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에너지거버넌스 센터장)

서부 유럽, 가스시장 자유화·에너지 공급 다변화 등 변화
중부·남동부, 러시아 지배 견고해져 가즈프롬 독재 유지

▲ 베트남 11-2 롱도이 가스전.

[에너지신문]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는 몇 가지 측면에서 셰일혁명으로 인한 세계 에너지지형의 지각변동의 향후 경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흥미로운 사건이다.

과거 에너지수입수출구조상 유럽과 러시아는 불안한 상호에너지의존과 우크라이나 경유라는 문제를 에너지안보 차원에서 다변화해야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유럽은 러시아에 가스수입의 30%를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50% 이상이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도 가스수출의 90%, 석유수출의 80%를 유럽에 의존하고 있다. 유럽의 지난 20년 동안의 러시아 의존을 줄이기 위한 방안은 주로 ‘남부가스회랑(Southern Gas Corridor)’ 구축에 집중되어 왔으며, 이것은 중앙아시아(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와 중동(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이란)의 가스를 나부코(Nabucco)라고 불리는 파이프라인을 통해 확보하는 것이었다.

기존 나부코는 오스트리아, 폴란드, 독일 등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우선 수입국으로 가정하는 프로젝트로 금융위기 이후 수차례 연기 후 최근 불가리아, 이태리, 그리스를 우선적으로 연결하는 TAP과 TANAP이 추진하는 방안이 급진전 되고 있다. 러시아 가스를 대신해 아제르바이잔 가스가 유럽에 주로 공급되는 방안이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의존을 줄이기 위하여 러시아와 독일을 직접 연결하는 노드스트림(North Stream)과 러시아와 불가리아, 이태리 등을 직접 연결하는 사우스스트림을 추진해왔다.

노드스트림은 이미 2012년 개통한 이후 두 개의 라인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가스관 최대 용량을 채우지 못하고 있으며, 불가리아, 이태리, 그리스 등에 아제르바이잔가스를 터키를 통하여 공급하는 TANAP 가스관 건설이 2013년 6월 합의됨에 따라 이태리, 불가리아, 그리스, 과거 유고슬라비아 등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이 높고 LNG 수입이 지형적으로 쉽지 않은 지역의 에너지 공급을 둘러싼 TAP과 사우스스트림의 경쟁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편 2006년, 2009년에 이어 최근까지도 러시아는 유럽 수출용과 우크라이나 내수용으로 우크라이나에 한해에 100억달러에 달하는 가스를 공급해 왔으며 이는 다른 지역 공급가격에 비해 30% 저렴한 가격이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가스 대금을 바로 갚지 못하고 항상 가즈프롬에 대한 채무가 생긴다는 것으로 2014년 3월 직전에도 33억달러(US$3.3 billion)에 달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악화되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다.

북미 셰일혁명의 여파는 해안에 인접해 LNG 수입이 쉬운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가스가격 저감과 가즈프롬 장기계약의 유연화 등의 형태로 나타났으나 중부유럽과 남동부유럽은 러시아의 지배가 견고했다.

이와 같은 유럽의 양분된 에너지지형으로 인해 현 유럽의 에너지안보상황을 일부 분석가들은 냉전시대의 ‘에너지의 베를린 장벽’으로 표현하고 있다. 베를린 장벽 서쪽은 최근 북미 셰일혁명의 여파가 직접적으로 가스시장 자유화와 에너지 공급의 다변화 등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나, 베를린 장벽 동쪽은 아직도 러시아의 에너지 지배가 견고해 이 지역 국가들의 정치경제 체제 발전을 저해하고 러시아의 가즈프롬을 통한 독재 유지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고 서구 학자들은 보고 있다.

정치적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25년 만에 이제 ‘에너지의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러시아 가스 공급에 의존해 있는 서유럽과 특히 동유럽·발칸 지역을 새로운 서구 자본을 이용한 가스 생산지를 개발해 새로운 가스관으로 연결하는 방안이 정치, 경제, 군사안보적으로 중요한 현안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서유럽과 동유럽·발칸에 가스관을 통해 가스를 공급할 수 있는 대안적 지역은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이라크, 이란 등이다.

