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춘 에너지관리공단 글로벌전략실장

박병춘 에너지관리공단 글로벌전략실장.
[에너지신문]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도서벽지는 24시간 전기혜택을 받을 수 없는 곳이 많았다. 필자의 경우도 중학교 때 친구 집에 놀러갔는데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호롱불 아래서 저녁을 먹은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전국 어디에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 없으며, 전기의 질 또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비단 전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에너지 혜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나라는 최빈의 농업국가에서 최단시간에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나라다.

부산항은 선진국의 원조물자가 들어오던 항구에서 이제는 원조물자가 나가는 항구가 됐다. 많은 개발도상 국가들이 이러한 한국의 압축 성장을 부러워하고 있으며, 롤 모델로 삼고 한국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실제로 2014년 양국 무역투자포럼에서 파푸아뉴기니의 산업부 장관은 “한국으로부터 꼭 수입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Time’”이라며 “5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르쳐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최근 새마을 운동이나 KSP사업 등 한국형 원조사업이 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은 우리가 가진 이러한 값진 경험을 배우려는 개도국들의 니즈가 밑바탕에 깔려 있음은 부인할 수는 없겠다.

세계은행(WB)은 2014년 41조원의 대출 및 양허성 차관 중 16%인 약 6조 7000억원을 에너지부문에 투자했으며, 아시아개발은행(ADB)은 2013년 양자사업 예산 21조원 중 27%인 약 5조 6000억원을 에너지부분에 지원한 바 있다.

ADB의 에너지정책은 ‘Strategy 2020'에 따라 △에너지 안보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에너지에 대한 보편적 접근 제공 △빈곤퇴치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2013년 에너지효율 및 신재생에너지 개발촉진을 위한 청정에너지 프로그램 지원규모는 2조 6000억원(약 24억달러)에 이른다.

SBI Energy는 2011년 5331억달러인 에너지수요관리 시장이 2012년 5955억달러로 11.7% 성장했으며, 2018년에는 1만4280억달러 규모로 급속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렇듯 에너지 관련 투자동향은 발전소 건설 등의 공급 측면에서 효율향상, 신재생에너지 등 수요측면으로 관심이 전환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최근 많은 국제기구들이 개도국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에 에너지관리공단의 참여와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개도국들은 에너지 정책 및 제도 수립에 대한 자문과 자국 공무원의 역량강화 등에 대한 공단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한국 압축 성장의 에너지 부분 버전인 에너지 수요관리분야의 35년 압축된 공단의 경험을 배우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에너지효율정책이나 신재생에너지 그리고 온실가스감축을 망라하는 모든 수요관리 분야 사업이 집약된 기관이면서 개도국 시절의 경험을 가진 유례를 찾기 힘든 모범기관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라 사료된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에너지관리공단은 글로벌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를 신설하고 지난해 이를 확대 개편, 우리의 우수사례와 기술을 해외에 보급하고 기업의 해외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얼마 전 개도국 에너지진단을 다녀온 한 선배가 본인도 신입직원 때에 한번 본적이 있는 구형 열사용기기를 사용,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기업에서 예전의 기억을 되살려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더니 최고의 기술자로 대접받고 왔다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는 너무 빨리 옛 것을 잊고 있지는 않은지, 오직 앞만을 향해 달려오다 보니 소중한 경험을 너무 손쉽게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은 뒤돌아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비즈니스는 최고만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국제관계는 일방의 요청이나 지원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상대방에 맞출 경우 그 효과가 배가되며, 많은 기회가 생길 것이다.

공공의 파트에서 국제 업무를 담당하면서 우리 기업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상대국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나의 생각과 방식이 아닌 고객의 상황과 입장을 항상 생각하고자 노력하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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