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시가스협회 정희용 기획팀장.

[에너지신문] 국제 에너지시장의 코로나19 후폭풍은 대단했다. 뉴욕상업거래소가 1983년 문을 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유가를 기록한 2020년 4월 20일의 WTI 6월 인도분은 배럴당 -37.63달러!

죽음의 계곡으로 묘사될 정도로 심각했던 유가는 연말에 배럴당 50달러대까지 회복했다. 국제 천연가스시장도 덩달아 요동쳤다. 전년보다 무려 13%나 성장했던 2019년 국제 천연가스시장에 비해 2020년은 코로나 영향으로 수입과 수출, 투자 등 총체적 위축, 위기 국면이다.

수요 격감은 공급감소와 초과공급의 악순환이 불가피했고, 생산량 감소에 따른 신규 프로젝트는 전면 중단됐다. 엑슨모빌이 지난 8월 다우존스지수 30에서 퇴출된 사례에서 보듯, 시장이 체감하는 불확실성은 엄청난 한 해로 평가된다.

한편, 전통적인 국제 천연가스시장은 대규모 투자, 장기계약, TOP 등 석유시장보다 휠씬 경직된 시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동안은 장기계약과 대규모 계약물량 구조가 거래 관행이었다.

그러나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되면서 구매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계약조건이 급변했고, 계약기간은 대폭 단축되고 있다. 2020년 상반기에 20년 이상의 장기계약은 총 계약물량 가운데 10%에 불과한 실정이다.

또한 세계 천연가스 공급과잉은 장기계약(SPA, Sale and Purchase Agreement) 대신 spot과 단기물량 거래증가를 가져왔으며, 공급자간 경쟁이 확대되면서 SPA의 불공정 거래 관행이 대폭 개선됐다.

이미 도착지 제한조항은 구매자 우위시장 전환으로 도착지 제한을 유연하게 하는 계약이 90%에 달한다. Take or Pay 조항도 트레이딩기법의 발달 등으로 상당부분 개선됐다. 최근에는 현물과 장기계약 간의 가격격차가 확대되면서 구매자들의 다양한 요구사항이 급증하고 있다.

가격 교섭재개 조항(price re-openers), 가격 재검토 조항(price review clauses), 소비처 전환(diversion) 및 Resale 등 새로운 SPA 메카니즘에 대한 공급자들의 수용 수준이 늘어남에 따라 유연한 장기시장이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 LNG시장과 달리 국내 가스시장은 변화를 거부한다. 경직된 국내 천연가스 수급계약은 개선돼야 한다. 한국가스공사가 일반도시가스사업자와의 계약기간을 20년 장기를 고집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가?   

정부의 장기천연가스 수급계획(통상 14~15년 단위)이나 도시가스사와 산업체의 계약기간(통상 10년 이하)에 비해 과도하게 장기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채권의 소멸시효(민법 10년, 상사채권 5년) 관점에서도 20년 계약은 명분이 없다.

또한 계약기간을 20년으로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 규정이 없음에도 계약기간을 20년으로 규정하는 것은,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의 규율에도 반한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규율 측면에서도 20년 장기계약 요구는 부당하다. 동법 제23조 및 시행령 제36조에서는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거래 상대방에게 불이익이 되도록 거래조건을 설정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사는 국내 천연가스산업 구조상 LNG를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우월적 지위에 있다. 발전사업자와 집단에너지사업자와는 개별요금제 등 탄력적인 거래를 확대하면서 일반 국민이 주고객인 도시가스부문에 대해서는 장기계약을 강요하는 것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민수용 도시가스가 갇힌 물고기와 같은 포획수요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인식이라 사료된다. 침묵하는 다수의 고객을 보는 시각과 인식의 진전만이 진정 고객과 함께 하는 공기업 상일 것이다.  

국제 천연가스시장과 SPA의 변화에 걸맞게 국내 소비자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함께 수급계약이 개선되길 희망한다. 급변하는 사업환경과 사정변경을 고려해 30년전의 경직된 계약 관행을 개선, 수급계약이 합리적으로 변경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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