아제르바이잔은 2013년 6월 합의된 TANAP/TAP 가스관으로 이제 유럽 가스공급국으로 등장했고,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를 통한 간접 가스판매는 줄이고 있으나 중국으로 가스 수출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은 아직 불확실성이 존재한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유럽으로의 가스 수출은 유럽의 시각에서는 남부가스회랑 프로젝트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사안으로 2000년대 초 이후 지금까지 유럽의 구애가 계속되고 있지만 그루지아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러시아의 정치적 보복과 압력 등으로 투르크메니스탄이 아직 뚜렷한 방향을 정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사이 중국이 중앙아시아의 가스를 선점하고 있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란은 잠재적 대규모 가스 생산국으로 정치적으로 미국에 의해 가스수출판로가 봉쇄되어 왔으나 이란의 핵개발 포기 선언으로 향후 이란의 가스 수출의 귀추가 주목된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은 셰일가스 개발을 러시아 독점 구조를 완화하는 방안으로 추진해왔으며 사태직전 미국의 셰브론은 우크라이나와 100억달러의 셰일가스 개발 계약을 체결했었다.

전반적으로 유럽전체의 셰일가스 개발이 반대론을 잠재우고 개발론의 방향으로 급진전하는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의 LNG 수출에 대한 유럽의 요구가 늘어나고 미국 내 여론도 LNG 수출을 지정학적 무기로 고려하는 방안이 우세해 질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직후 동유럽 국가들의 즉각적 반응은 미국이 셰일가스 수출을 다른 지역보다 유럽으로 늘려주기를 다시 한번 요청하였으며 시기도 2017년 보다 앞당겨 달라는 것이었다.

러시아는 이러한 미국과 유럽의 셰일가스 기술 개발과 글로벌 LNG 시장 개편과 에너지다변화를 에너지 수입 감소로 인한 경제위기 뿐 아니라 체제전체에 대한 위협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 세계에너지 위기 이후 1984년 석유가격의 폭락으로 1980년대 후반 당시의 소련은 세기의 체제변혁을 겪은 바 있다. 현재는 LNG 시장의 급변과 비전통가스의 도전으로 러시아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유가가 110달러 선에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다소 여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로 인한 국가 수입 가운데 천연가스 수입은 30%이며 아직 석유수출로 인한 수입이 70% 가량으로 더 중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대응으로 미국과 유럽은 러시아의 천연가스 수출 봉쇄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가져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국제석유가격의 하락이 러시아에 더 큰 충격을 가져올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전략석유 비축분을 방출해서라도 국제유가를 하락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다.

과거에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스윙프로듀서’로서 국제유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했지만 이제 상황이 많이 변했다. 이미 세계석유시장에서 미국과 캐나다 등의 비전통 석유생산분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2012년 말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의 세계석유수급(액체연료: C+C+NGL) 통계에 의하면 2012년 말 현재 전 세계 액체연료(global liquids production) 생산량은 1일 9200만배럴이었다. 9200만배럴 가운데 1500만배럴은 원유(crude oil)를 제외한 원유를 채취하거나 원유 정제 시 나오는 컨덴세이트, 천연가스액화물(NGL : Natural Gas Liquids), 비전통석유인 셰일오일(shale oil), 오일샌드, 에탄올로 알려진 바이오연료 등을 포함한 것이다. 비전통적 석유를 제외한 전통적 석유 7700만배럴은 2005년의 수치와 같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은 이미 지정학적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최근 북아프리카 중동지역(MENA) 지역의 정치 불안으로 국제석유시장은 230만배럴이 공급 물량 부족사태에 직면해 있었고, 이에 따라 유가는 원래대로라면 현재의 수준보다 훨씬 높게 유지될 가능성이 높았으나 미국에서의 비전통석유 공급분이 230만배럴의 부족분을 채워줌으로써 현재의 안정된 유가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이란이 핵개발에 전향적인 모습을 보이게 된 근본 원인도 바로 이러한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으로 인한 시장의 변화이다. 이란의 석유는 유가의 약 20% 정도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물량으로 이란의 이러한 유가 레버리지가 미국의 생산으로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럽에서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한 러시아의 아시아 가스와 석유시장 공략이 더욱 강화될 것이다.

러시아의 아시아 시장공략은 2011년 1월 이후 ESPO 파이프라인을 통한 중국(일일 30만배럴)과 태평양 항구 코즈미노(일일 30만배럴)로의 석유수출과 2012년 12월 ESPO 2단계 완공이 보여주듯이 가스 수출보다는 석유수출이 아직 훨씬 더 성공적이다. 코즈미노 항구에서 미국은 러시아 석유를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구매했었으나 셰일오일 생산으로 미국의 러시아 석유수입이 줄어들고 대신 중국이 수입을 늘릴 것이다.

최근 로스네프트 사장 이고르 셰친은 잇달아 인도, 베트남, 일본을 방문해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고 있으며, 2014년 5월 중국-러시아 간의 가스계약 타결 가능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조만간 한국과 러시아 간에도 가스 관련 새로운 제안이 러시아로 부터 제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