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2. 전력산업구조개편의 개념과 시작(상)

영국식 구조개편, 세계로 퍼져 나가다

英보수당, 공공노조 약화 위해 ‘민영화’ 도입
발전부문 먼저 민영화... 배전 완전 경쟁체제

전력산업 구조개편 10년이 지났다. 2001년 4월 한국전력 발전부문이 화력발전소 5개사, 수력원자력 1개사, 전력거래소로 각각 분할됐다. 정부는 2단계로 배전부문 분할을 시도했으나 전국전력노동조합의 반대로 2003년 추진을 하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9월15일 블랙아웃 직전까지 가는 전력대란이 발생했다. 이에대한 원인분석과 책임공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가 잘못한 것인지, 단지 몇몇 전력책임자의 잘못인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진행과 관련,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사를 시리즈로 독점 게재한다.         /편집자 주 

글 : 최용혁(전력노조 대외협력실장)

자본주의 경제의 기본은 시장과 경쟁이다. 말 그대로 돈이 주인 되는 세상에서 돈의 가치 극대화를 위해서는 모두가 자발적으로 서로를 이기기 위해 싸워야 하고 그 싸움터를 시장이라고 부른다.

자본주의세상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우리는 경쟁은 당연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자신이 패배자가 된다는 생각을 못한다. 엄청난 함정이다.

전력산업에도 시장과 경쟁의 바람이 불어왔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 문제와 공익성이 큰 사업이므로 정부가 직접 사업을 하거나 아니면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 민간기업이 독점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믿음은 1970년대를 지나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진원지는 자본주의가 탄생한 영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자본주의의 위기는 두 차례 오일쇼크와 함께 찾아왔다. 그리고 영국 노동당의 장기집권은 영국병이라고 불리던 구조적 문제를 안고 막을 내렸고 해결사를 자처한 보수당의 대처 정부는 전후 주류 경제학파였던 케인즈학파로부터 소외됐던 자유주의의 새얼굴, 신자유주의를 정치와 경제정책의 이념으로 내 걸었다.

대처에게는 복지는 사치였고 노동조합은 사회악이었다.

흔히 불만의 겨울(Winter of discontent)이라고 불리는 1980년대 초반, 대처 정부는 노동조합 파괴를 위해 모든 힘을 쏟았다.

가장 강력했던 노조였던 광산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후 끊임없이 석탄을 생산해 내면서 경제성이 바닥으로 떨어진 국영광산을 폐쇄해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국내산 석탄을 가장 많이 사용하던 석탄화력 발전소를 퇴출시켜야 했다.

이 때 등장한 이론가가 바로 스티븐 리틀차일드 교수였다.

북해 유전, 영국 전력산업 송두리째 바꾸다

영국 경제를 부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자유화와 민영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던 금융전문가 리틀차일드 교수는 1978년 보수당 승리 이후 대처 정부에 합류, 전면전인 민영화와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주도하게 된다.

특히 여러 가지 정치적 이유로 대처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직접 설계하고 현장에서 지휘하는 역할도 맡게 된다.

리틀차일드 교수가 생각한 영국 전력산업의 개혁은 우선 잉글랜드 지역을 독점하던 전력청(Electricity Board)에서 발전부문을 완전히 분리하고 민영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송전은 중립적인 기관으로 남기고 발전과 배전부문이 완전경쟁하는 풀시장을 개설함으로써 비싼 국내산 석탄화력 발전소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고 민간 투자자들이 값 싼 북해산 천연가스 발전소를 대거 건설하도록 유도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전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고 요금을 낮추겠다는 생각을 했다.

리틀차일드 교수의 이런 경쟁시장은 전력도매시장이라고 명명됐고 과거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의 시장모델이었다.

즉 복수의 발전회사가 상호 경쟁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다음날 생산할 전력가격을 중립 시장에 입찰하고, 반대로 복수의 배전회사 역시 서로 경쟁하며 다음날 구입할 전력가격을 입찰하면 시장에서 가장 적절한 지점에서 가격이 형성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경쟁의 개념이었다.

이런 경쟁시장이 완성되면 제일 싼 발전소가 제시한 판매전력과 가장 높은 구입단가를 제시하는 배전회사의 구입가격이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경제학 그래프를 오고 가면서 최적점에서 낙찰되는 완벽한 거래구조를 형성하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렇게 되면 제일 효율적인 발전소는 생존하고 비효율적인 발전소는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퇴출된다는 개념이었다.

또한 이와 같은 완전 공개 공정경쟁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모든 전력거래는 반드시 도매시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리틀차일드 교수가 설계한 전력도매시장의 매커니즘이었다.

리틀차일드 교수는 가장 낮은 전력단가부터 발전회사가 높은 순서대로 마치 수조에 물을 채워 나간 후 가장 높은 구입단가에서부터 배전회사가 가는 모양에 비유됐기 때문에 풀시장(Pool Market)이라고 이름을 붙였고, 모든 전력거래가 반드시 이 풀시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강제적 또는 의무적풀시장(Mandatory Pool)이라고도 분류 됐다.

이후 이 모델은 세계적으로 확산된 전력도매시장의 표준모델로 자리를 잡게 된다.

영국 발전민영화 과실은 외국기업으로

영국 정부는 우리가 아는 영국 전체,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가운데에서 가장 중요한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잉글랜드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우선 시작했다.

1990년 잉글랜드 전체의 발전과 송전을 독점하던 전력청에서 발전부문을 분리, 원자력은 브리티시 파워로, 그리고 화력은 파워젠과 내셔날파워로 각각 나누었다. 12개 지역별 지방공사 형태로 존재하던 배전회사들은 하나씩 민영화의 운명을 맞이했다. 송전사업은 내셔날 그리드라는 회사로 독립했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전력회사이던 스코티시 파워와 스코티시 하이드로는 발전과 송전을 포함한 통째로 민영화했다. 그런데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원자력회사인 브리티시 에너지가 파산상태에 빠진 것이다. 원래 영국에서는 가스, 석탄화력, 원자력의 발전단가가 다 엇비슷했다. 외국에서 에너지원을 거의 전량 수입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전력가격이 가장 낮지만 앞마당에 유전을 두고 있던 영국에서는 발전원별 단가 차이가 거의 없었다.

분할과 민영화 이후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가스 발전이 늘어남에 따라 초기 투자비용, 즉 좌초비용(Stranded cost)가 높았던 원자력 발전은 사양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영국정부는 브리티시 에너지를 1996년 민영화해 버렸다. 원자력산업의 주권이 민간, 그것도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는 순간이었다.

또다른 문제점은 전체 발전량의 50%를 차지한 내셔날 파워와 30%에 육박했던 파워젠이라는 두 회사가 버팀에 따라 실질적인 발전경쟁의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게 된 사실이었다. 그러자 영국 정부는 두 회사의 발전설비를 하나씩 뜯어서 민영화하기 시작했고 주로 미국계 발전회사들이던 에디슨, AES, 미션, NRG, SEP 등이 발전소를 매입했고, 2001년이 되자 독일의 거대 전력회사인 E.ON과 RWE가 파워젠 전체를 통째로 사들였다.

2004년이 되자 발전시장에서 점유율이 가장 큰 회사였던 브리티시 에너지가 11.5% 시장점유율에 그칠 정도로 발전부문은 잘게 나눠졌다.

민영화된 배전회사들도 미국계를 거쳐 프랑스와 독일 전력회사들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잉글랜드 지역에는 활발한 M&A 과정을 거쳐 과거 14개이던 배전회사가 7개로 줄어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경쟁의 효과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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