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人 열정과 헌신, 성장·발전의 원동력”

지난해 12월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한 주한규 원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며 원전의 필요성을 강조해 온 국내 최고 원자력 전문가 중 한 명이다.

서울대에서 원자핵공학을 전공하고 동 대학원 석사, 미국 퍼듀대 대학원 원자핵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주 원장은 원자력연구원의 전신인 한국원자력연구소 연구원으로도 근무한 바 있어 연구원과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본지는 주한규 원장에게서 연구원의 원자력 관련 기술개발 현황 및 국내 원자력 산업의 비전을 들었다./편집자주

Q. 취임하신지 약 5개월이 지났다. 그간 주력한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느낀 소회가 있다면?

연구원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기관 설립 목적과 시대적 사명을 반영해 새로운 비전을 정립한 것이다.

연구원은 당초 원자력의 연구·개발을 종합적으로 수행해 학술의 진보, 에너지 확보 및 원자력의 이용을 촉진하는 데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러한 기관 설립목적에 더해 탄소 중립이라는 시대적 사명과 현장에서 경험한 것들을 반영해 새 비전을 세웠다. 바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원자력 기술, 국민과 세계가 지지하는 한국원자력연구원’이다.

비전을 뒷받침할 사명(使命)도 2가지로 정했다. 첫 번째는 ‘안전한 원자력으로 국가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탄소 중립 미래를 선도한다’이며, 두 번째는 ‘첨단 방사선·양자빔 기술로 국민 건강과 생활 편익을 증진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비전과 사명을 바탕으로 지난 2월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이어 3월에는 연구원 주요 조직별로 중기(3년) 중점 목표와 그 달성 계획을 수립했다. 이의 이행을 다짐하는 확약식도 개최했다. 목표대로만 잘 이행되면 우리의 비전과 사명 실현에 큰 폭의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간 여러 직원을 만나 애로사항을 들으면서 구성원 모두가 긍지를 갖고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본원뿐만 아니라 전북 정읍, 경주 건천·감포, 부산 기장 등 지원 분원도 찾아가 연구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최근에는 노동조합과 노사 현안에 대해 격의 없이 소통하는 시간도 가졌다. 밖으로는 대정부, 국회, 사업체, 대학 등에서 주체한 워크숍과 회의에 참석, 연구원이 당면한 현안에 대해 설명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강연도 하면서 바쁘게 보냈다.

많은 분이 해주신 말씀을 귀 기울여 들으면서 우리 원자력에 대한 오해는 없애고 강점은 더욱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Q. 연구원은 올해 △탄소 중립 미래를 선도하는 선진 원자로 개발 △안정적인 원자력 발전을 위한 전주기 첨단 기술 개발 △방사선과 양자빔을 활용한 기술 개발이라는 3대 경영목표를 설정했다. 현재 진행 상황과 향후 계획은?

먼저 ‘탄소 중립 미래를 선도하는 선진 원자로 개발’ 관련해 얘기하자면, 탄소 중립 시대에 가장 주목받는 에너지원은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원자력이며 그 중심에는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가 있다.

연구원은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획득한 한국형 SMR인 ‘SMART’의 수출을 적극 모색 중이다. 지난 4월에는 캐나다 앨버타주 정부와 스마트를 포함한 SMR을 앨버타주 탄소 감축에 활용하기 위한 상호협력 협약을 체결했다.

혁신형 SMR(i-SMR) 개발도 본격화할 예정이다. i-SMR은 SMART보다 더 진화한 형태의 차세대 SMR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방식의 SMR을 용도에 맞게 개발하고 있다. SMR의 하나인 초고온가스로(VHTR)는 발전뿐 아니라 수소 생산에도 활용할 수 있다. 소듐냉각고속로(SFR), 용융염원자로(MSR) 등 선진 원자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다음으로 ‘안정적인 원자력 발전을 위한 전주기 첨단 기술 개발’이다.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증폭된 전 지구적 에너지 위기는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더욱 커지게 했다. 결국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서는 원자력 발전을 늘려야 하는데, 그 전제는 안전성 확보다.

가동 원전의 입증된 안전성을 지금보다 더욱 강화할 것이다. 특히 AI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가동 원전 결함 진단 기술, 무인 방재 로봇 기술, 사이버 위협 탐지 기술 등을 고도화하겠다. 사용후핵연료 관리·처분을 아우르는 다양한 선진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에너지 안보 강화에 중요하다. 올해는 다부처 예타 사업을 통해 처분장 건설을 위한 URL(연구용 지하연구시설)에 필요한 기술적 기반 확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연구원의 KURT(지하처분연구시설) 연구를 통해 얻은 경험과 자료는 향후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장 건설 전 추진해야 할 URL 건설과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분야 외에도 국민 건강과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방사선과 양자빔 활용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도 강화할 계획이다.

