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상처 치유하고 기반 다지기 일조”
원자력 기술·정책 싱크탱크 역할 강화할 것
이해당사자간 소통·공감…‘신뢰받는 학회’로

[에너지신문] 지난 9월 1일자로 취임한 백원필 제35대 한국원자력학회 회장은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학사, KAIST 원자력공학 석사 및 박사 출신으로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원장, OECD 원자력기구(OECD/NEA) 원자력시설안전위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한 국내 최고 원자력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원자력학회에서는 원자력열수력 및 안전연구부회장, 후쿠시마위원회 위원장 등을 맡았으며 지난 1년간 제34대 수석부회장 겸 원자력 이슈 및 소통위원회 위원장직을 수행했다.

백원필 회장은 임기 중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 및 수소경제 달성을 위한 원자력·에너지 정책 싱크탱크로서 학회의 역할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본지는 백 회장에게서 원자력학회의 운영 계획 및 원전 산업 부흥을 위한 학회의 역할에 대해 들었다.

● 학회장 취임을 축하드린다. 취임 소감과 각오를 말씀한다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국가경제 등의 관점에서 원자력의 역할이 재조명되는 중요한 시점에 원자력학회장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

지난 1969년 설립된 한국원자력학회는 6000여명의 개인회원과 57개 특별회원기관이 참여하는 국내 최대 원자력 학술단체이자 싱크탱크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상처를 신속하게 치유하고, 다시는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원자력 기술기반과 국민 지지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아울러 원자력 산업계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원전 생태계 활성화와 수출 성사를 위해 학회의 역량을 결집, 후방에서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할 계획이다.

●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원전산업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 발맞춘 학회의 주요 활동 계획은?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생각하고 있다. 먼저 원자력 기술 및 정책의 싱크탱크로서 학회의 역할을 강화할 방침이다.

사실과 과학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원자력 관련 정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설득력 있는 정책을 개발, 제시하고 중요한 이슈들에 대해서는 기술적·정책적 토론의 장을 제공할 것이다.

다른 에너지 및 전력계통 분야 학회들과도 공동워크숍이나 TF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 맞는 에너지믹스와 탄소중립 실현 방안을 함께 논의할 계획이다.

수석부회장이 위원장을 맡는 원자력이슈위원회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부회들과 고급정책연구소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음으로는 이해당사자들과의 적극적인 공감과 소통을 통해 더욱 신뢰받는 학회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학회 내부는 물론 원자력 기관과 단체, 정부와 정치권 및 국민, 지역, 해외 학회 등 우리가 소통해야 할 대상은 매우 다양하다.

이들과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원자력 소통위원회를 중심으로 원전 지역 지부와 청년부회, 여성부회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학회 홈페이지도 구성과 내용을 더욱 이용자 친화적으로 개선해 접근성이 좋으면서도 신뢰할 수 있는 원자력 정보의 창고로 발전시키려 한다.

같은 학회에서 활동하더라도 이슈에 따라서는 기관 간, 개인 간 의견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때로는 불협화음이 생길 수도 있다.

지금도 사용후핵연료 및 고준위폐기물 관련 특별법 제정 문제에 대한 토론이 치열하고, 원자력 안전규제체계, 소형모듈원전(SMR)의 개발과 이용, 원전 수출 활성화 대책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견이 있거나 해결방안이 잘 안 보이는 이슈일수록 치열하고 투명한 논의가 더욱 중요하며, 학회가 그 역할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세웠다. 이를 위한 학회의 역할,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원전 수출은 우리나라 원자력의 재도약을 앞당기면서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학회에서도 원전 수출 상사를 위해 최대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려 한다. 다만 한국원전수출산업협회나 한국원자력산업협회와 같은 중심 단체가 있고, 민관합동의 원전수출전략추진단도 가동되고 있어서 학회가 잔면에 나서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원자력 수출은 기술이나 상품의 경쟁력에 더해 수출국 기술에 대한 신뢰도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수출대상국 원자력학회와의 협력 활동을 내실화하고, 학회가 주최하는 국제행사에 유력인사를 초청하는 방법 등으로 우리나라 원자력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본다.

