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제품 비해 안전성 높지만, 의무화에는 신중
소비자 인지도 확대, 업계와 의견 조율 통해 결정

▲ 여성소비연합 김순복 사무처장이 부탄캔 안전장치 실증실험 결과설명회에서 소비자단체를 대표해 부탄캔 안전장치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에너지신문] 스프링식이냐, 파열판식(CRV : Countersink Release Vent)이냐?  결국 부탄캔 안전장치의 궁극적인 선택은 소비자와 업계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각기 다른 두 가지 안전장치가 유효성은 있지만, 특정 방식으로 의무화하기에는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가 그 배경이다. 또 시범운영 등 현장 적용에 앞서 안전장치 성능에 대한 소비자 인지도 확대와 대국민 홍보 등도 선행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조웅환 에너지안전과장은 “업계가 안전장치의 필요성이나 시범적용, 의무화에 대한 의견접근을 상당히 이룬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당장 이 문제에 대한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않겠다”라며 “앞으로 업계와의 지속적인 의견조율을 통해 합리적으로 구체적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자원부와 한국가스안전공사는 21일 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정부 및 업계, 소비자 단체 등 관계자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일회용 부탄캔 안전장치에 대한 유효성을 종합검토 한 ‘부탄캔 안전장치 실증실험결과 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는 정부의 연구용역과 실증실험이 지난달로 최종 마무리됨에 따라 향후 안전장치의 의무화 또는 시범적용 등의 구체적인 적용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하지만 결론은 쉽게 나지 못했다.

한국교통대학교 백종배 교수의 ‘1회용 부탄가스캔 사고 방지를 위한 안전강화방안 연구’와 방재시험연구원의 ‘안전장치 성능 비교실험 및 사고 방지를 위한 실험’을 통해서도 두 안전장치의 유효성과 사고예방 효과를 명확히 입증하지는 못해 구체적인 적용방안에 대한 합의점은 도출되지 못했다. 제품 모두가 안전장치를 부착하지 않은 기존 제품에 비해 안전성이 우수하나 우려할 만한 문제점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백 교수는 안전성 강화 방안으로 시범운영을 제시했다. 각기 안전장치를 부착한 제품을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표시해 소비자들의 선택을 유도하거나, 제조사별로 생산제품의 일정 비율로 안전장치를 의무적으로 장착해 판매함으로써 유효성을 보다 정확히 검증하자는 제안이다.


▲ 한국교통대 백종배 교수가 '1회용 부탄가스캔의 사고방지를 위한 안전강화 방안'과 실증실험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안전장치 실증실험결과 어떻게 나왔나?

교통대의 안전성평가 용역과 방재시험연구원의 실증실험 결과 화산(대표 장래익)의 스프링식 안전장치와 대륙제관(대표 박봉준)의 CRV 모두 캔의 폭발 가능성을 낮출 수 있는 안전장치로서의 성능을 입증했다. 인위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극한의 연소기 사용조건 속에 스프링식의 경우 안전밸브의 작동 후 캔이 폭발하기까지 일정시간을 유지했고, CRV는 캔이 파열 현상을 방지한다는 측면에서 기존 제품에 비해 나았다.

하지만 스프링식은 실증실험만으로 안전장치 작동성능의 정확성을 입증하기는 부족했고, CRV는 압력상승으로 인한 용기의 파열을 막을 수는 있지만 안전장치가 작동할 경우 발생하는 급격한 화염으로 인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점이 제기됐다.

결론을 통해 백 교수는 부탄캔에 안전장치를 적용할 경우 최근 5년간 발생한 100건의 사고 유형 중 ▲외부열원을 비롯한 과열불판 ▲용기가열 등 75건을 막을 수 있고, CRV는 61건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예측했다. 따라서 안전장치의 의무사용을 강제하기보다, 문제점을 보완하는 한편 사고방지 성능 향상과 제조기준을 개선할 수 있도록 시범운영이나 현장 적응시험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부탄캔 안전장치 어떻게 시작됐나?

부탄캔 안전장치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은 2010년이다. 당시 전체 가스사고의 감소 추세와 달리 유독 부탄캔 관련사고의 비중이 급증했다. 가스안전공사는 부탄캔 사고를 5대 중점관리 대상으로 분류, 사고예방을 위해 스프링식 안전장치 부착 의무화를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탄캔 사고는 가스사고의 약 24%를 차지했다. 사고로 인한 인명피해 역시 적지 않아 공사는 3월 제조사들을 대상으로 사장단 간담회를 개최했고, 이후 부탄캔 안전포럼을 발족해 이를 기반으로 폭발사고 방지를 위한 스프링식 안전장치 의무화를 추진했다.

