점적 지위에 휘둘렸던 석유시장을 소비자 중심으로 재편하는 등 다수의 순기능을 무위로 돌리지 않으려면 화물복지카드 도입 등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