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이격거리 설정, 태양광 보급 ‘걸림돌’
객관적 근거 없이 천차만별…주민 갈등 심화

[에너지신문] 지난 2012년 RPS(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 도입 당시만 해도 각 지자체들은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설치를 지역에 서로 유치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들을 상대로 많은 정책 제안을 내놨다. 심지어 선거 때마다 어느 시·군 할 것 없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선거공약이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금의 사정은 어떠한가?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의 자료에 의하면 전국 228개 지자체 중 지난해 기준으로 129개가 주거지역 또는 도로에서 일정 거리 이내에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기초지자체들이 재생에너지 발전 개발행위 허가 지침에서 태양광 발전시설에 과도한 이격거리(離隔距離) 규제를 하고 있어 태양광 보급에 사실상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6년에는 8개 지자체로 시작했으나, 문재인 정부에서 재생에너지 3020 정책이 시작되자 참여가 급증, 현재는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자체로 확대돼 조례로 규제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7년 3월 산업통상자원부가 ‘태양광발전입지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3년간 한시적으로 적용한 적이 있었으나, 규제 완화에 동참하는 지자체는 드물었다.

일반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 입지 규제 내용을 보면 도로에서부터 직선거리로 100m, 심지어는 1km까지 태양광발전 시설을 설치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주거시설의 경우는 대부분이 100m에서 500m까지 제한, 그 범위 내에서는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격거리 규제는 주로 혐오시설이나 위험 설비가 주거시설과 도로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태양광 발전설비는 이미 오래전에 위해하거나 혐오시설이 아니라는 것이 판명된 바 있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의 64%에 달하는 산림을 제외하면 재생에너지 부지로 이용 가능한 면적이 아주 적다. 게다가 도로망이 잘 구축돼 있어 어디를 가도 도로와 200~300m, 많게는 1km 이상 떨어져 있는 재생에너지 설치 가능 장소를 찾기는 힘들다.

정부는 세계적인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고 국제질서에 동참하기 위해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한 바 있다. 이 선언에는 우리의 일상으로 다가온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선도국가로 도약하고자 하는 담대한 비전이 담겨있다. 국가정책인 탄소중립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태양에너지와 풍력, 바이오에너지 등의 적극적인 이용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하는 RE100 목표 달성이 필수다. 국가 정책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전국적으로 입지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추진이 선행돼야만 한다.

이격거리 조례는 무분별한 태양광 발전 사업을 사전에 차단하고, 주민들의 불편이 발생할 경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필요한 규제다. 예를 들어 빛 공해 유발, 환경오염 발생, 소음이나 전자파 등 위해가 되는 시설물, 주거 불편 등 지역주민들에게 직접적인 위해 발생이 예상될 때 주민들의 안위를 위해 거리 제한을 둘 수는 있다.

그러나 현재 지자체마다 운영하는 조례를 보면 위해 여건이나 주변 환경오염 조건 등과는 대부분 관계없이 ‘도로에서 몇 미터’ 등으로 획일적인 이격거리를 설정, 규제하고 있다.

2020년 비영리법인 기후솔루션이 태양광 발전 이격거리 규제를 시행 중인 전남, 경남, 경북 3개 기초지자체를 대상으로 지리정보시스템을 통해 분석한 발표 자료를 보면 태양광을 설치할 수 없는 면적이 전체면적의 46~67%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일부 법률에서도 태양광발전 설치를 제한하고 있는데 그나마 태양광 설치가 가능한 지역까지 이격거리로 규제를 할 경우 설치가 가능한 면적은 전남 함평군은 전체 면적의 11%, 경남 함양군은 26%, 경북 구미시는 7%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적으로 설치가 가능하다 해도 임야를 제외하면 실제로 태양광 시설이 들어설 수 있는 입지는 더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지목이 임야인 토지를 제외할 경우 태양광 설비 설치가 가능한 면적은 함평군 0.78%, 함양군 0.64%, 구미시 0.09%에 불과하다.

임야의 경우 사실상 태양광사업 추진이 어려운 점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수 있는 면적은 각 지자체마다 전체 면적의 1%정도 수준인 것으로 계산된다. 표본으로 조사한 3개 지역 이외 대부분의 지자체들도 거의 비슷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이격거리 이외에도 한전의 계통 연계가 부족해 설치 가능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면 전국적으로 태양광사업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 사실상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규제가 앞으로도 완화 없이 계속된다면 기후변화대응을 위한 탄소중립 목표 달성은 불가능할 것이다. 해외에서는 병원이나 주택, 가스저장소, 유류저장소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대상에 따라 이격거리를 두는 사례들은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도로에서 몇 미터’와 같은 획일적인 이격거리를 두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 미국 애리조나주에 설치된 HD현대에너지솔루션의 태양광 모듈.
▲ 태양광 발전소 전경.

