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방폐물 처분 세부계획·법률제정 조건
EU 택소노미 기반으로 국내여건 맞춰 조정

[에너지신문] 원자력발전을 포함시킨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 초안이 지난 20일 공개됐다.

K-택소노미는 6대 환경목표(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 순환경제, 오염, 생물다양성)에 기여하는 녹색경제활동의 분류로 녹색경제활동의 판단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자발적 지침이다.

▲ 바라카원전 1~4호기.
▲ 바라카원전 1~4호기.

‘녹색’과 ‘전환’의 2개 부문, 69개 경제활동으로 이뤄져 있는데 녹색부문은 탄소중립 및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으로 재생에너지 생산, 무공해 차량 제조 등 64개 경제활동이 속해 있다. 전환부문은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적 경제활동(한시적 인정)으로 LNG 발전, 블루수소 제조 등 5개 경제활동이 포함된다.

녹색경제활동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환경개선에 기여하며, 사전 예방적 환경관리 및 사회적 공감대를 기본으로 3가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첫째, 환경목표 기여다.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 순환경제, 오염, 생물다양성의 6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의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해야 한다.

둘째, 심각한 환경피해가 없어야 한다. 환경목표 달성 과정에서 다른 환경목표에 심각한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것.

셋째, 최소한의 보호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인권, 노동, 안전, 반부패, 문화재 파괴 관련 법규를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 녹색활동 적용기준은 경제활동이 6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에 기여하고, 배제기준 및 보호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번 초안에서 원전은 녹색부문에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전환부문에 신규건설과 계속운전이 포함됐다.

전환 부문의 경우 원전 신규건설과 계속운전 모두 인정기한은 2045년까지이며 인정기준은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적용(계속운전은 2031년부터) △고준위방폐물의 안전한 저장·처분을 위한 문서화 된 세부계획 존재 및 계획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제정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보유 △최신기술기준 적용(신규건설) △온실가스 100g CO2eq./kWh 이내 배출 △방사성폐기물 관리기금 및 원전해체비용 보유다.

EU 택소노미의 경우 2025년부터 ATF를 적용하고, 2050년까지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 가동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계획을 마련한다. 또 신규원전 건설 시 ‘최적가용기술’을 적용하고, 계속운전 인정기한은 2040년까지다. 핵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연구개발 밀 실증·적용도 담겼다.

사고저항성핵연료(ATF)란?
현재 상용 중인 핵연료(Zr-UO2 기반)는 원전 설계기준 초과 시 급격한 고온 수증기 산화반응으로 핵연료 다량 손상 및 수소폭발 위험 증가한다. 특히 냉각기능 상실시 20~30분 이내 중대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다.

사고저항성핵연료(ATF, Accident-Tolerant Fuel)는 이보다 성능이 향상 또는 유지되면서 능동적 노심 냉각기능이 상실된 상태에서도 핵연료의 건전성을 장시간(약 50분 추가) 유지할 수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경제성 향상보다는 안전성 개선으로 개발 방향이 변화됨에 따라 세계 각국에서 ATF 상용화를 위한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우수한 ATF 개발 기술력을 보유한 미국과 프랑스가 2019년부터 상용로 연소시험을 진행 중이며 2020년대 후반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우리나라는 내년 연구로 연소시험을 시작으로 2024년 상용로 연구시험, 2029년 인허가 신청 및 2031년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ATF 기술개발 시 연구로 3~4년 연소, 상용로 4.5년 연소, 각국 원자력안전위원회 통한 기존 핵연료 인허가 심의에 2~3년이 소요된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한수원-원자력연구원-한전원자력연료-원자력안전기술원 간 ATF 상용화를 위한 연구협력 협약을 체결했으며, 이를 통해 연구개발 및 인허가 기간을 단축한다는 계획이다.

▲ 사용후핵연료 관리 프로세스.
▲ 사용후핵연료 관리 프로세스.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국내외 동향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은 알파선 방출 핵종농도 4000Bq/g, 열발생률 2kW/m3 이상인 방폐물로 원전 사용후핵연료가 이에 해당된다.

