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한전-발전자회사 분리 이후 논란 이어져
‘한전 통합 vs 완전 민영화’ 시각차…해외사례는?

[에너지신문] 지난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전에서 발전자회사들이 분리됐으나 이를 두고 아직까지도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전력노조를 필두로 한쪽에서는 예전처럼 한전을 필두로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안정적이고 값 싼 전기 공급을 가능케 한다.

반면 이와 정 반대로 시장을 완전 개방하는 민영화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 경우 진력공급자간 경쟁으로 인해 시장 효율성이 높아지고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장점이 있겠으나 안정적인 전력수급이 어려워지고, 요금이 오를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전력시장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안정적 전력수급 △합리적 전력소비 △깨끗하고 안전한 전기공급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으나 현재는 기후변화 및 환경을 고려한 환경급전의 중요성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이들 3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고 요금체계의 합리적인 개편 역시 필요하다.

다수의 전문가들은 현재의 우리나라 전력산업 구조가 표면적으로는 시장을 통한 거래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시장기능이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한다. 시장은 있으나 가격(판매요금)을 정부가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외는 어떨까? 미국, 독일, 일본 등 해외 주요 국가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의 전력산업 구조개편과 시장 및 요금체계를 점검해보자.

▲ 엄청난 인파로 발디딜 틈 없는 일본의 대표적 에너지 전시회 'World Smart Energy Week(WSEW 2019)' 전경. 일본 전력 소매시장은 2016년 전면 자유화 이후 3년만에 18조엔 규모로 성장했다.
▲ 엄청난 인파로 발디딜 틈 없는 일본의 대표적 에너지 전시회 'World Smart Energy Week(WSEW 2019)' 전경. 일본 전력 소매시장은 2016년 전면 자유화 이후 3년만에 18조엔 규모로 성장했다.

▲ 해외 선진국들의 전력시장 구조는?

먼저 미국은 1996년 캘리포니아 등 5개주에서 최초로 소매경쟁이 입법화됐으며 이듬해 로드아일랜드에서 첫 소매경쟁이 시행됐다. 이를 계기로 거의 대부분 2000년대 초반까지 점진적으로 소매경쟁이 도입됐다.

일부 소매경쟁이 도입되지 않은 지역은 원래 전기요금 수준이 낮아 경쟁을 통한 요금인하 요인을 기대하기 힘든 곳들이다.

그러나 2001년 캘리포니아 전력위기, 2006~2007년 사이 가격상한제 기간 만료, 천연가스 가격 인상 등 복합적인 요인으로 소매경쟁을 도입한 주들의 전력요금이 오르기 시작했는데, 이는 소매경쟁 도입을 폐지 또는 연기하는 요인을 제공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미국 내 분산자원을 선도하고 있다. 태양광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분산전원의 규모는 약 6GW로 향후 더욱 커질 전망이다. 분산자원은 캘리포니아 외 미국 전역에서 향후 10년간 가장 큰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의 경우 1998년 에너지법 시행 이후 수직통합적 사업자들 사이의 합병으로 시장집중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반면 기능분할에 대한 규제는 실행력이 약해지는 결과로 나타났다. 즉 수직통합적 대규모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는 약화됐으며, 이들 간 인수합병에 따라 경쟁도입 효과는 감소한 것이다.

