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안보특별법 제정·총수요 전망체계 전환 ‘긍정적’
‘재생에너지 증가’ 세계적 추세 역행…문제 자각해야

[에너지신문] 글로벌 RE100 캠페인을 총괄하는 샘 키민스 클라이밋그룹 대표가 지난 9일 한국일보 기후대응팀에 정부 비판 서한을 보내왔다고 한다.

샘 키민스는 “신재생에너지 비중 축소는 매우 실망스럽다. 한국 정부의 결정으로 인해 한국 기업들은 수조 달러의 투자를 놓칠 위험이 있다”며 “한국기업을 향한 투자는 대만·일본 등 재생에너지 투자에 적극적인 다른 국가로 쏠릴 것이며, 한국의 장기 경제전망을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샘 키민스 대표의 이례적인 경고는 지난달 30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줄인 것에 대한 반응이었다.

세계 산업과 경제의 기본적 패러다임이자 무역기준으로 정착되고 있는 RE100 관점에서 봤을 때 한국의 에너지 계획은 그만큼 비상식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우려와 비판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RE100은 세계 산업과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자 무역기준이다. 세계 RE100 캠페인을 총괄하는 대표의 이례적인 경고가 재생에너지 산업계에 있는 내게 천근만근의 무게로 다가오는 까닭이다. 윤석열 정부 에너지 정책 방향 보완 내용에 반영되길 기대하며 재생에너지 산업계의 바람을 담아 ‘윤정부 에너지 정책방향 평가와 전망’을 제시해 본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7월 5일 대통령 주재 제30회 국무회의에서 관계부처 합동으로 ‘새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심의, 의결하고 에너지정책 목표와 방향을 제시했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 에너지 안보 강화, 에너지 신산업 창출을 통한 튼튼한 에너지 시스템 구현을 목표로 밝히고 이전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공식적으로 대체, 2030년 원전비중 30% 이상 제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및 원전 일감 조기 공급의 근거 마련을 강조했다.

그리고 △실현가능하고 합리적인 에너지믹스의 재정립 △자원‧에너지 안보 확립 △에너지수요효율화‧시장원리기반 시장구조 확립 △에너지新산업 성장동력화 및 수출산업화 △에너지 복지 및 정책 수용성 제고를 5대 정책방향으로 제시했다.

이어 8월 30일 전력수급기본계획 자문기구인 총괄분과위원회는 제10차 전기본 실무안을 발표했다.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수요전망 체계를 총수요 전망체계로 전환하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균형있게 활용, 2030 NDC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 발전량 비중을 원전 32.8%, 신재생 21.5%, 석탄 21.2%, LNG 20.9%로 한다는 내용이다.

10차 전기본 실무안은 △원전 확대(원전 사업자의 의향 반영, NDC 상향안 대비 23.9%→32.8%로 8.9% 확대) △재생에너지 감축(주민 수용성 및 실현 가능성 감안, NDC 상향안 대비 30.2%→21.5%로 8.7% 감축) △LNG 소폭 확대(NDC 상향안 19.5%→20.9%로 1.4% 확대)로 정리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설계하거나 보완하지 않으면 산업·경제 분야에 심대한 문제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은 2가지 긍정요소와 함께 10대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자원안보특별법’ 제정은 긍정적이다. 에너지·자원 무기화 흐름이 가속화되고 에너지·자원의 안보와 독립(자립)이 더욱 중요해진 세계적 흐름 속에서 선제적‧종합적 자원 안보체계 구축은 에너지 정책방향의 중요 축이 돼야 한다. 전임 정부 말기 준비하던 것을 시대흐름을 반영해 계승, 혁신 및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총수요 전망체계’로의 전환 역시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다. 10차 전기본에서 태양광발전의 증가에 따른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수요전망 체계를 총수요 전망체계로 전환한 것은 대단히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전력시장 내 수요에 한전PPA, 자가용(BTM) 태양광을 포함한 총수요를 전망한 뒤 자가용 발전량을 차감한 사업용 전력수요를 기준수요로 한 점에서 보다 체계적인 전력수요 예측과 수습관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이처럼 긍정적인 평가 요소가 있음에도 불구, 이보다 훨씬 많은 문제점을 보여준다.

첫째, 국내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양치기 소년’이 될 운명에 처했다. 올해 말까지 한국 RE100 기업의 전력 사용량은 국내 총 전력수요의 약 13%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나 지난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6.5%에 그쳤다.

국제 에너지 연구기관 엠버(EMBER)에 따르면 2020년 국내 태양광·풍력 발전량은 21.5TWh로 삼성전자(22.92TWh)와 SK하이닉스(23.35TWh) 각각의 한 해 전력사용량 조차 채우지 못했다. 윤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에는 RE100 참여 국내 글로벌기업의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를 충족시킬 대책이 없다.

