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준범 기자

[에너지신문] 지난 11일 열렸던 누진제 개편 공청회에는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누진제를 개편하자는 바람직한(?) 취지하에 진행됐다.

그러나 그간 주요 정부 정책을 결정하기 직전의 모든 공청회가 그랬듯이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시킨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참석자들 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누진제를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다르기에 당연히 하나의 의견이 나올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TF의 권고안과 별개로, 정부는 누진제를 유지하면서 전기수요가 가장 높은 7~8월에 한시적으로 누진구간을 확대하는 1안, 즉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는 것을 원하는 듯하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온 오래된 제도(물론 여러 번의 손질이 있었지만)를 함부로 건드리기에는 부담이 클 것이다. 혁신 보다 안정성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공공사회의 특성상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풀 체인지’가 아닌 ‘마이너 체인지’를 선호하는 것은 똑같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면서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해온 터다. TF에 따르면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약 1400만 가구 이상이 월 4300원 정도 인상된 전기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누진제를 폐지할 경우 정부의 약속은 지켜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반 국민들이 참여한 한전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누진제 자체를 폐지하는 3안을 선호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전기요금 더 낼 테니 누진제를 폐지하자”, “쓰는 만큼 내는 것이 정당하다”는 등의 의견들이 주를 이뤘다. 공청회에서 3개 안 중 가장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이유로 1안에 손을 들어준 소비자단체 대표들을 머쓱하게 만드는 결과다.

이처럼 다수의 일반 국민들이 누진제 폐지를 원하는 상황이라면 누진제 폐지를 준비하면 된다. 민심과 여론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물론 누진제 폐지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혜택에서 제외될 저소득 가구에 대한 지원방안을 별도로 마련하는 등의 보완책도 함께 준비해야겠지만. 지금은 복잡한 셈법이나 이해득실을 따지기 보다는 흐름에 편승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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