2010년부터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해 온 독일은 재생에너지가 보편화된 유럽 내에서도 선도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특히 2050년까지 전체 발전비중의 8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공격적인 목표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기상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는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흐리거나 바람이 불지 않는 날씨가 지속될 경우 전력수급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2017년 1월 피크 시기에 바람이 불지 않고 구름낀 날씨로 인해 풍력과 태양광의 출력이 급감하면서 예비력을 사용하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공격적인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착실히 수행해나가고 있는 독일이지만 유럽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상위권에 랭크돼 있는 것은 이같은 재생에너지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석탄화력을 가동해야하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추진해 온 일본은 2016년 4월 전력 소매시장이 전면 자유화됐다. 이는 해외 대비 높은 전기요금 및 고비용 구조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1990년대 이후 세계적인 전력자유화 기조 및 규제완화 흐름도 중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소매시장 자유화에 따라 저압부문 규제가 폐지되면서 당시 8조엔 규모에 달했던 일본의 전력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게 됐다. 이미 자유화된 고압부문을 포함, 일본 소매전력시장은 시장자유화 시행 3년 만에 18조엔 규모로 2배 넘게 급성장했다. 소매시장 자유화에 따라 다수의 소매사업자가 진입했으며, 그 결과 전력과 가스를 결합하는 등의 다양한 요금제도가 제공되고 있다.

▲ 용량요금제 대체할 별도 시장 운영 필요

해외 선진국들의 전력산업 발전방안은 효율 제고와 신규 서비스산업 활성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은 여전히 경직적인 전력거래 및 가격시스템을 유지하고 있고 소매시장은 한전의 독점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신규 사업자가 새로운 기술을 시현 또는 활성화할 수 있는 기반이 매우 열악하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정체된 전력시장의 변화와 개선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며, 현 상황에서 정치적 논란을 최소화하며 실현가능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의 시장구조로 전환, 소비자 편익 증대 관점에서 전력산업의 효율적 운영체계를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전력산업 선진화를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 전력산업 전반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ICT기술 적용 등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산업의 활성화에 기여하는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다만 전기가 공공재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경우 전력산업 및 시장 운영을 공공영역이 담당하고 민간기업은 참여를 제한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세계적 추세는 대규모·집중형에서 소규모·분산형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재생에너지를 생산, 소비하고 남는 전력을 전력회사에 되파는 ‘전력 프로슈머’가 이미 현실화된 만큼 전력산업 구조를 과거로 회귀시키는 것은 흐름에 역행하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발전공기업의 경우 현재 한수원을 제외하고서도 동일 업종의 한전 발전자회사가 5개사로 분할돼 있어 이에 대한 재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에 따르면 구조개편 이후 발전사 간 경쟁을 통해 연료구매비 및 건설단가 감축, 발전기 이용률 향상 등 효율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연료운송, 재고관리, 건설인력 및 R&D 측면에서는 오히려 비효율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내놓은 보고서에서는 발전자회사의 수익을 대부분 모회사인 한전이 배당금으로 회수, 발전자회사의 비효율 개선이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최근 전력시장에서 민간발전사의 비중이 커지고 고효율 민간발전기가 진입함으로써 한전 발전자회사의 경쟁력이 점차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눈에 띈다.

따라서 전력산업 구조개선 보다는 전력시장 및 요금제도를 개편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현재의 도매시장의 거래 및 정산방식 변화를 통해 인위적으로 수익을 배분하는 방식, 즉 정산조정계수 적용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또 도매시장의 현물거래 비중을 축소하는 한편 장단기 계약시장을 활성화해 가격과 물량공급의 리스크를 줄이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외에도 발전사의 비용자료 제출이 아닌 가격입찰로 전환, 현재의 용량요금제도를 대체하고 별도의 용량시장을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비, 현재의 하루전 시장운영에 더해 당일·실시간 시장을 개설하는 한편 보조서비스 시장 등을 통해 유연성 자원의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는 시장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판매시장과 관련해서는 단계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고 공정경쟁을 조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꼽힌다. 도매시장에서의 전력구매와 망이용에 대한 공평한 조건을 확립하지 않으면 시장개방은 무의미하다는 결론이다.

이처럼 도매시장 운영시스템의 변화와 판매시장의 개방을 추진하더라도 가격체계 합리화 및 시장 가격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을 경우, 공정경쟁에 기반한 효율적 자원배분이 진행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과도한 가격규제에서 시장개방에 따른 경쟁기반을 바탕으로 초기에는 요금상한제를 시행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가격자유화를 추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또 전력데이터 개방 및 공유를 통해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사업자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자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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