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전후로 가스보일러 업계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이 있다.

“상당수 보일러 대리점이 물량이 부족해 본사에 제품 공급을 서둘러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주문물량이 밀려 밤늦게 까지 보일러 생산라인을 가동하기도 한다.”

“생산 일력이 부족해 공장 사무직원은 물론 본사직원까지 공장으로 투입하고 있다.”

이들은 소속이 서로 다른 보일러제조사 직원들이었다. 특정 회사에서만 이런 말들이 나왔다면 단순히 ‘그곳 제품에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소비자에게 유난히 사랑을 받는구나. 회사 매출이 많이 올라가겠구나’며 가볍게 여기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 제조사가 비슷한 말을 했다.

지난해도 보일러 생산?판매량이 ‘전성기급’에 해당한다는 말이 붙었는데 올해는 실적이 더 좋다. 통계청이 내놓은 지난 1∼3분기 가스보일러 생산량만 봐도 지난해보다 14% 가량 증가해 올해 전체 생산량이 120만대를 넘어설 기세다. 지난해도 생산량이 그 전해보다 15% 증가했다고 해 업계가 감격했는데 올해 더 오른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면 2002년 보일러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제 2의 전성기가 도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는 착각에 가깝다. ‘판매는 잘되지만 불황’이라는 말도 돌기 때문이다. ‘판매가 잘 된다’는 말과 ‘불황’이라는 단어는 서로 모순적인 언어지만 지금의 보일러 업계를 표현 할 때 이것만큼 적절한 단어는 없을 듯싶다.

보일러 가격이 지나치게 낮아 팔아봐야 이익이 남지 않기 때문이다. 특정 판매 상황에선 제조원가 이하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어 관계 업체라면 조금도 놀라워하지 않는다. 대리점이 주도하는 교체시장도 과당경쟁으로 빠르게 특판화되고 있다는 뉴스도 오래된 이야기다.

2002년, 2003년 보일러 전성기와 지금의 보일러 전성기는 생산량과 판매량에 대해서만큼은 서로 일치하지만 ‘국민적 인기’와 ‘회사 영업이익’ 등 그 내용면에서는 다르다. 옛 전성기 때는 보일러 한 대 팔면 대리점과 설비업자는 20만 원 이상 수익을 남겼다고 하지만 지금은 10만 원 이하의 수익이다.

제조사간 과당경쟁의 그늘이 만들어낸 이상한 전성기 셈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 시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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