지난 2월에는 미세먼지 유발 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을 전자선으로 동시에 95% 이상 저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민간 기업에 이전했다. 앞으로 민간 사업장에 시제품 설비 구축 사업을 추진하는 등 기술 상용화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국내기술로 개발한 30 MeV 나선형 양성자 가속기인 사이클로트론을 이용해 의료용 방사성동위원소 생산과 연구도 확대한다. 작년 의료용 방사성 동위원소인 ‘저마늄-68’과 ‘지르코늄-89’를 생산해 각각 미국과 남아공에 처음으로 수출하며 연구원의 위상을 높인 바 있다. 수출량도 지속적으로 늘려 국내를 넘어 세계인의 건강과 복지에 기여할 예정이다.

SMART, 민간과 협력해 조기 시장진출 박차
새로운 원전생태계, 민간·국회 참여노력 절실

Q. 정부는 원전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다수의 정책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이에 대한 의견과 함께,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번 정부는 과거 5년간의 탈원전 정책에 의해 위축된 원전 생태계를 다시 활성화하기 위해 국정과제를 바탕으로 다수의 정책을 적절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탈원전 정책으로 타격이 컸던 중소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특별자금 지원과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이끌어낸 것은 세계 굴지의 우리나라 원전 산업을 재건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또한 미래 혁신기술인 SMR(소형모듈원전) 기술 개발 지속, 고준위방사성폐기물 분야 인력양성, 전기 요금 현실화, 원전 수출 추진 등의 정책은 원전 산업의 지속가능성 확대와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올바른 인식 확립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앞으로 정부는 전력 및 에너지 산업의 변화에 더욱 민첩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다. 이미 주요국들은 기존 대형원전에서 SMR 및 선진원자로의 새로운 원전 생태계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공공부문을 통한 기술개발에 많은 투자와 노력을 하고 있지만, 사실 민간 부문 및 국회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다행히 다수의 민간 기업들이 원자로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SMR 경쟁력 강화 및 상용화 촉진법 등 여·야 모두 관심이 큰 법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정부 역시 민간, 국회와 긴밀히 공조해 우리나라가 SMR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도 최고의 선도국가가 될 수 있도록 보다 노력해주길 기대한다.

Q.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

EU 택소노미와 우리나라의 K-택소노미에는 원자력을 녹색에너지로 인정하는 조건 중 하나로 구체적인 고준위방폐물 처분 계획 마련을 제시하고 있다.

고준위방폐물을 심부 지층에 안전하게 처분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과학 기술적으로 입증됐지만, 사용후핵연료 처분 안전성은 잘 알려지지 않아 국민의 반대가 극심하다. 고준위방폐물 처분부지 선정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주민들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별법 제정은 정부 정책의 신뢰 확보를 위한 첫걸음이다. 독일, 미국, 일본 등 처분부지 선정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 대부분이 부지 선정 절차가 포함된 법을 추진하고 있다. 특별법이 제정돼야만 사용후핵연료 처분사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처분장 부지선정 및 건설이 가능하다.

특별법안의 제정으로 체계적인 처분연구 및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돼 사용후핵연료 관리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민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조속히 구현되기를 바란다.

Q. 전 세계적으로 SMR 기술개발 및 상용화 연구가 한창이다. SMR의 성공 가능성과 연구원의 역할은? 아울러 연구원의 i-SMR 기술개발 및 수출 지원 업무를 소개해 달라.

그간 대형원전 사업은 정부 주도 사업에 의존했기 때문에 민간의 역할이 한정됐으며 단기 성과 창출이 어려웠다. 또 정책 여건에 따라 장기 투자 위험성이 존재했다.

SMR은 대형원전에 비해 초기 투자비용이 작아 그만큼 사업 리스크도 적으며 열 공급, 수소 생산과 같은 다목적 활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수요에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어 민간 기업이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다.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원자력 관련 제반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에서 개발되고 있는 SMR 사업의 경우 민간 기업이 주도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연구원은 경수형 SMR인 SMART와 비수냉각형인 액체금속로, 초고온가스로, 용융염원자로 형태의 SMR에 대한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고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 대규모 인프라 또한 구비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개발하고자 하는 SMR이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기 위한 종합적인 연구·개발·검증이 가능할 것이다. 기술개발이 완료된 SMART의 경우에는 2020년대 조기 시장 진출을 위해 민간기업과 협력해 기술 수출을 추진한다.

i-SMR 역시 2028년 표준설계인가 취득을 목표로 올해부터 본격적인 표준설계 및 혁신기술 개발에 착수한다. 해외에서 경쟁하는 SMR 대비 개발 공정이 다소 뒤처져 있지만, SMART와 APR1400 개발로 축적해 온 기술과 우리의 건설·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노력한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Q. 끝으로 정부, 원자력 관련 산학연 및 에너지신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원자력계 산·학·연 종사자들 모두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적지 않은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오히려 국민들이 원자력의 장점과 필요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더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는 원자력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 힘을 합치고 모두가 백방으로 노력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원자력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의 위기와 시련이 있었지만, 그런데도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하고 발전해 온 원동력은 원자력계 종사자들의 국가에 대한 열정과 국민에 대한 헌신이었다고 생각한다.

바야흐로 탈원전이라는 암흑기를 지나 원자력 생태계가 정상화될 수 있는 발판이 다시 조성됐다. 이 기회를 잘 살려 ’제2의 원자력 르네상스‘로 도약할 수 있도록 다시 한번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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