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경쟁 강화 정책 유지…‘안정기’ 알뜰주유소, 증가세 둔화
전자상거래, 정유사 참여 ‘성장통’…혼합판매 활성화, 정부 지원 본격화

석유유통시장은 정부주도의 경쟁강화체제가 지속되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지난 정부의 석유 유통구조 개선 정책을 지속하겠다고 밝힌 상태. 지난 정권 말에 본격 진행된 석유정책은 새 정부 들어 오히려 속도를 내고 있다. 제2라운드에 돌입한 알뜰주유소, 전자상거래, 혼합판매 등 3대 정책을 진단해 봤다.

정권 바뀌어도 석유정책 ‘그대로’

지난 정부의 석유정책이 새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28일 발표한 ‘박근혜정부 2013년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물가안정책의 일환으로 석유시장의 진입 완화, 경쟁 촉진 등을 추진해 가격인하를 유도할 방침이라고 명시했다.

알뜰주유소 전자상거래 혼합판매로 위시되는 MB정부의 석유제품시장 유통구조 개선대책을 유지하되 정부는 공급선 다변화와 기존 정책 활성화에 석유정책 방점을 찍은 셈.

특히 상대적으로 논란이 됐던 알뜰주유소의 가격인하 효과 극대화와 혼합판매 활성화를 위해 적극적 행보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구체적으로 정유4사의 시장 독과점 해소를 위해 삼성토탈ㆍ수입물량을 확대하는 한편 참여도가 낮은 혼합판매의 경우 인센티브를 제공, 전자상거래와 연계해 활성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새 정부가 더 적극적인 시장 개입의지를 밝힌 데는 그간의 정책이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요지부동했던 정유4사 내수 점유율은 올들어 균열이 생겼다. 업계와 석유공사에 따르면 상반기 내수시장 판매량 기준으로 정유사별 점유율은 SK에너지 28.9%, GS칼텍스 25.2%, S-OIL 14.7%, 현대오일뱅크 13.7%로 집계됐다. 모두 지난해보다 줄어든 셈. SK에너지가 3.4%p로 가장 많이 줄었으며, 이어 GS칼텍스 1.8%, S-OIL 1.2%, 현대오일뱅크 0.7% 순으로 감소했다.

반면 석유 수입사 등 비정유사 비중은 17.5%로 지난해보다 7.1%나 늘었다. 이들이 S-OIL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사 점유율을 앞지른 것은 사상 처음이다. SK 점유율이 20%대로 떨어진 것도 6년만이다.

업계는 정유사의 정기보수 일정으로 국내 정유사의 출하량이 줄고, 수입량이 늘었지만 내수 시장의 변화가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풀이한다. 후발업체의 영업강화와 더불어 정부의 알뜰주유소 확대, 수입제품 인센티브 정책에 힘입은 수입물량 증가가 점유율 변동의 주 요인이라는 것. 특히 후발주자인 현대오일뱅크와 S-OIL의 경우 알뜰주유소 공급이 내수 점유율 향상에 주효했다는 지적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 정책에 따른 변동 요인이 내수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며 “정부가 정책 지원을 더욱 강화해 정유사의 독점적 위치를 흔들어 석유시장 가격협상권을 지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내수 부진에 따라 주유소 시장도 변화를 겪고 있다. 정유사들이 실적이 부진한 직영 주유소를 대폭 줄이고 있기 때문. 6월 말 기준 SK에너지는 750개, GS칼텍스 291개, 현대오일뱅크 227개, S-OIL 62개의 직영점만 남게 됐다. 상반기 기준 GS칼텍스 47.1%, S-OIL 42.5%, 현대오일뱅크 15.9%, SK에너지 9.8% 순으로 직영주유소를 정리했기 때문. 그 사이 비정유사상표 주유소는 35.7% 늘어난 1539개가 됐다.

