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도영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수급연구실 연구위원

현대 사회에서 ‘전기’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단 하루만 전기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모든 경제 활동이 올 스톱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다. 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캐나다 정부가 2003년 8월14일 미국 동부와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사태의 영향을 추정한 결과는 ‘전기 없는 삶’에 대한 가늠자가 될 만하다. 온타리오주가 정전사태에서 완전 회복하기까지는 1주일 이상이 소요됐으며, 그 기간 동안 대다수의 산업 생산활동이 전면 또는 부분적으로 중지되었다.

캐나다 통계청은 2003년 8월의 캐나다 국내총생산이 정전사태의 영향으로 전월대비 무려 0.7%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온타리오주가 캐나다 경제의 42%를 차지하는 경제 심장부였기 때문에 경제에 대한 영향은 매우 컸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높은 수준의 전력 수요 증가세 지속-

전기는 우리 사회에서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에너지원이 되었다. 경제의 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전기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증가세는 우리의 예측 범위를 웃돌고 있다. 2010년 전력 소비는 전년 대비 10.1%의 증가율을 보였으며, 2011년에도 1~5월 소비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하는 등 높은 수요증가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특히, 경기호조에 따른 산업용 전력 소비가 2010년 12.9%, 2011년 1~5월 10.1% 증가하여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의 전기 소비량 급증은 무엇보다도 전력 다소비 업종(석유화학, 철강, 전기ㆍ전자, 자동차 등)에서 신규 설비 가동이 잇따르는 등 산업 생산 활동이 증가한 결과이다. 고유가로 인해 높은 수준의 석유제품 가격이 지속되는 가운데 원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요금이 유지되는 것도 전기 소비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또한 계절용 전기 기기가 다양화, 대형화되고 보급이 확대되어 냉?난방용 전력 소비가 날씨의 변화에 민감해졌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하계 및 동계 최대 전력수요 중 냉?난방용 수요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전력거래소의 분석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비효율적 전력 소비는 국가 경제에 부담-

산업 활동 호조로 인한 전력 소비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국가적으로 보면 석유, 도시가스 등을 이용하는 것이 효율적인 분야에서 조차 전기가 기존 에너지원을 대체하고 있다는데 있다.

전기 소비 증가의 영향은 타 에너지원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전기는 ‘2차 에너지원’으로서 원자력, 석탄, LNG 등 1차 에너지원의 ‘상당한 손실’을 바탕으로 생산되기 때문이다. 2010년 통계 기준으로 전기 생산을 위한 전환손실률이 64%에 달한다.

다시 말해, 36 TOE(석유환산톤)의 전기를 얻기 위해서 64 TOE의 에너지가 버려진다는 것이다. 이는 동일한 양의 에너지 수요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이를 어떤 에너지로 충당하느냐에 따라 국가 에너지수급 측면에서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의하면, 2010년 우리나라 총에너지 소비 증가분의 약 50%가 전기 소비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에너지원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비효율적인 전기 소비는 1차 에너지원의 추가적인 수입을 유발하게 된다. 2010년 에너지(석유ㆍ천연가스ㆍ석탄ㆍ우라늄) 수입액은 1,217억 달러로, 전년 대비 33.4%나 증가하였다. 이는 우리 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여름철 전기 공급여력 충분치 않을 전망-

캐나다와 같은 정전사태를 겪지 않으려면, 항상 전력 수요보다 공급 능력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높게 유지하여야 한다. 전기는 타 에너지원과는 달리 유사시를 대비해 저장해 둘 수 없고, 단기간에 발전설비를 건설하여 공급능력을 늘릴 수도 없으며, 국가 간의 전력망 연계도 없어 수입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식경제부가 최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올 여름철(6~8월) 최대 전력수요는 전년 대비 7.0% 증가한 74,770MW에 이를 전망이다. 반면, 공급능력은 전년 대비 6.2% 증가한 78,970MW로, 공급예비력은 4,200MW(예비율 5.6%) 수준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최대 수요 발생 시점에서 원자력과 같은 대용량 발전기(1,400MW)가 하나라도 가동을 멈추게 된다면, 캐나다와 같은 전력 대란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따라서 공급 여력이 많지 않은 올 여름철, 전력수요관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성을 갖는다.

-올 여름철 전력수요관리에 역량 집중해야-

정부는 지난 6월20일 ‘여름철 전력 수급 대책회의’를 열어 올 여름철 전력 수급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하고, 비상대책반을 본격 가동하였다. 이에 따라 수요 분산, 에너지 절약 등 관련 정책들이 이행될 예정이다. 당장 7월11일부터는 전국 479개 대형건물의 냉방온도를 26℃로 제한하는 조치가 예년보다 2주 앞당겨져 실시된다.

2012년부터는 신규 설비 가동이 이어지면서 예비 공급능력이 점차 확대될 것이므로, 올 여름철이 전력 수급 안정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이다.

전력 공급 차질(정전)은 국민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므로, 국민들도 ‘전력 수급 안정’을 정부의 손에만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주변에 쓸데없이 버려지는 전기가 없는 지 관심을 가져야 하며, 다소 불편하더라도 정부의 조치에 적극 협조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른 한편으로 전기요금 현실화를 시급히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기를 절약하자는 ‘호소’보다는 소비자의 소비 행태를 변화시키는 요금정책이 수요 안정에 보다 효과적이다. 전기요금 억제를 통한 물가 안정도 중요하지만, 전력 부족 사태로 야기될 경제적 피해가 훨씬 크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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