둘째, 중소기업들 역시 ‘RE100 미아’가 될 전망이다. EU와 미국의 탄소(조정)국경세 도입 등 RE100의 무역기준화는 국내 중소기업들의  RE100 수요를 폭발시킬 것이다. 샘 키민스 대표는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30년까지 50% 이상으로 확대하지 않으면 중소기업들은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셋째, 한국의 수출경쟁력이 급격히 추락할 것이다. 세계 산업과 경제의 패러다임, 글로벌 무역기준이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재생에너지가 산업과 경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재생에너지 기반 산업경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세계가 빠른 속도로 달리는데, 오히려 우리 정부는 뒷걸음질 치고 있다.

넷째, 폭발하는 전기차 전력 수요에 대한 대책이 없다. 2025년경 20만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던 전기차가 지난해 말 이미 23만대를 넘어섰다. 오는 2030년에는 1000만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전기자동차, 전기버스, 전기트럭 등의 전기차로 2030년 100TWh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것이다.

10차 전기본 2030년 총 발전량(615TWh)의 약 20% 정도를 전기차가 쓰게 된다는 얘기다. 재생에너지 공급계획이 없으면 결국 전기차 전력을 화석연료로 쓸 수밖에 없고, 탄소감축 계획은 물 건너갈 것이다.

다섯째, 2030년 NDC 목표 달성 실패가 우려된다.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늘어나는 재생에너지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원전 또한 갈수록 노후화됨에 따라 안전점검과 가동중단이 늘어나고 태풍·지진 등 안전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도 높아져 이용률 확대를 전제로 계획된 원전 발전량의 달성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2030년 탄소감축 목표(2018년 대비 40% 감축)는 좌초될 것이다.

여섯째, 재생에너지 산업 경쟁력 강화에 대한 무관심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생에너지 보급확대와 탄소중립에 대한 분명한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에너지 전환의 계기를 만들었으나 재생에너지 산업 경쟁력 강화 실패, 대중소 상생발전에 대한 대안부재라는 한계도 드러냈다. 이를 극복할 윤석열 정부의 계획과 정책이 없다.

일곱째, 재생에너지 보급 시장 축소가 불을 보듯 뻔하다. 윤정부의 에너지정책 방향에서 예고되고 10차 전기본 실무안에서 구체화된 재생에너지 감축에 따라 연쇄적으로 RPS 의무공급비율 하향, 한국형 FIT축소, SMP 상한제 실시, 대기업 위주 대규모 시장으로 재편, 중소규모 태양광시장 축소 등이 예상된다. 그 결과 당장 올해 태양광 보급량은 2020년 4.67GW의 60% 수준인 3GW 내외로 쪼그라들 것이다.

▲ 전임 정부와 현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비교(산업부 발표 자료를 근거로 10차 전기본 실무안 추가해 표로 작성)
▲ 전임 정부와 현정부 에너지정책 방향 비교(산업부 발표 자료를 근거로 10차 전기본 실무안 추가).

여덟째, ‘에너지 정쟁화’ 심화에 따른 국력 소모가 우려된다. 에너지의 정쟁화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자화상이다.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정쟁화는 특정언론, 특정세력이 에너지전환정책을 탈원전 프레임으로 왜곡하고 이에 편승한 일부 정치세력이 이를 확대재생산 하는 특성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윤석열 정부가 직접 나서서 태양광에 대한 침소봉대와 왜곡을 부추기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조사결과를 부풀리고, 정부 정책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미미점과 보완점을 사기·범죄·비리의 이권 카르텔로 몰아붙이며 전임 정부 흠집내기에 활용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앞장서 재생에너지를 친원전 확대정책을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있다는 의구심이 팽배해지고 있다.

아홉째, 재생에너지에 대한 갈등과 분열 양산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가짜뉴스와 왜곡보도는 에너지전환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전임 정부에서도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태양광에 대한 가짜뉴스, 왜곡보도가 판을 치면서 에너지전환에 심대한 장애가 됐을 뿐만 아니라 국론분열과 갈등을 조장했었다.

그런데 윤정부 들어 다시 태양광에 대한 가짜뉴스 왜곡보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국민 인식개선과 전환을 선도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재생에너지에 대한 편견과 왜곡, 갈등을 부추기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열 번째, 구체적 로드맵이 없는 5대 에너지 정책방향이다. 정부의 5대 에너지 정책방향은 원론적인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계획과 달성 방안, 로드맵은 보이지 않는다. 윤정부의 5대 에너지 정책방향을 인지하는 사람들은 정권의 핵심부와 일부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과 윤정부가 지속적이고 분명하게 보내는 신호인 원전확대, 재생에너지 감축을 윤정부의 에너지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전 세계가 RE100과 탄소중립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에 국민들의 당혹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정부는 세계 산업·경제·무역 패러다임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에너지 정책방향의 10대 문제점을 자각하고 리셋 버튼을 눌러 새롭게 보완하길 바란다. 윤석열 정부의 성패를 넘어 대한민국의 산업과 경제의 명운이 걸려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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