산업부 관계자는 “주유소와 정유사의 수직계열화가 고착되며 정유사가 지정하는 가격이 시장에 그대로 반영돼 서민가계에 부담을 안겨온 것이 사실”이라며 “최근 정부 정책에 의해 정유사의 독과점적 지위를 흔들고 유가 안정에 기여한 만큼 경쟁 중심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정권이 바뀌어도 경쟁강화를 위한 석유정책은 지속될 전망이다.(사진은 석유가격 인하를 주도하는 알뜰주유소 전경)
알뜰주유소, 증가세 둔화 뚜렷 

알뜰주유소 정책은 유류를 정유사와 석유공사에서 반반씩 구매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주유소는 한 정유사와 일괄계약을 통해 유류를 구입, 정유사의 출고가가 그대로 소비자가에 반영됐다. 하지만 알뜰의 경우 공급처를 양분함으로써 가격경쟁을 유도, 단가하락을 꾀한다.

2011년 12월29일 경기도 용인 경동주유소가 1호점으로 개장한 뒤 지난 7월31일 기준 945개를 돌파한 상태. 전년 동기(641개)에 비해 304개 늘었다. 농협주유소 431개소 고속도로주유소 158개소 자영주유소 356개소 등 전국 주유소의 8% 수준이다. 올 4월 900개를 돌파한 이후 증가세는 다소 둔화되고 있다.

도입 후 석유업계의 강한 반발, 가격인하 효과 등을 두고 난항을 거듭했지만, 지금은 유가하락과 정유사 독점구조 타파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혼란스러웠던 알뜰주유소 정책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바꿔 놓은 것은 올 초 유류공급사업자 선청 입찰. 입찰 과정에서 정유사의 흔들리는 입지가 외부에 고스란히 드러나며 세간에 충격을 안겼다.

정유사 물량 공급권을 내건 입찰에서 지난해 공급자였던 GS칼텍스가 탈락하고, S-OIL이 남부권 사업자로 현대오일뱅크는 중부권 사업자로 선정됐다.

당시 석유공사와 농협은 GS칼텍스·현대오일뱅크와 1년간 계약 연장이 가능했지만 재입찰을 택했다. 입찰 방식도 협상을 통해 추후 가격조정을 유도하는 협의입찰로 개선했고, 가격 기준도 국제가로 변경했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더 악조건이었지만 SK이노베이션·GS칼텍스·S-OIL·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 모두 납품가를 대폭 낮춘 제안서를 제출했다.

S-OIL이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어 평가위원들로부터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현대오일뱅크 역시 공격적으로 입찰에 참여해 최종 낙점됐다.

지난해 입찰과정에 유찰을 거듭하다 3차 입찰에서 간신히 공급자를 선정했던 것과 상반된 모습이었다.

알뜰주유소가 농협, 도로공사 주유소를 영입하며 공급물량을 늘였기 때문. 지난해 말까지 알뜰주유소에 공급된 유류는 약 2조3000억원 규모로 내수시장의 3.3%에 달했다. 정부가 책정한 올해 공급물량은 월 1억ℓ, 총 12억ℓ로 국내 총 공급물량의 2%에 해당한다. 최근 수요부진으로 난항을 겪고 있는 정유업계로선 대량의 고정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 컸다.

정유사의 달라진 모습은 알뜰주유소 정책의 성공에 무게를 실었다. 알뜰주유소가 또 인근의 가격 블랙홀 역할을 하면서 지역 유가 인하에 기여, 정유사의 가격결정권에 균열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얻어냈다.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알뜰주유소 전환과 시설개선 등에 총 58억을 투입, 약 1709억원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일으켰다. 반면 업계의 반발은 여전하다. 알뜰주유소가 인근 주유소의 가격을 인하하는 효과를 내긴 했지만, 주유소간 ‘치킨게임’으로 전락해 영세업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조기안착’ 전자상거래, 정유사 참여로 ‘흔들’

석유제품전자상거래는 인센티브 정책을 도입, 정부의 석유정책 중 가장 빠르게 안착했다는 평가다. 이 제도의 핵심은 중개자 없이 인터넷 옥션과 같이 온라인 상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가 직접 연결하는 데 있다. 다양한 공급처의 가격을 공개해 소비자에게 가격결정권을 부여, 유가 인하를 꾀한 제도다.