2012년까지 6차례에 걸친 포럼을 통해 가스안전공사는 ▲스프링식 안전장치 의무화 방안 ▲성능기준 및 적용시 인센티브 제공방안 등을 협의했으나 각기 상황이 다른 제조업계간 의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스프링식 안전밸브와 관련 화산을 제외한 썬그룹(태양산업, 세안산업)과 대륙제관, 원정제관(대표 송성근), 대성산업(대표 김영대) 등 대부분의 업체들은 안전장치 적용에 대한 신중론을 폈기 때문이다.

특히 대륙제관은 스프링식 안전장치를 의무화 할 경우 자사에서 개발해 제품에 적용하고 있는 CRV도 안전장치로서 동등히 인정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러한 업계간 논란이 장기화되면서 2012년 하반기 산업부가 문제에 직접 관여하게 됐다.

이를 계기로 정부 차원의 제3기관에 의한 연구용역과 함께 2013년 안전장치의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한 실증실험까지 진행하게 됐다.


▲ 원정제관 조복제 상무가 제조사를 대표해 실증실험 결과에 대한 질문과 함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안전장치에 대한 제조사들 입장

부탄캔 안전장치 의무화에 대한 공식적인 논의가 시작된 지도 벌써 만 5년이 지났다. 그간 수차에 걸친 논의와 의견조율, 연구용역과 실증실험이 이뤄지면서 업계는 안전장치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하지만 여전히 각론에서는 그 적용방식이나 적용시점 등에는 여전히 각기 다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륙제관의 경우 스프링식이나 CRV 등 두 가지 안전장치 중 하나를 선택해 적용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대륙은 이미 맥스 CRV란 이름으로 자사의 안전장치를 부착한 제품을 상용화해 판매하고 있다. 안전장치 의무화가 진행되지 않더라도 CRV를 부착한 제품의 생산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갈 계획이다.

원정제관과 대성산업은 소비자에 대한 보다 안전한 제품의 공급이란 대의는 공감한다. 하지만 여전히 안전장치 적용에 신중론을 펴고 있다. 다만 달라진 점은 소비자 보호란 측면에서 정부가 안전장치의 부착을 의무화하거나 시범운영을 진행한다면 동참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시장의 약 70%를 점유하고 있는 썬 그룹 역시 근본적으로 소비자 안전을 위한 안전장치의 적용은 반대하지 않는다. 썬 그룹 역시 이미 CRV와 유사한 RVR(Rim Vent release)이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스프링식 안전장치 개발을 완료했고, 제품을 적용할 의사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전체 제품 공급량이 막대하다 보니 어려움이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공정전환으로 인한 막대한 비용소요 등을 감안할 때 안전장치에 대한 충분한 현장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스프링식 안전장치를 가장 먼저 개발한 화산 역시 다소 유연성 있는 입장이다. 기본적으로는 CRV나 RVR 제품은 사용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보관과 유통을 위한 제조자용 안전장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스프링식 안전장치 의무화나 미흡한 점을 보완해 두가지 안전장치 모두 병용하는 것을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설명회를 마치며 정부를 대표해 산업통상자원부 조웅환 에너지안전과장이 부탄캔 안전장치와 관련 향후 업계의 역할과 정부의 의사결정 방향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 하고 있다.

결국 의사결정 중심은 ‘업계’와 ‘소비자’

이전과 달리 설명회를 계기로 한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 단체의 직접적인 참여와 의견 개진이었다. 제조사들도 무조건적인 반대보다는 소비자들을 위해 사고예방을 위한 안전장치에 대한 공감대와 필요성에 유연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자 단체를 대표해 설명회에 참석한 여성소비자연합 김순복 사무처장과 안전실천생활연합 이윤호 실장은 설명회의 강평을 통해 그동안 부탄캔 안전장치 논의에서 소비자들이 소외돼 온 것에 대한 유감을 토로했다. 또 보다 정확한 정보제공과 홍보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안전한 정보가 전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윤호 실장은 “세월호 사건이후 소비자들의 의식이 달라지고 있다. 나부터 보다 안전한 제품을 먼저 선택하고 있다”라며 “정확한 정보제공을 통해 소비자들이 보다 안전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의무화에 앞서 제조사들도 보다 안전한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순복 사무처장도 “소비자들에게  사고와 안전장치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시장점유율이 높은 제조사가 누구보다 더 솔선해 소비자의 안전을 위해 나서줄 것을 부탁했다.

산업부 조웅환 과장도 “대의는 부탄캔 사고를 줄이는 것이다. 설명회의 목적 중 하나가 실증실험 결과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다”라며 “미진한 부분도 있지만 실증실험을 토대로 보다 정확한 업계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말했다.

또 의무화와 관련해 “업계 의견 전진이 많이 있었다. 법제화나 시범운영에 대해 정부보다는 업계의 역할과 의견이 중요하다”라며 “독단이나 모 아니면 도식의 결정이 아닌 좀 더 소비자의 입장에서 신중하게 방향을 찾겠다”는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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