고준위방폐물 관리 절차는 △임시저장(소내저장) △중간저장 △재처리 △영구처분(재처리 후 처분, 직접처분)으로 구성된다.

임시저장은 사용후핵연료를 방사능과 열을 낮추기 위해 발전소 내 수조나 건식저장 시설에서 중간저장 전까지 임시로 저장하는 것이며 중간저장은 재처리 또는 직접처분 전까지 중장기적(40~80년)으로 저장한다.

재처리는 사용후핵연료로부터 플루토늄, 우라늄 등을 뽑아내 전기 생산 등에 재사용하는 기술로 재처리 후 폐기물은 영구처분 전까지 재처리 시설 내에서 임시저장한다.

영구처분은 지하 500m 이상(심층)에 격납, 영구적으로 인간 생활권에서 격리하는 방식이다. 심층‧해양‧우주 등 다양한 방식이 논의됐으나 IAEA 등 국제기구는 경제성‧안전성을 고려해 심층처분을 권고하고 있다. 이외에 재처리 후 영구처분 또는 재처리 과정을 생략한 직접 영구처분 방식이 있다.

현재 영구처분을 수행하는 나라는 없으나 핀란드가 2025년부터 세계 최초로 영구처분 시설을 가동할 예정이다. 프랑스와 스웨덴은 처분장 부지 마련을 완료한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향후 20년 내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2037년 이내에 영구 처분시설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환경부 “원전 경쟁력 강화…수출 도움될 것”
환경부는 원전이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 “원전은 기후변화,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력원으로 2030 NDC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국, EU 등 주요국도 탄소중립의 핵심 수단으로 원전을 활용하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말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발표 이후 수개월만에 원전을 포함하는 것이 너무 급격한 방향 전환이라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는 “(K-택소노미) 발표 당시 EU 등 국제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 향후 원전 포함 여부를 결정한다고 명시한 바 있다”며 “내년 본격 시행 이전에 올해 시범사업을 통해 개선점을 발굴, 보완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급격한 방향 전환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EU 택소노미와 일부 조건이 다른 이유는 녹색분류체계가 각 국가의 실정에 맞게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 하에 EU 택소노미의 기준을 참고하되 국내 현실 등을 반영, 기준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EU 택소노미에 비해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원전 수출에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은 원전 수출국이 아닌 EU 회원국이 충족해야 할 조건이며, ATF의 경우 EU 국가에 원전을 수출하더라도 실제 원전가동 시기가 2030년대 중반 이후로 예상되기 때문에 수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오히려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됨에 따라 전후방 원전 산업에 녹색자금이 공급되고, 이는 원전 경쟁력 강화로 이어져 수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환경부의 설명이다.

ATF 적용 시기에 대해서는 “전문가 자문 결과 국내에서는 2031년이 상용화가 가능한 가장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EU의 경우 2025년부터 ATF를 적용할 예정이나, 추후 상용화 시점을 고려, 적용 시기를 재검토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

이번 초안에서 특히 주목받는 부분은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 관련 법률 제정으로, 고준위방폐물 처분을 위한 전담조직, 부지선정 절차, 시설 유치지역에 대한 지원체계 등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함으로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을 적기에 확보하기 위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아울러 객관적이고 투명한 부지선정 절차와 특별 부담에 대한 인센티브를 명문화해 정책 투명성 확보 및 국민 신뢰성 제고가 기대된다.

다만 고준위방폐물 처분시설에 대해 EU 택소노미처럼 구체적인 연도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환경부는 “(고준위방폐장은) 민간이 아닌 정부가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계획(제2차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연도 제시는 불필요하다고 결론지었다”면서도 “정부 계획의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법률제정 등)을 조건에 포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EU는 다수 국가 연합체로 소속 회원국에 고준위방폐장 확보를 위한 세부계획 및 구체적인 연도 조건을 부여할 필요성이 있어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한편 원전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을 전환부문 포함에 대해서는 “녹색부문은 6대 환경목표에 직접 기여하는 진정한 녹색경제활동을 제시했고, 전환부문은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한 활동을 한시적으로 인정한 것”이라며 “신규건설과 계속운전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과도기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돼 전환부문에 포함시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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