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름값 잡기의 일환으로 도입 추진 중인 ‘알뜰주유소’가 시작부터 발목이 잡히는 양상이다.

석유공사와 농협을 통한 공동구매로 구매가격을 낮춘 뒤, 불필요한 서비스를 없애 코스트를 줄이고, 최대한 저렴한 가격으로 기름을 공급한다는 ‘알뜰주유소’가 주유사업자는 물론 정유사로부터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오일뱅크가 일찌감치 공동구매의 입찰에 나서지 않겠다고 공식화한데 이어 실제 지난 15일 진행된 1차 입찰이 유찰에 이르면서 알뜰주유소가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현실화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알뜰주유소는 시작부터 기존 석유 유통단계의 모든 사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는 한계를 분명히 안고 출발했다.

공동구매라는 형식을 빌어 물량규모를 늘리고 구매비용을 낮춘다는 것은 정유사로 하여금 스스로 기존 거래처보다 무조건 낮은 가격에 공동구매자에게 물량을 공급하라는 반강제적 의미를 갖는다.

또 알뜰주유소에서 공급하는 기름은 기존의 다른 주유소에서 공급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해야 한다는 게 원칙 아닌 원칙이다.

만약 실제 알뜰주유소가 정부 의도대로 시장에 등장하게 된다면 알뜰주유소보다 조금이라도 고가에 기름이 공급되는 주변 주유소들은 거의 도산의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기존 유통질서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물론 이 사업에서 모두 피해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석유공사와 농협은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정부가 힘을 실어주는 석유도매사업자의 지휘를 확보하는 특혜를 누리게 된다.

아이러니한 점은 ‘정유사-직영주유소-소비자’로 통하는 기존 유통단계보다 ‘정유사-공동구매자(석유공사·농협)-알뜰주유소-소비자’의 순으로 유통주체가 한 단계 더 확대되는 경우도 더 저렴한 가격에 기름이 공급될 수 있다면 기존 유통망에서도 충분히 가격하락의 연결 구조를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점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 중인 알뜰주유소가 전시행정의 ‘꼼수’가 아니라 소비자와 사업자 모두에게서 환영받는 진정성 있는 정책이 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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