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1. 전력산업이란 무엇인가

전기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막대한 투자비 소요 ‘독점산업’...전력산업 규제는 일반적인 상황

전력산업 구조개편 10년이 지났다. 2001년 4월 한국전력 발전부문이 화력발전소 5개사, 수력원자력 1개사, 전력거래소로 각각 분할됐다. 정부는 2단계로 배전부문 분할을 시도했으나 전국전력노동조합의 반대로 2003년 추진을 하지 못한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9월15일 블랙아웃 직전까지 가는 전력대란이 발생했다. 이에대한 원인분석과 책임공방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정부가 잘못한 것인지, 단지 몇몇 전력책임자의 잘못인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전력산업 구조개편 진행과 관련,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이면사를 시리즈로 독점 게재한다.         /편집자 주  

오늘날 우리 생활에서 전기가 없다는 것은 상상이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때에 스위치만 올리면 전기가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하며 만약 한 순간이라도 전기공급이 끊어지면 견딜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오늘날, 전기공급이 중단되면 엘리베이터가 선다. 상수도 역시 전기모터로 퍼 올려서 공급하기 때문에 물공급도 끊어진다.컴퓨터나 TV 사용은 물론 핸드폰 사용도 불가능해진다. 말 그대로 전기 없는 생활이란 단 하루, 한 시간, 아니 10분도 견디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우리는 전기를 필수 공공재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들은 전기를 물, 공기와 같은 인간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로 분류하기도 한다.

우리 전력노동자들은 전기는 소득의 많고 적음, 살고 있는 지역의 차별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회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하는 권리로 판단하고 전기는 인간의 기본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전기를 생산해서 소비자들에게 공급하는 전력산업에는 일반 산업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물론 모든 산업들이 각기 다른 분야와는 구별되는 특성들이 있겠지만, 전력산업은 우리가 말하는 산업들과는 명확하게 다른 성격이 강하다. 그 이유는 전기라는 재화의 특성에서 가장 강하게 나타난다.

전기를 연구하고 생산하며 공급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전기의 물리적 특징은 첫째, 저장이 불가능하므로 생산과 동시에 소비가 되고 둘째, 대체품이 없으므로 가격에 대한 수요탄력성이 0에 가깝다는데 모아진다.

즉 이 말은 현재의 기술로는 대용량의 전기를 저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동시에 소비자가 소비하는 실시간 생산과 소비라는 특징이 있고 전기 공급이 중단된다고 하더라도 이를 대신해서 전기의 역할을 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어쩔 수 없이 소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전력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전력산업의 핵심은 안정적으로 중단 없이 공급을 계속 유지하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경제학에서는 전력산업을 자연독점이 인정되는 산업으로 분류한다. 우선 발전과 송전, 그리고 배전설비를 건설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 원자력발전소 하나를 세우려면 거의 10년에 가까운 시간이 들어간다. 가장 작은 규모의 가스발전소 건설에도 2년이 더 걸린다.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를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실어 나르는 송전철탑과 선로 건설도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도심지의 건물과 가정을 연결하는 배전선로 건설 역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어려움 때문에 전력산업은 처음부터 특정 지역을 담당하는 공급주체에게 그 지역의 모든 발전, 송전, 배전설비를 건설하고 운영하도록 독점권을 줬다.

그래야 그 사업주체는 안심하고 장기간에 걸쳐 각종 설비를 짓는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전력사업은 송배전선로를 타고 전기를 공급해야 하므로 네트워크 산업으로도 분류된다. 철도, 가스, 상하수도, 통신 등 지역을 연결하는 망을 반드시 세우고 운영하는 산업을 모두 네트워크 산업이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이런 네트워크 산업은 모두 자연독점성이 강하다고 분류했고 막대한 투자비가 들기 때문에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가 직접 재원을 조달해서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해 왔다.

미국의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전기회사를 나라에서 직접 세워서 국영체제로 운영해 온 사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철도와 상하수도 사업도 이와 비슷했다.

또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는 전기를 필수공공서비스로 분류한다. 공급주체가 국가의 한 부서이든, 국영기업이든, 민간기업인가 여부를 떠나 한 순간의 공급 중단도 허용할 수 없는 전력서비스가 가지고 있는 공공성 때문에 필수공공서비스로 분류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력설비 건설, 전력회사 운영, 그리고 전기요금 구조 등을 정부가 직접 결정하거나 아니면 정부가 강력하게 통제해 온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전력산업의 노동자들은 일정 수준으로 노동기본권도 제한을 받아 왔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전력노동자들은 나라와 국민들의 발전을 위해 일한다는 신념 속에서 꿋꿋하게 전력산업을 지켜왔다.