물론 허가를 시행해야 하는 지자체들의 입장도 이해는 된다. 법률로 명시돼 있지 않은 부분도 개발행위 허가를 할 때에는 검토해야 하므로, 지역조례를 제정하고 위원회를 구성해 나름대로 공정한 행정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이해가 된다. 국토이용에 관한 법률 등 상위법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조례를 제정해 관리하고 있다고 본다.

탄소중립 정책 같은 국가 중요시책으로 추진하는 이러한 중차대한 문제는 지자체에만 미룰 것만은 아니다. 정부의 중장기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 방향에 맞춰 지금이라도 신재생에너지 관련 법률 또는 국토이용에 관한 관련 법률을 신속하게 개정해 더 이상 민원의 높낮이에 따라 지자체별로 다르게 적용돼 정책이 좌지우지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재생에너지발전 입지 가이드라인’을 다시 제시했다. 지자체는 태양광 발전시설에 대해 등록이 완료되고 주택법상 주택 5호 이상의 밀집한 주거지역의 경우 최대 100m 범위 내로 이격거리를 설정, 운영 가능하도록 하고 해당 주민들의 2/3 이상이 동의하는 경우는 설정된 이격거리가 있음에도 사업 추진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다만 주민과의 직접적인 영향이 없는 도로지역의 경우 이격거리를 설정하지 않을 것을 권고했다.

산업부는 권고와 함께 조례를 완화하게 되면 지자체에 주민참여사업 REC 가중치를 부여하고, 융복합지원사업 가중치와 신재생에너지 집적화단지 조성지원사업에 배점을 부여하는 등 인센티브도 마련해놓고 있다. 산업부의 가이드라인에 동참하기 위해 경기 파주시, 전남 완도군 및 순천시 등에서는 이미 조례완화를 위한 개정을 발의를 하거나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등 신속한 추진이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태양광 보급 초창기에는 농촌, 산촌, 어촌지역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일부 허가받은 사업자들이 일방적으로 태양광 사업을 무분별하게 진행해 온 것이 사실이다. 태양광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주민들에게 정보가 알려지지 않았다가 거의 사업추진 단계에서 정보가 뒤늦게 공개되고, 주민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태양광 시설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이 대두됐으며, 이는 조례를 제정하게 된 하나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적인 근거 없이 각 지자체마다 천차만별로 상이하게 신재생에너지 이격거리가 설정돼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됐고, 이는 지역사회 내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추진에 많은 애로가 되고 있다. 이격거리 기준을 획일적으로 정하기보다는 주택이나 학교, 병원, 요양원, 축사 등 지역 환경과 가스저장, 유류저장시설 같은 위해요소 장소에 따라 융통성있게 적용하는 합리적인 조례완화 개정이 필요하다.

아직 개정을 준비하지 않고 있는 지자체들도 이번 산업부 가이드라인을 기준삼아 합리적이고 장소별 세분화된 이격거리를 만드는 조례개정을 조속히 추진하기 바란다.

재생에너지 시설뿐만 아니라 다른 어떠한 시설에서도 주민들의 불편이 예상될 때는 입지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태양광발전 설비는 우리가 주거하는 주택 지붕에도 국내에만 수십만 개가 설치돼 아무런 불편이나 문제없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농촌의 경우는 주민소유 텃밭 등 토지가 대부분 동네 주변에 있는데, 그곳에 태양광 설치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동네주민들은 이격거리 제한 때문에 자기소유 토지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일정기간 동안 해당 동네에 살아온 주민들에게는 동네 텃밭이나 잡종지 등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거리제한을 완화해주는 대담한 정책 완화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좁은 국토와 인구밀도를 감안할 때 재생에너지 발전이 가능한 부지에 대한 고민, 그리고 지역주민들의 이익공유와 함께 합리적인 규제를 통해 미래에는 친환경에너지 이용으로 국민 모두가 탄소중립 국가에서 살기를 희망한다. 세계적인 일류국가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모든 지자체들이 조례를 개정, 재생에너지 발전 입지 이격거리를 대폭 완화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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