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정책, 국가 운명 좌우,
냉철한 현실 분석, 과학적 예측으로 결정돼야

▲ 문주현 단국대학교 원자력융합공학과 교수.
▲ 문주현 단국대학교 원자력융합공학과 교수.

[에너지신문] “전국 23개 주 가운데 16개 주에 전력 공급이 전혀 되지 않고 있으며, 6개 주는 부분 정전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베네수엘라 병원에서는 의료장비 가동 중단으로 환자들이 사망하고, 시내에는 지하철 운행이 멈췄으며 수백만명의 시민이 앞다퉈 식량 및 식수를 구하고 있고 석유 수출 등 산업도 마비됐습니다.”(2019.3.2. SBS 뉴스)

정정 불안에 대정전이 겹친 최근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보도한 국내 언론매체 기사의 일부다. 베네수엘라 국민이 겪는 큰 고통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전력 부족이 어떤 사회적 혼란상을 가져올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전기는 의식주나 마찬가지다. 우리 일상과 경제활동의 근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필수재의 결핍은 우리 생존을 위협한다. 특히 전기의 결핍은 국가 기간시설과 산업 활동 마비까지 초래한다. 전기 생산을 위한 1차 에너지원의 결핍도 직접적 연관성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상황을 초래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이상기온과 극한 자연재해가 잦아지고 있다. 기후변화에 의한 결과라 한다. 인류사회의 무분별한 화석 에너지 개발과 사용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부메랑이 돼 돌아온 것이다. 더 이상 기후변화를 남 일이라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 중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 생존을 위한 국제 사회의 기후변화대응에 우리나라도 동참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에너지수급은 민생, 경제, 환경 등 다양한 분야와 연관돼 있다. 에너지 자원 빈국인 우리로서는 경제와 환경, 개발과 보존이라는 상충된 목표를 조화시켜야만 하는 곤란한 상황이다. 실타래처럼 꼬여있는 복잡다단한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에 제시돼 있다.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39조는 정부가 에너지 정책을 수립할 때 고려해야 할 기본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그 원칙은 △화석연료 사용의 단계적 축소 △에너지 자립도의 획기적 향상 △에너지 수요관리 강화 △신재생에너지 개발·생산·이용 및 보급 확대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 △새로운 시장 창출 △에너지 복지 확대 △국가 에너지 안보 강화다.

‘에너지기본계획’은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목적 달성을 위해 정부가 5년마다 수립하는 계획이다. 이 계획은 우리나라 중장기 에너지 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제시하는 최상위 에너지계획으로 전력수급기본계획, 신재생에너지기본계획 등 10개 하위계획을 수립할 때 기준이 된다.
지난 4월 19일 개최된 공청회에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정부안’이 발표됐다. 그 핵심 내용은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믹스로 전환을 위해 석탄을 과감하게 감축하는 한편, 현재 5%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40년까지 30∼35%로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 제39조의 기본원칙에 충실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안의 다섯 가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 화석연료 사용의 실질적 축소를 꾀해야 한다. 정부안은 발전용 에너지원으로서 석탄의 역할을 대폭 축소함으로써 화석연료 사용을 줄인 것처럼 보이나, 석탄과 뿌리가 같은 천연가스를 대폭 확대함으로써 석탄 축소에 따른 효과가 크게 희석되고 있다.

천연가스도 석탄보단 적지만 다른 발전원에 비해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5차 보고서에 의하면 1kWh 전력생산 당 CO2 배출량은 석탄 820g, LNG 490g, 태양광 48g, 원자력 12g, 풍력 11g이다.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하려고 한 것인데, 그 취지가 무색하게 되고 있다.

둘째, 에너지 자립도 저하를 막아야 한다. 에너지자원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에너지 자립도 제고가 국가 생존과 번영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자급 에너지인 풍력과 태양광 등을 확대함으로 인해 에너지 자립도가 높아지는 것처럼 보이나, 그 확대 폭만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천연가스를 대체 발전에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자립도는 제자리걸음에 그칠 것이다.

거기다 자급 에너지로 간주되는 원자력의 비중 축소로 인한 공백도 천연가스로 대체하기 때문에 에너지 자립도는 더 저하될 수밖에 없다. ‘World Energy Balances 2017(IEA)’에 수록된 2016년 우리나라의 1차 에너지 자급률은 원자력을 포함하지 않았을 때는 3.3%에 불과했지만, 원자력을 포함했을 때 18.1%로 상승했다.

▲ 원전 비중이 줄어들면 화석연료 가격 상승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 원전 비중이 줄어들면 화석연료 가격 상승의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다.

셋째, 단일 에너지원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삼가야 한다. 표면상 태양광, 풍력 등 전력 공급원의 가짓수가 많아져 에너지 공급원이 다변화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간헐성 에너지원인 태양광, 풍력은 365일, 24시간 상시 공급이 불가능해 기간 에너지원으로 간주하기가 어렵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대체 에너지원을 LNG로 한정하고, 석탄과 원자력을 배제함으로써 기간 에너지 공급원을 LNG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하는 체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천연가스 도입선을 다변화하겠다고 하나, 이는 한 에너지원의 공급 실패를 다른 에너지원으로 대체하거나 그 영향을 완충하고자 하는 다변화의 기본 취지를 곡해한 것에 불과하다.

넷째, 에너지 안보를 약화해선 안 된다. 국제에너지기구는 에너지 안보를 ‘적정 가격으로 에너지 자원을 끊김 없이 공급해줄 가능성’으로 정의하고 있다.

정부안에서 수입 에너지인 LNG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하니 대외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다. 가스터빈 등 핵심 기기도 수입해야 한다. LNG 발전을 하려면 원료부터 관련 기술까지 모두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우리 목줄을 외국에 맡긴 꼴이다. 그동안 값싼 전기를 생산해왔던 원자력 비중을 줄임으로써 화석연료 가격 상승에 대한 완충 장치도 무력화될 처지다. 작은 외부 충격에도 우리 일상과 경제가 치명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에너지 공급 무장해제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다섯째,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전력통계속보에 따르면 한전이 지난 2월 구입한 전력단가(원/kWh)는 원자력 65원, 석탄(유연탄) 97원, LNG 143원, 신재생에너지 223원이었다. 값싼 원자력과 석탄화력을 줄이고 값비싼 재생에너지와 LNG 발전을 늘리면, 전기요금 인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그렇게 되면 에너지 빈곤층은 전기를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2005년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촛불을 켜고 자다 여중생이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우리 기억 속에 아직도 생생하다. 에너지는 단순한 복지 차원을 넘어, 생존 문제와 직결된 기본권이다. 국민 누구나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누릴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 우리 헌법 제34조제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갖는다’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데 전기요금 인상은 그런 주장을 한낱 공허한 외침으로 만들 뿐이다.

에너지 정책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냉철한 현실 분석과 과학적 예측을 바탕으로 결정돼야 한다.

우리 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의 모범 국가로 삼아온 독일의 주간지 슈피겔이 최근 자국의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은 실패했다는 진단을 내놓은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현실을 무시한 에너지 정책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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