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폐물 법제화, 지금 아니면 10년 후”

여야 공감·정부 의지·국민 지지 모두 ‘최적 조건’
특별법, 원전 확대·축소와는 별개...책임감 가져야

[에너지신문] 정재학 제11대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 회장은 올해 1월부터 2년간 학회를 이끈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제정이라는 중대 과제가 난관에 봉착한 가운데 4월 총선까지 ‘골든타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본지는 국내 최고의 방폐물 안전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정재학 회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 그리고 원자력에 대한 정 회장의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편집자주

올해부터 학회장의 중책을 맡으셨다. 취임 소감 및 각오를 들려 달라.

고준위특별법 제정, 원전의 본격적인 해체, 경주 방폐장 2단계 표층처분시설 운영, 모든 방폐물의 처분적합성 확보 등 굵직한 현안들을 마주한 시점에서 중압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회에는 책임과 열정이 있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고, 경륜과 역량을 갖춘 분들이 임원진으로 참여해 주셔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전임 학회장들의 경험과 조언도 소중한 자산이다.

학회는 다양한 숙제를 갖고 있다. 이를 2년의 임기 내에 모두 완결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향후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학회가 나아가야 할 미래지향적 방향을 설정하고 제도적인 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최근 3,4년 새 학회는 양적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앞으로는 학회 위상을 제고하고 회원 간 결집력을 높이는 역할도 강조할 것이다. ‘성장과 내실’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가려 한다.

내부적으로 몇 가지 전략적인 준비를 하는 것들이 있다. 구체적으로 △주요 핵심이슈에 대한 학회 Position Paper 발간 △국제학술지로 기 인정받은 학회저널의 위상제고 △회원 간 소통 강화를 위한 뉴스레터 발간 △학회의 국제적인 위상 및 국제활동 강화의 일환으로 방폐물 관련 국제안전기준 또는 표준 제개정 과정에 대한 입장 제시 등이 그것이다.

외부적으로는 학회의 사회적 책무에 충실하기 위해 방폐물관리에 있어서 ’개별적 접근‘에서 벗어나 ‘통합적 접근’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하고자 한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특별법’ 제정이 난항을 겪고 있다. 학회의 입장 및 대응 계획은?

지금은 고준위 방폐물 법제화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회기 내 법제화가 계속 미뤄지고 있어 답답하다.

여야 모두 법안을 발의, 특별법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으며 과거 보수·진보 정부가 각각 2년여에 걸친 전국 규모의 공론화를 통한 ‘집단지성의 산물’이 법안에 반영돼 있다. 행정부(산업부)의 법제화 추진 의지도 어느 때 보다 크고, 핵심 이해관계자인 원전 소재 지자체와 주민들도 특별법 제정을 지지·촉구하고 있기에 최적의 조건이라 생각한다.

특히 대다수 일반 국민도 고준위방폐물 관리시설의 시급성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2023년 에너지 국민의식조사, 98.1% 동의).

지금이야 말로 입법부가 나서 반세기 동안 미뤄온 숙제를 풀기 위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국회가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다. 쟁점 뒤에 숨어서 본래 입법의 필요성과 목적을 잊은 것 아닌지 묻고 싶다. 후세에 부담을 전가해 가면서 역사에 죄를 지을 것인가.

이번 회기 내에 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지난 19대 국회처럼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되면 향후 10년 안에는 법제화가 불가능할 것이다. 해를 넘기면서 어렵다는 시각이 다수지만, 학회는 20대 국회 회기만료 전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입법을 촉구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제주에서 열린 학회 추계학술발표회가 성황을 이뤘다. 올해 계획은?

학회는 현재 개인회원 3600여명, 법인회원은 70여개 기관에 달한다. 봄·가을 학술발표에 약 1000명의 회원이 400여건의 논문을 발표한다. 회원수 대비 학술발표회 참석율과 논문발표 비율이 높은 것은 회원들의 학회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높음을 뜻한다.

올해 춘계학술발표회는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 추계학술발표회는 10월 30일부터 11월 1일까지 라한셀렉트 경주에서 개최할 예정이다.

춘계 발표회는 OECD/NEA 국제학술행사(ICGR, International Conference on Geological Repositories)와 연계, 진행한다. 세부 프로그램이 모두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핵주기정책·규제 및 비확산 △사용후핵연료 처분전관리 △고준위폐기물 처분 △중저준위폐기물관리 △제염해체 △방사선환경·안전 △방사화학의 7개 분야에서 논문 구두 발표와 포스터 발표를 진행할 것이고, 주제별 워크숍을 함께 계획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각 학술발표회의 슬로건 또는 핵심주제를 정해서 다양한 학술 분야들이 같은 방향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 고려 중인 후보 중 하나는 ‘모든 방사성폐기물의 지속가능한 관리, 성과와 도전과제’로 향후 학회 내부 논의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할 것이다.

일본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원전 안전성에 대한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원전 안전 논란에 대해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듣고 싶다.