공식명칭은 ‘석유제품 현물 전자상거래 제도’로 한국거래소 파생상품시장본부가 추진, 지난해 3월30일 공식 개장했다.

개장 첫날 거래는 고작 경유 3단위(6만ℓ). 6월 4일까지 두달여간의 거래량도 휘발유 11만ℓ, 하루 평균 거래량은 1만5100ℓ에 그칠 정도로 미진했지만, 정부의 인센티브 확대로 상황은 반전됐다.

정부는 지난해 7월부터 △석유전자상거래용 수입석유 할당관세(3%) 면제 △바이오디젤 2% 혼합의무 완화 △ℓ당 약16원의 석유수입부과금 환급 △세액공제율 0.5% 확대 등 다양한 혜택을 부과했다.

시장 반응은 빨랐다. 7월 일평균 거래량 353만ℓ를 기록, 전달(37만ℓ)보다 828.9% 늘어났다. 이후 8월 610만ℓ, 9월 735만ℓ로 지속적으로 증가, 개장 1년째인 지난 2월 917만ℓ를 기록했다. 특히 경유는 국내 소비량의 10%를 차지하며 일 평균 거래량 823.6만ℓ를 기록, 개장 당시보다 88배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신감을 얻은 정부는 효율을 높이기 위해 지난 7월1일부터 정유사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올해 정유4사는 각각 경유 260만배럴, 휘발유 50만배럴을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거래하기로 합의했다. 계획대로라면 수입사 물량을 합쳐 국내 연 소비량 중 경유는 10%, 휘발유는 4%를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거래된다.

야심차게 정유사 참여를 이끌어 낸 7월 한달 월 거래총량은 1억8817만ℓ로 6월(1억7032만ℓ)인 전달보다 10.5% 증가했으나, 일평균거래량은 818만ℓ로 전월(896만ℓ)대비 8.7% 감소했다. 7월 영업일(23일)이 6월 영업일(19일)보다 4일 많아서다.

전체 거래량 중 정유사 매도량은 7914만ℓ로 전체의 42.1%에 달했다. 정유사별로는 SK가 휘발유와 경유 각각 592만ℓ와 2188만ℓ, 에쓰오일 812만ℓ와 1688만ℓ, GS칼텍스 746만ℓ와 1299만ℓ, 현대오일뱅크 231만ℓ와 378만ℓ를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휘발유는 정유사 물량이 전체의 68.2%(2381만ℓ)를 차지했다.

이를 두고 시장과 정부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상태다. 정부는 일단 정유사의 참여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는 분위기다. 주무부처인 산업부 석유산업과 관계자는 “정유사가 아직 적응기간 중임을 감안할 때 상당히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시장에서는 우려했던 부작용이 나타났다는 반응이다. 가격 상승과 정유사의 시장 지배력 강화가 현실로 나타났다는 것.

7월 수입사 공급물량이 9658만ℓ(51.3%)로 전월 1억1750만ℓ(69.0%)보다 2092만ℓ 감소한 점도 주목했다. 수입사 거래량은 5월 2억354만ℓ, 6월 1억6070만ℓ로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5월 중순부터 바이오디젤 2% 혼합의무 면제혜택 폐지, 할당관세 3% 감면 등 혜택이 줄줄이 폐지된 영향이다. 하반기 공급량은 이보다 더 줄어들 전망이라 향후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정유사의 지배력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한 대리점 사업자는 “여러 공급자간 경쟁을 유발해 기름가격을 낮추겠다는 목표로 도입한 전자상거래가 정유사 참여로 기존 유통시장 시스템으로 회귀했다”며 “정유사 위주의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혼합판매를 활성화해 공급자를 늘여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가격.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7월 석유전자상거래가 이뤄진 휘발유 평균 거래가격은 1826원으로 전월 1797원보다 29원 더 높았다. 경유 평균 거래가격도 마찬가지다. 7월에는 1607원으로 1564원이었던 6월보다 43원 올랐다.

