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문재인 대통령의 중동 순방은 임기 말에 이뤄졌음에도 현지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고 방위산업을 중심으로 견실한 성과를 보이면서 내외의 주목도 이끌었다.

이번에 대통령이 방문한 아랍에미리트와 이집트는 각각 걸프 지역의 경제 허브, 북아프리카의 맹주국으로서 상당한 위상을 과시하고 있으나 역시 중동을 대표해 G20에도 참여하고 있는 지역강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순방국에 포함되면서 대통령의 방문 성과에 한층 기대감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문 대통령은 이번 사우디아라비아 방문에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의 회담을 통해 양국 간의 오랜 협력 기조를 강화하면서 서로의 관심사에 대한 지지 입장을 재확인했으며 경제 협력과 관련된 14건의 양해각서 체결 등 가시적인 성과도 거두면서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

이하에서는 이번 순방을 계기로 우리나라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가장 중요한 협력 분야로 떠오른 수소와 관련해 양국간 협력 강화의 의의를 짚어본다.

탄소중립 시대 앞둔 사우디아라비아의 숙제

1970년대 초의 오일쇼크 이후 급상승한 원유 가격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 무대에서의 영향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그리고 강력한 오일머니의 힘은 우리나라에도 미쳐 부모님 세대가 사우디아라비아라는 낯선 ‘열사의 땅’에서 벌은 달러가 우리나라의 비약적 경제성장의 토양이 됐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기름국’, ‘부자 나라’로 대변되는 이미지와는 별개로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에서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 이상이다. 의외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메카를 찾아오는 순례자들을 생각하면 쉽게 수긍이 간다.

그러나 역시 최대 산업은 석유, 가스와 그에 기반한 화학 산업으로 그 비중이 80% 정도에 이른다. 이렇게 화석연료에 매우 의존적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다른 산유국들처럼 유가 변동에 따라 부침을 하게 되는 불확실성을 계속 안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유가 등락이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화석연료 자체를 쓰지 않게 되는 ‘탄소중립’의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오일쇼크 시대에 이름을 떨쳤던 사우디 석유장관 야마니가 말했던 “석기시대가 돌이 없어서 끝나지 않았듯이 지금의 석유시대도 석유가 떨어져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 실현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진 다른 고민은 부의 불평등과 급격히 늘어난 인구이다. 사우디아라비아라고 하면 수퍼카를 몇 대씩 가지고 대궐같은 집에 사는 억만장자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 이면에는 상당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1인당 GDP는 우리나라보다 낮은 2만달러 대인 반면 지니계수는 2013년 기준 45.9로서 세계 20위권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다.

뿐만 아니라 30대 이하 청년층 인구가 전체 국민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청년실업률도 20% 이상으로 낮지 않다. 불투명해지는 주력 산업의 미래, 경제적 불평등과 일자리 없는 청년의 불만은 사회 불안정으로 이어지는 완벽한 칵테일 제법이다.

나라 안의 과제도 만만치 않은데 북쪽에는 숙적 이란이 버티고 있고 남쪽에는 이번 대통령 순방 때 아랍에미리트를 공격한 예멘의 후티 반군이 등장해 나라 밖으로도 복잡한 형편이다.

수소는 양국 협력에 있어 최상의 매개체

이번에 문 대통령과 만난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저유가로 어려움을 겪던 2016년에 국가경제의 기틀을 바꾸기 위한 대계인 ‘비전 2030’을 발표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새로운 먹거리 창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는 비전 2030에서 경제 다각화는 7가지 주요 분야 중 하나고 이번에 우리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수소의 생산과 수출은 여기에서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천연가스로 생산하면서도 이산화탄소를 땅 속에 묻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낮춘 ‘블루수소’와 일사량 많은 광대한 국토에서 얻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물을 분해해 만드는 ‘그린수소’ 생산 모두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상당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2년여 전 필자가 만났던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의 수소 관계자가 “어떤 색깔 수소이든 말만 하면 다 공급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새롭다.

세계적 탄소중립 시대를 이끌 청정수소 생산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데에다 오랜 세월 에너지 분야에서 쌓아온 유·무형의 자산까지 국제 거래에 활용할 수 있으니 수소는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더할 나위 없는 카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수소경제를 선도하는 나라로서 상당한 양의 청정수소를 수입할 것이라는 계획을 밝힌 우리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로서 절대로 놓칠 수 없는 파트너인 것이다.

이처럼 상호 보완적인 양국의 관계는 대통령이 참석한 1월 18일의 ‘한-사우디 스마트 혁신성장 포럼’에서도 잘 드러났다.

양국 관계 장관들과 에너지 분야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그린·블루 수소 등 청정수소 생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사우디와 세계 최고 수준의 수소차, 연료전지 기술을 바탕으로 수소 활용 분야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은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글로벌 수소경제를 선도할 수 있도록 양국이 긴밀히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2019년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 계기로 맺어진 수소경제 협력 양해각서에 더해 이번 순방 때 새로 체결된 양해각서도 수소·암모니아, 그린수소사업 공동개발 및 사업타당성조사, 양국 수소 관련 정보 공유 및 협력체계, 수소공급망 구축, 발전분야 연료전환, 블루암모니아 및 블루수소 사업화 등 수소 공급사슬 전반을 포괄하고 있어 수소 분야 협력에 대한 양국의 의지를 뚜렷이 확인해 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우리나라 석유 공급의 30% 이상을 맡고 있으면서 국내 에너지 산업에도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건설업을 필두로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패션, 문화 관련 시장에서 여러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처럼 긴밀한 양국의 경제 협력이 앞으로 펼쳐질 탄소중립 시대에도 수소를 매개체로 굳건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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