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실에 바보가 한명 있다.

처음에 수도꼭지를 틀었더니 샤워기에서 찬물이 쏟아져 나온다. 찬물에 깜짝 놀라 뜨거운 물이 나오도록 수도꼭지를 왼쪽 방향으로 틀어버린다. 그러자 이번엔 갑자기 너무 뜨거운 물이 나온다. 또 놀란 바보는 오른쪽 끝까지 수도꼭지를 돌린다. 이렇게 왼쪽, 오른쪽으로 반복해서 돌리기만 한다.

‘샤워실의 바보’. 197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밀턴 프리드먼 교수가 정부의 무능과 어설픈 경제정책을 꼬집기 위해 예로 든 개념이다.

프리드먼 교수는 정부가 샤워실의 바보처럼 정책을 수도꼭지 조작과 그 결과의 시차를 무시한 채 순간의 수온에 따라 즉흥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큰 우를 범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기다리면서 세밀한 조정작업을 거치지 않고 즉흥적인 조취를 취하느라 오히려 경제를 망쳐진다는 것.

최근 정부의 공기업 정상화 대책 또한 이와 같은 우를 범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

불과 몇년전 정부는 공기업들의 세계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기존 기반산업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업 영역 확대를 장려했다.

공기업 스스로 자생할 수 있을 만큼, 그리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성장과 발전이 최대 목표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과감한 도전은 미덕이 됐고 잘하는 공기업은 정부로부터 칭찬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게 신규사업들이고 해외자원개발이다. 특히 해외자원개발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를 강화시키는 목적까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의 태도가 정반대가 돼 버렸다.

‘공기업들의 부채가 많다. 그 이유는 방만경영이다. 부채를 감축해라. 그게 최우선이다.’

그리고 공기업들의 복지비용과 인건비가 과도하다고 질타를 받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한전의 경우 인건비는 전체 예산의 3%에 불과하다. 이를 최대한 줄여도 부채해결에 별 도움이 안되고 부채의 주 원인도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기업들이 줄일 수 있는 것은 결국 신규사업과 해외자원개발이다.

‘공기업 정상화’, 샤워실의 바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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