● 합리적인 사용후핵연료 처리 방안은 무엇인지. 아울러 최근 발의된 ‘고준위방폐물 특별법(안)’에 대한 견해는?
원자력이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려면 원전 사고에 대한 안전 문제와 함께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국민이 동의하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사용후핵연료나 다른 형태의 고준위폐기물을 구리용기 등으로 포장한 후 지하 500m 깊이의 안정된 암반 동굴에 처분할 경우 사람의 건강과 안전 및 환경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국제적으로 강하게 형성돼 있다.

사용후핵연료나 고준위방폐물 발생량이 매우 적어 생태계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러한 처분 시설에서는 큰 사고 시나리오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처분장을 완성하는 단계이고, 스웨덴은 건설을 시작했으며 프랑스와 스위스도 처분장 위치를 정해 곧 건설에 들어갈 예정이다. 물론 이 국가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정부 차원에서 국민과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책임 있는 자세로 처분장 확보를 위해 노력해온 결과물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고준위방폐물 특별법도 국가가 현재의 국민과 후손들에게 책임을 다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국민의 동의와 여야 합의 하에 고준위폐기물 처분장 확보를 위한 법적 체계가 구체적으로 마련된다면 커다란 진전이므로 원자력학회도 특별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직접 처분을 기본으로 처분장 부지 확보를 위한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를 최단 시일 내에 시작하되, 처분 부담을 줄이거나 처분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개발도 꾸준히 병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 SMR이 차세대 원전으로 주목받고 있다. 기술개발부터 사업화까지 성공적인 수행을 위한 제언이 있다면.
소형모듈원전(SMR)은 매우 높은 안전성과 출력 조절 기능을 갖추고 있어 수요지 가까이에서 전력이나 열을 공급할 수 있으며 재생에너지와의 조합도 쉬운 원자로여서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규제기관의 인증을 획득한 SMR인 ‘SMART 원자로’를 개발, 수출을 위해 노력해왔고,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SMR 설계를 연구해왔다.

특히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협력해 개념을 개발한 혁신형 SMR(i-SMR)은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오는 2028년 표준설계인가를 목표로 본격적인 개발이 진행될 예정이다.

i-SMR은 높은 안전성과 운전 유연성을 갖추고 있어 그리 멀지 않은 2030년대에 국내외 에너지 시장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모든 역량을 십분 활용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 아울러 수소생산, 해수담수화, 공정열 등 다양한 형태의 열 공급과 극지, 오지, 해양, 우주에너지 공급원으로서 냉각재가 물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SMR 연구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SMR의 성공이 좋은 원자로를 개발하는 것만으로는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설계 개념이 다수 도입되는 만큼 개발 초기부터 규제기관과의 소통과 협력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현실성 있는 실증 방안과 사업화 전략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특히 여러 이용 분야에서 SMR의 수요자가 될 수도 있는 민간기업들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정부 또는 국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원자력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는 ‘실사구시’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과학과 사실에 기반해 정책이 수립되고 추진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에너지 문제에 관한 한 외딴섬과 같은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발전과 신재생에너지가 모두 중요하고, 당분간은 천연가스를 중심으로 한 화석연료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최고의 전문가들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를 사용해 지나칠 정도로 상세하게 시나리오 분석을 한 후, 우리나라에 맞는 에너지믹스 전략을 수립하고 현실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

● 원자력산업 종사자들에게 전달하고픈 말은.
지난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역설적으로 우리 국민이 에너지 문제를 더 잘 이해하는 동시에 원자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최근의 세계적인 에너지 위기가 원자력의 가치를 높여준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원자력이 확실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거나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지 못한다면 그 역할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탈원전 정책으로 크게 훼손된 원자력 추진체계를 복구해 우리나라 원자력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면서, 원자력 기술기반과 함께 국민 지지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야 하겠다. 이를 위해 원자력학회는 산업계와 늘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것임을 약속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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