우선 국내 원전 기술은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적합한 부지를 선정하고 잠재적인 위험 요소를 공학기술적으로 충분히 고려해 허용 가능한 수준으로 안전하게 설계, 건설 및 운영되고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지진에 대해서도 원전 부지선정, 설계 및 운영에 충분히 반영돼 있다. 지진 안전성을 고려, 적합한 조건을 가진 지역에 부지를 선정하고 심각한 지진을 가정해 원전을 튼튼하게 설계 및 건설하고 있다. 또 운영 과정에서 지진을 감시하고 지진 발생 시 대응하는 대책을 미리 마련해 대비하고 있다.

모든 에너지 기술은 장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지진은 원자력뿐 아니라 모든 에너지설비 및 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정 국가·지역 내에서 다양한 에너지들이 안전성, 경제성, 공급 용량 및 안정성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 경쟁하고, 그중 가장 경쟁력 있는 기술로 에너지믹스가 완성돼야 한다.

지진이 나면 원전이 위험하다는 시각은 에너지 문제를 이념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것에서 나오는 단순한 논리다. 에너지 문제의 이념화는 절대적으로 반대한다.

SMR의 성공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또한 SMR의 순조로운 상용화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전 세계적으로 80종 이상의 다양한 SMR 기술이 개발 중이고, 이미 무한경쟁에 돌입한 상태라 할 수 있다.

현재 제안되고 있는 SMR은 개념적·이론적·기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기술이다. 다만 얼마나 안전 및 경제성 측면에서 혁신적인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지에 따라 여러 설계 중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소수일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SMR 개발 및 상용화에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SMR의 성공을 위해 여러 가지 고려할 요소가 있는데, 그중 학회의 전문 분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세대 원전에서는 사용후핵연료와 방폐물의 ‘선발생·후관리’ 또는 ‘Post-generation Management’로 대표되는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처음부터 최적 후행핵주기 기술과 해체 용이성 설계기술을 함께 개발해 ‘지속가능 에너지기술’로서 세계 시장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해야 우리 SMR 기술이 살아남을 수 있다.

방폐물 관리 및 해체 등 ‘원전 후행주기’ 산업에서 학회의 역할, 그리고 정부·원전 산업계와의 협력 계획은?

학회는 ‘지속가능한 원자력 전주기’를 구축하는데 초석을 놓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할 다양한 이슈에서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공감대를 만들어야 하는 전문학술단체이자 ‘방사성폐기물 싱크탱크’로서 사회적 책무를 다할 것이다.

우선 방폐물 종류별 처리, 저장, 운반 및 처분 관리 단계별 안전성을 강조해 왔던 전통적인 ‘개별적 접근’의 틀에서 벗어나 전 과정에서의 원활한 흐름에 기반한 ‘통합적 접근’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데 역량을 집중할 방침이다.

고준위방폐물 관리 법제화를 끝까지 지원하고, 계속운전과 해체가 상호보완적 관계임을 널리 알린 계획이다. 또 영구정지 원전의 본격 해체와 병행해 ‘빠르고 경제적인 제로리스크 해체기술’과 해체후 부지의 지속가능한 재이용 방안에 대한 학술적 논의를 시작할 것이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무한경쟁에 돌입한 SMR과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최적 후행핵주기 기술과 해체 용이성 설계기술을 함께 개발해 ‘지속가능 에너지기술’로서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력하겠다.

사건이 날 때마다 주먹구구식 대응에서 벗어나 이슈별로 학회의 입장을 정리한 ‘Position Paper’를 사전에 만들고 대내외 상황변화를 반영해, 지속 업데이트해 나갈 예정이다.

학회는 단순회 학문적인 연구만을 리딩하는 단체가 아니다. 다양한 배경의 책임 있는 전문가들이 활동하고 있고, 공학 분야 학술단체이므로 학술 활동뿐만 아니라 정부정책 수립과 기술의 실제 현장 적용도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 회원들의 조화로운 집단지성을 통해, 법률·제도 및 정책지원과 기술 상업화 등 전 과정을 리딩하고 지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방사성폐기물 이슈를 원자력에너지 또는 방사선 이용과 따로 떨어진 주제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바로잡고 싶다. 지속가능발전 측면에서 원전 또는 방사선 이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 과정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방폐물 안전이슈는 지속가능한 에너지원으로서 원전 이용의 필수 전제조건이라는 점을 계속 알려나갈 것이다.

원전은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어차피 지어진 것이다. 수명을 다하기 전까지는 안전한 운영과 함께 사용후핵연료 처분·관리에 대한 책임감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별법은 원전의 축소냐, 확대냐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는 고준위 특별법 제정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중저준위 및 원전해체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학회의 입장과 상황변화 등을 고려해 공론화 등 필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학회는 방사성폐기물 문제에 있어 공학적으로, 그리고 사회과학적으로 ‘세대 간 공평’과 ‘세대 내 공평’ 문제를 해소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향후 학회의 활동에 많은 관심과 격려, 건설적인 비판을 부탁드린다.

 

정재학 회장은?

-연세대학교 화학 이학사/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공학 석·박사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단장/IAEA 방사성폐기물안전기준위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기술기준위원

-산업통상자원부 원전해체경쟁력강화기술개발사업 추진위원

-원자력안전위원회 규제심사위원

-現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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