일부에서는 정유사가 ‘기준가격’ 관리를 위해 자사 대리점을 활용해 거래가를 높인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최근 전자상거래 가격은 공급물량이 늘면서 가격협상의 기준이 되는 기준가 노릇을 해왔다. 한국거래소는 7월 ‘석유제품 현물전자상거래 월간동향’에서 전자상거래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전자상거래에서 정유사와 특정대리점이 사전에 물량ㆍ가격 등을 사전에 담합, 높은 가격에 매매를 진행하는 통정성거래가 의심된다고 명시하기도 했다.

다른 대리점 관계자는 “정유사들이 거래소에 사전 신고할 필요가 없고 고가매도에도 용이한 경쟁매매를 주 거래방식으로 선택하고 있고, 거래가 없는 출하지에서 정유사가 고가의 물량을 경쟁매매로 내놓으면 그 즉시 판매가 이뤄지는 기형적 현상이 일부 발생했다”며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유사는 꼼수를 통해 월 판매 목표량 충족과 시장가 상승이라는 두가지 효과를 함께 거둔 셈”이라고 비판했다.

김원대 한국거래소 파생상품본부 상무는 “정유사간 경쟁이 일어날수 있도록 예를 들어 어떤 특정지역에 특정 정유사만 있다면 그 정유사만 매도할 수밖에 없어서 경쟁이 없거나 약화된다”며 “지역별 조사 통해 지역단위(출하지)를 넓히는 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산업부 관계자는 “7월 가격 상승분은 국제유가 상승 영향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 비교로 결론지어선 안된다”며 “제도 자체가 아직 도입단계인 만큼 두세 달 가량 시장상황을 더 지켜본 뒤, 문제점을 고쳐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혼합판매 주유소 등장 ‘눈앞’…관건은 對 정유사 협상

정부의 석유유통개선책 중 가장 지지부진한 혼합판매도 본격적인 활성화 행보에 나섰다. 석유혼합판매란 특정 정유사 폴을 달고 주유소 영업을 하되, 일정 비율은 타 정유사 석유제품을 섞어 쓸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한다. 정유사 간 가격 인하 경쟁을 유도, 기름값을 인하하기 위해 지난해 9월 법제화됐지만 현재까지 석유혼합판매 계약변경을 한 주유소는 전무하다.

이에 정부는 제도 활성화를 위해 시장에 본격 개입했다. 예고대로 전자상거래 시장과 연계해 경쟁시장을 구축하는 안을 마련, 6월 말 정유사 상표주유소의 혼합판매 전환 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이 안은 폴 주유소 중 특정 정유사와 전량구매계약이 있는 주유소는 석유제품 전자상거래에 참여해 직접구매 할 수 없으며, 자가상표(무폴)주유소 또는 혼합판매 주유소로 전환하면 별도 신청 없이 해당 사실 통보만으로 거래 참여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정부는 주유소가 정유사와의 직접 협상하는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산업부와 주유소협회가 지원센터를 구성, 폴주유소의 전환신청을 일괄적으로 접수·위임받아 전환희망 주유소 목록을 정유사에 제출, 계약변경 협상을 진행하도록 했다.

혼합판매 표시에 따른 소비자의 품질우려 완화를 위해 혼합판매 전환 주유소에 대해 ‘품질보증프로그램’ 가입 지원계획도 밝혔다. 정부는 프로그램 가입비용 총 660만원 중 90%를 석유관리원이 부담토록 할 방침이다.

