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복 한국원자력연구원 소통협력본부장

‘무너진 원자력 안전’ 신뢰 회복 급선무
신정부, 객관적·합리적 에너지정책 기대

[에너지신문]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원전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미국, 프랑스, 중국 등 원전 보유국은 각국의 환경과 특성을 고려해 지속적으로 원전을 운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한다. 국내 총생산(GDP) 대비 수출 비중은 60%에 이를 정도여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곧 국가의 생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상황이다.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탈(脫) 원전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아가는 오늘, 우리는 과연 준비가 돼 있는가?

지난 반세기 동안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온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우수한 두뇌와 노력의 결실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는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값싸게 공급해온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이 있었다.

그런 원자력과 화력이 방사능의 위험성과 지구온난화, 미세먼지 문제 등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대체할 에너지원으로 태양광, 풍력, 조력 등 신재생 에너지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입지조건이 그다지 좋지 않아 단기간에 신재생에너지를 대폭 확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새로운 기술들이 개발돼 신재생에너지로 원자력과 화석연료를 대체해야 하겠지만, 단기간 내에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에서도 관련 기술개발에 꾸준히 투자하고 있다.

▲ 원자력발전은 안정성, 경제성, 기후변화협약 등을 고려할 때 가장 현실적인 에너지원이다.

당장 2020년까지 화력발전의 30%를 줄여야하는데 정부 목표인 3%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감당할만한 다른 에너지원이 마땅히 없는 상황이다. 기록적인 한파나 더위로 전력사용량이 사상최대치를 갱신하는 이상기후 현상에 직면하면서 예비전력이 200만kW에도 미치지 못할 때도 있을 만큼 전력수급이 녹록치 않다. 발전소를 더 지어야겠지만 현실적으로 원자력 이외에는 이런 수요를 감당할 마땅한 대안이 없기에 당분간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국내의 경제적·기술적 문제와 함께 지구 온난화라는 전 지구적 문제도 간과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인류가 에너지를 사용할수록 대기 중에는 인류의 생명을 위협할 온실가스의 양이 점점 증가한다.

지구 온난화는 점차 증가하는 온실가스에 의한 온실효과로 발생하며, 세계 각국에서 여러 가지 기상이변을 유발하고 있다. 기후변화는 조만간 인류의 생존까지 위협하게 될 것이다.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지구 온난화의 해결방안은 온난화의 주원인인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농도를 적어도 550ppm 이하로 억제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 향후 10년 내에 완전 포화상태에 이르는 사용후핵연료의 부피와 독성 저감기술 개발이 시급하다.

세계 각국은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기 위한 목표치를 제시하고, 당장 그 약속을 실행해야 한다. 이산화탄소의 발생을 줄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여러 가지 미래기후 예측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할 수 있는 4개의 방법을 발표한 바 있다.

첫 번째는 신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 않도록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수력, 조력, 풍력, 지열, 태양 에너지나 물 분해를 이용한 수소에너지를 쓰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아직까지 발전 효율이 낮기 때문에 전 국가적인 범위에서 기저 에너지로 적용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두 번째 방법은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는 절약 및 효율 향상 기술이다. 사용하는 에너지 자체를 줄이거나 에너지를 적가 소비하는 상품을 만들고, 자동차의 경우 내연기관이 작동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방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 기술 개발이다. 발전소, 제철소와 같은 대형 이산화탄소 발생 시설에서 이산화탄소를 직접 포집해 지하 1000m 이하의 대염수층에 압축·저장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 방법 역시 상용화와 국가적 범위로의 확대 적용까지 상당한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

마지막 네 번째는 원자력 에너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원자력 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나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공존한다. 이 위험을 제거 또는 제어할 수만 있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 소듐냉각고속로 원형로 모형.

안정성과 경제성, 그리고 기후변화협약을 고려할 때,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에너지는 원자력으로 귀결된다. 다만 원자력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삼기 위해서는 몇 가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원자력 안전에 대한 무너진 신뢰회복이 급선무다.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원자력은 지속하기 어렵다. 정부, 규제기관에서부터 한수원, 그리고 필자가 속한 원자력 연구기관까지 국민 신뢰회복을 최우선 극복과제로 삼아야 한다. 총체적이고 상시적인 안전점검, 외부의 눈높이로 우리 내부를 들여다보는 새로운 기준, 그리고 끊임없이 국민과 소통하는 진솔한 자세가 필요하다.

사용후핵연료 처분방안에 대한 국가차원의 로드맵 수립과 법제화도 서둘러야 한다. 지금 당장 조밀 랙을 설치해 저장용량을 늘리더라도 지금부터 10년 내에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완전 포화된다.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할 곳이 없어 새 연료를 넣을 수도 없어 원전가동이 중단되고, 수리도 불가능한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의 부피와 독성을 획기적으로 저감할 수 있는 기술개발을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새롭게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 수립에는 그 어느 때 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 창출, 복지 등 예전보다 정책 수립 시 고려해야할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국민 모두를 포용하며 이끌 수 있는 리더십이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주장과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에너지정책을 기대해본다.

▲ 파이로프로세싱은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초우라늄을 소듐냉각고속로 연료로 재순환하고, 고열의 핵종은 따로 분리해내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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