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고시가격 체제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23일 팔래스호텔에서 열린 ‘주유소 압박정책 철회촉구’ 기자회견에 참가한 한 주유사업자의 울분 섞인 항변이다.

정부의 반시장정책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표출하러 모인 자리에서 오히려 스스로 시장정책과 반대되는 고시가격체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물론 정부와 언론으로부터 주유사업자들이 마치 폭리라도 취하는 부도덕한 사업자인 것처럼 매도되는 현 상황에 대해 차라리 정부가 일정 마진을 보장하고 가격을 정해 주는 과거 상황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반어적 표현일 게다.

국내 석유유통시장은 1991년 거리제한제 폐지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구분된다.

91년 이전 국내 주유사업자 수는 약 3400개 정도. 당시 주유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되며 엄청난 호황기를 누렸다.

하지만 거리제한제가 폐지되고 20년이 흐른 2011년 현재 전국 주유소 수는 1만3000개로 4배 이상 폭증한 상황이다.

차량증가 등 외부적인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말 그대로 출혈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현재 주유사업자들의 평균 마진율은 5% 수준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그 나마도 사업자가 월말과 월초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운영의 묘를 발휘했을 경우에 한해서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유소 숫자를 더 늘리는 대안주유소, 대형마트주유소 도입 발상은 아전인수 격이다.

특히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주유소의 확대는 주변 소규모 자영주유소의 몰락을 가져올 게 뻔하다. 이는 동네 골목상권까지 장악한 대형마트가 구멍가게 주인의 생계를 위협했던 사례에서 이미 충분히 선행학습 된 상황이다.

독과점 형태인 정유시장에 대한 단속이나 정부의 합리적인 유류세 부과방안 등 좀 더 거시적이고 큰 틀에서의 고민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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