접수 두달 여가 지난 지금, 여전히 전환주유소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주유소업계의 참여도는 예상보다 높지만, 협상이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 협상장에 나선 정유사가 낮은 혼합판매 비율, 대량 의무구매 등을 요구해 정부 개입을 무색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7월1일 접수를 시작한지 20여 일만에 40개 가까운 곳의 주유소가 전환을 신청했고 현재 신청 점포수는 100여개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채권유무, 혼합비율 등을 두고 정유사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어 1호 혼합판매점 등장은 요원하다.

현재 혼합판매 전환을 신청한 주유소들은 대개 40~50%, 일부 주유소는 70% 이상의 혼합비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대부분의 정유사는 20%를 상한선으로 제시했다. 일부 정유사는 비율 대신 일정량을 의무적으로 구매할 것을 요청했다. 월 1000드럼만 구매하면 타 유사 제품 구매량에 상관치 않겠다는 것.

하지만 6월 기준 주유소 평균 판매량은 1060.85드럼. 평균보다 판매량이 많은 주유소도 4153개소로 전체의 32.6%에 불과하다. 대량 의무 구매를 통해 혼합비율을 최대한 억제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유소와 의견차이가 커 협상과정에서 마찰이 불가피하다. 정유업계는 기존에도 상표권 침해, 사고시 책임 소재 불문명, 품질 저하 등을 이유로 혼합판매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해왔다.

실수요도 문제다. 주유소들이 신청을 철회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 실제 지난해 주유소협회가 전수조사를 실시한 결과 혼합판매를 희망한 주유소는 1만2000여 주유소 중 30%에 달했지만 실제 전환한 곳은 없었다. 카드 혜택이나 소비자 신뢰 등을 이유로 신청 후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일부 주유소는 정유사와의 계약에서 유리한 입장에 선취하기 위해 전환신청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 도입 2년차에 접어든 정부의 석유정책은 업계의 강한반발을 불러왔다. 사진은 알뜰주유소 도입 직후 열린 한국주유소협회의 도입반대 궐기대회 현장.
논란 여전…규모 보다 내실 확보 관건

3개 석유정책 중 혼합판매를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 정부의 평가다. 특히 규모면에서 내수 시장의 7~10%를 차지, 시장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목표치에는 상당부분 근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길은 멀다. 여전히 가격 논란이 거센데다, 자영업자 및 국내업체 역차별 논란, 정유사와의 힘겨루기 등 난제가 산적하기 때문.

무엇보다 정부지원이 없어도 자생할 수 있도록 자체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자상거래의 경우만 보더라도 당장 거래활성화를 위해 전폭적으로 면세지원에 나서 규모를 키웠지만, 혜택 종료 후 수입사 공급 물량이 즉각 줄었다. 정유사 시장지배력 확대에 힘을 보태면서 심각한 성장통을 안기고 있다. 알뜰 주유소도 올해말 세액감면 우대제도가 종료될 방침이라 자립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자체적인 공급선 확보와 경영능력 향상을 위한 정부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모니터링시스템 및 부당행위 제재 강화도 필요하다. 석유정책을 둘러싼 가격논란의 핵심은 정부 지원에 비해 소비자가 체감하는 가격인하효과가 낮다는 데 있다. 막대한 세금이 가격에 반영될 수 있도록 보다 철저하고 투명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또 정부혜택을 부당하게 활용한 업소에 대한 제재행위 역시 강화해야 한다.

아울러 유류세 축소 방안도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업계는 줄곧 고유가의 원인으로 유통마진이 아닌 유류세를 지목해왔다. 소비자시민모임 석유시장감시단은 올초 정부가 고유가에 편승해 지난해 당초 예상보다 5908억원 유류세를 더 걷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ℓ당 몇 십원 정도에 불과한 정유사·주유소 마진을 줄여 유가를 내리겠다는 정부의 발상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며 “정말로 서민 기름값을 내리고 싶다면 수출 기업에만 유리한 고환율 정책을 포기하거나 기름값의 50%를 차지하는 유류세를 낮추면 된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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