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형 대성에너지 기술본부장.
지난 3월 11일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 지진과 해일은 그 규모와 피해 상황이 실시간으로 안방에 중계됐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자연 재해의 위력과 피해 규모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이 결과로 일어난 후쿠시마원전폭발사고는 일본 정부의 표현대로 전후 최대의 위기로 아직 진행형이다.

원전 사고는 일본이 처음 맞는 위기로서 해결 방법이 그리 녹녹치 않고 그 결과가 일본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나아가서는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단계에 이른 것 같다.

지진은 지각이 갖고 있는 에너지의 갑작스런 방출로 일어나는 결과이다. 이는 지각이 수십 킬로미터 두께로 이루어진 판구조가 이동하면서 발생한다는 판구조 이론에 근거한다.

1963~1998년 일어난 지진 35만8214건의 진앙을 그려 넣은 세계 지도를 보면 판의 경계를 따라 대부분의 지진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 지진이 발생한 일본 동북지방 앞 바다도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경계이다.

그렇다고 판 경계에 있지 않는 지역은 안전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판 내부에서 일어난 지진의 예로는 1811년의 미국 뉴마드리드 지진, 1976년의 중국 당산 지진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헐적으로 지진이 발생하며 가장 크게 관측된 진도는 5.3(1980년 의주)이고 진도 5이상의 지진도 몇번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지진에 대비한 내진설계 기준을 제정해 원전, 댐, 건축물, 고속철도, 도로교 등의 시설물에 적용하고 있다. 도시가스 시설인 배관 설계 시 적용하는 내진설계 기준도 마찬가지다. 현재 대부분의 지역에 적용되는 지진구역 I은 지진구역계수 0.11g, 진도로 환산하면 5.5~6 정도의 지진에 견딜 수 있게 설계된다.

이번 일본 동북지방 지진에서 목격된 바와 같이 화재 등의 2차 피해 발생이 더 우려되고 있다. 2차 피해 발생의 원인으로는 전기, 가스 및 인화성 연료유를 들 수 있다. 그 중 가스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2차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특히 고압 배관의 경우 배관 파단에 이은 가스누출 및 화재는 2004년 아현동 정압기지 폭발 사고로 충분히 경험한 바가 있다.

따라서 지진 발생 시 즉각적인 밸브의 차단이 가장 중요한 대비 방법이다. 일본은 가정용 가스계량기를 모두 마이콤미터로 교체하여 일정 규모 이상의 지진 발생 시 즉시 차단되도록 하고 있다. 각 지역정압기에도 지진감응 자동차단밸브를 설치하여 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바로 차단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공급 권역을 블록화하여 중압과 저압을 권역별로 차단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나머지 중압 정압기와 고압 정압기에는 원격 차단 밸브시스템을 갖추어 일정 규모의 지진이 발생하면 중앙지령실에서 밸브의 원격 차단이 가능토록 하고 있다.

미국은 1993년 1월 17일 노스릿지 지진(진도 6.7)으로 상당한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 지진 후 발생한 화재의 50%가 가스누출이 원인이라는 분석결과가 발표되었다. 이 지진 이후로 화재보험사는 가정에서 지진감응 차단밸브(설치 비용 200에서 300불 가량)를 설치할 경우 보험료를 깎아 주는 방법으로 이런 밸브의 설치를 권장하고 있다. 이 밸브는 진도 5 이상에 작동하는 기계식으로 다시 세팅하는 데도 그리 어렵지 않다.

1995년 1월 17일 일어난 진도 7.2의 일본 고베 지진은 15초 동안 발생했지만 6310명의 사망자와 10조엔의 피해를 입혔다. 이 지진의 결과로 86만 가구의 가스가 공급 중단되었고 3개월만에 모두 복구되었다.
한국의 경우 지진에 대비해 각 도시가스사는 20만세대를 기준으로 공급 구역을 블록화하여 원격제어 중압밸브 차단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지진의 특성상 모든 상황은 지진 발생 1분 이내에 종료되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으로는 지진 피해를 줄이는데 한계가 있다. 현재로서 실현 가능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지역정압시설과 사용자시설에 지진감응 자동차단밸브를 설치하는 것이다. 지역정압 시설에 지진 감응 차단장치를 설치하는 것은 제도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나, 사용자 시설에 설치하는 것은 비용부담의 문제가 발생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일본과 미국은 다른 방식의 차단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일본은 회사 주도로 마이콤미터의 교체가 이뤄졌으며, 미국은 보험료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지진감응 차단밸브의 채택을 권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가스계량기가 고객 소유로 되어 있고 관리 의무는 회사에 있다.

고가의 마이콤미터로 교체하기 보다는 미국과 같은 기계식 지진감응 찬단밸브를 선택하면 비교적 저비용으로 보급이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이 밸브를 원용해서 더 싸게 국산화한다는 전제로 가정하였다.

이처럼 지진의 피해는 순간적으로 일어나지만 그 피해는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가져온다. 사전에 대비하고 발생하였을 때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석형 대성에너지 기술본부장.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