전기는 다 알다시피 미국의 에디슨이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하면서 세상에 빛을 밝히기 시작했다. 즉 미국이 전기라는 재화를 처음으로 모든 시민들에게 공급하는 사업을 시작한 나라였다.

이후 기술진보의 결과 교류송전방식이 등장하고 장거리 수송도 가능해지면서 본격적으로 전기가 인간 생활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전기가 등장한 후 불과 130년이 겨우 지난 오늘날, 물론 아직도 저개발국가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전기의 혜택을 못보고 있기는 하지만 전기 없는 현대 문명사회는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정치, 종교, 그리고 경제적 자유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세운 미국은 전기를 처음 소개한 나라답게 민간기업들이 앞 다투어 전력회사를 세우기 시작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지구상의 새로운 중심국가로 떠오르던 미국의 힘은 바로 자유주의였고 전력산업 역시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서 민간 자본가들이 자유롭게 전력회사를 설립해 나갔다.

하지만 민간전력회사들의 지나친 영리추구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전력회사를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되고 그 결과 1935년, 연방정부는 공공산업지주회사법(PUHCA)을 제정함으로써 대형 민간전력회사들의 지나친 독과점을 해체하고 전기요금을 비롯한 전력산업 운영의 중요한 부분들을 연방과 주정부가 직접 규제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송전관련 사항은 연방정부가, 그리고 발전과 배전부문은 주정부가 통제하는 규제체제가 20세기 말까지 유지돼 왔다.

20세기 초의 자본주의 발전을 주도한 역동적인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에 부치던 유럽 각국들은 주로 지방정부가 앞장서서 전력산업을 시작했다.

지역별 독립적인 소국들이 모인 연방성격이 강했던 독일, 이탈리아 등은 물론이고 프랑스, 스페인, 북유럽, 영국 등 거의 모든 나라에서 도시정부에서 전력회사를 하나씩 세워 나갔다. 이후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이 강했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이후 중앙정부가 작은 전력회사들을 통합해 나갔다.

1879년, 발명왕 에디슨은 최초로 백열전구를 만들어 냈고 3년 뒤 에디슨 전등회사를 세웠다. 그리고 이로부터 불과 5년 뒤인 1887년, 경복궁에서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백열전등 점등식이 열렸다.

당시 고종은 신문명을 받아들여 힘을 잃어가던 나라를 새로 세우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고 전기는 서양의 문명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고종은 1898년 마침내 사재를 털어 미국인 콜브란과 합작으로 한성전기회사를 서울에 설립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력공급을 시작했다.

이후 1901년 부산전등주식회사, 1905년 인천전기주식회사, 1912년 원산수력전기주식회사 등 지역별로 민간전력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체 전력산업은 일제의 강력한 통제 아래 놓이게 됐고 최종적으로 발전회사인 조선전업, 송배전회사인 경성전기와 남선전기 3사 체제로 해방을 맞이했다.

분단 과정에서 발전소 대부분이 북한지역에 위치했던 이유로 북한 정부의 5.14 단전조치라는 초유의 전력공급 중단과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무너진 전력산업은 5.16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이 1961년 3개 전력회사를 통합해 한국전력주식회사를 발족시키면서 다시 성장을 시작했다.

당시 군사정부는 공업화를 위해서는 전력산업 재건이 필수적이라는 판단 아래 전력산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이어진 1970년대의 우리나라 경제의 고도성장에는 산업발전에 필수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했기 때문이었으며, 한국의 전력산업과 전체 국가경제는 눈부신 동반성장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에 벌어진 농어촌전화사업은 전국의 거의 모든 가정에 전기공급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빠른 시간 안에 완료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1981년 집권에 성공한 신군부세력은 한국전력주식회사의 완전 국유화를 통해 한국전력공사를 출범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전력산업의 공공성은 한층 더 강화됐다.

하지만 이렇게 급속도로 성장하던 전력산업에 일대 회오리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저 멀리 영국에서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전력산업구조개편의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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