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기본법, 우리 문명 근본적으로 바꿀 것
​​​​​​​2050년 탈탄소 문명의 ‘맨 앞’ 대한민국, 꿈 아냐

[에너지신문] 지난 8월 31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탄소중립기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10개월만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법제화한 세계 14번째 나라가 됐다.

8월 임시 국회는 언론중재법을 둘러싼 공방이 치열했고, 수술실 CCTV 설치법 등 여러 개혁법안이 동시에 통과되면서 이 법의 주목도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러나 앞으로 경제와 산업, 일자리와 국민 생활 등에 미칠 영향은 그 어떤 법률보다 클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기본법은 30년에 걸쳐 우리의 문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법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의 기반은 ‘탄소문명’

시대를 거슬러 보자. 인류는 250년 전 석탄으로 증기기관을 움직이며 1차 산업혁명의 문을 열었다. 이후 석유와 자동차 중심의 2차, 컴퓨터와 인터넷 중심의 3차, 그리고 AI로 상징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산업혁명 시대는 차수를 달리하며 바뀌고 있지만, 에너지의 원천은 여전히 석탄과 석유다.

18세기 후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하고, 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할 당시 그들은 석탄과 석유가 기후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매년 기록적인 폭염과 산불, 폭우와 홍수를 경험하게 된 현 인류는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지난 수백년 동안 편리하게 이용했던 석탄과 석유, 즉 탄소문명과 결별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탄소문명 결별 선언은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될까?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나라에서 자동차는 현재 2470만대가 등록되어 있다. 이들 자동차가 내뿜는 탄소 배출량은 연간 약 9600만톤으로 국내 전체 배출량의 약 14.8%를 차지한다. (참고로 현재까지 전기차는 18만대, 수소차는 1.5만대로 아직 미미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내연차를 100% 전기차 혹은 수소차로 바꿔야 한다. 자동차만 바꾼다고 끝이 아니다. 자동차의 동력은 당연히 석탄발전소가 아니라 풍력과 태양광 등에서 생산된 전기여야 한다. 생산 공장 역시 100% 재생에너지로 자동차를 만들어야 한다. 탄소로 자동차를 만들면 유럽이나 미국으로 수출할 때, 국경에서 탄소세를 물어야 할 날이 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2020년 기준 6.8%로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무르고 있다.

연간 약 3000조원 규모의 세계 자동차 시장도 빠르게 전기차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우리가 문명 전환의 속도와 시간을 맞추지 못하면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상실함은 물론 국내 기업의 도산과 실업의 공포는 현실화될 것이다.

국내의 시간은 내연자동차 부품기업과 노동자가 천천히 질서 있게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로 옮겨가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구의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이다. 시간은 또 우리에게 익숙한 도심의 수많은 주유소와 카센터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갈 길은 멀고 시간은 촉박하다.

▲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6.8%(2020년 기준)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재생에너지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은 6.8%(2020년 기준)로 OECD 최하위 수준이다.

탈탄소 문명 전환을 위한 ‘30년 로드맵’

탄소중립 기본법은 위에서 예로 든 자동차 뿐만 아니라 산업, 전력, 수송, 건축, 농축산, 자원순환, 금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2050년까지 탈 탄소 이행 전략을 세우고 이를 매년 점검하게 된다.

세부적으로 보면 기후변화영향평가제와 온실가스감축인지예산제가 도입되어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수행하는 모든 업무를 온실가스 감축 기준으로 평가·유도할 수 있게 된다. 기초정부도 에너지 기본 계획을 세우고, 풀뿌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움직이는 ‘탄소중립지원센터’를 만들 수 있게 된다. 재생에너지는 자치분권이 더 생산적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실현과정에서 산업과 일자리의 전환이 불가피한 점을 감안해 ‘정의로운 전환’이 되도록 하는 근거도 담았다. 전환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기후위기대응기금’ 도 설치된다. 이 기금은 2022년 2조 5000억원 규모로 시작해 점차 확대될 예정이다.

이 법의 통과를 앞둔 시점에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에서 6차 보고서가 나왔다. 탄소배출로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지구 온도가 1.09℃ 올랐고,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이라 할 수 있는 1.5℃까지의 기한이 10년 이상 앞당겨졌다는 것이 보고서의 요지다.

NDC 목표 40% 이상 가능할까?

IPCC 보고서는 당초에 시행령에 위임하기로 했던 NDC 목표를 법률에 규정하도록 압력을 행사하는 계기가 됐다. ‘지금 당장 행동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이미 지난 4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관한 세계기후환경회의에서 미국, EU, 일본이 모두 50%가 넘거나 근접한 NDC 목표를 제시했기에 우리의 부담은 더욱 커졌다.

그렇다고 해도 30년 전부터 준비한 선진국과 2년 전인 2018년부터 탄소 발생 총량을 줄이기 시작한 우리가 같은 목표를 세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따라서 기본법에는 ‘35% 이상’ 이라는 NDC 목표를 담았다. 예상했던 대로 환경단체는 의지가 약하다고 비판하고, 산업계는 수치가 너무 높다고 비판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까?

NDC 목표는 최종적으로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에서 10월 중에 확정되고,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UN 기후환경회의에 보고될 예정이다.

혁신지수 세계 1위, 제조업 경쟁력 세계 3위인 대한민국이 넘어지지 않으면서 빠르게 달릴 수 있는 속도의 한계는 얼마나 될까? 지구의 운명, 우리의 국제적 위상과 체력을 종합적으로 감안해 보면 최소 40% 이상 탄소 절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탄소중립과 녹색성장

이 법은 이명박 정부 때 만들었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을 대체하게 된다. 목표가 저탄소에서 탈탄소로 바뀌었으니 당연하다. 그런데 법 제정과정에서 국민의힘에서는 MB 정부의 유산인 ‘녹색성장’ 개념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4대강 토목사업을 하면서도 이를 녹색성장으로 포장해 녹색성장이라는 단어를 오염시켰기에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기 쉽지 않았다.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에 ‘녹색성장’이 끼어들어 그린워싱(가짜 녹색)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컸다.

그렇지만, 정치는 여러 세력 간 대화와 타협의 산물이기에 과거 오염을 털어내고 ‘녹색 성장(Green Growth)’의 순수한 의미를 받아들여 명칭에 담게 됐다.

탈탄소 문명의 주인공, 대한민국을 꿈꾼다.

이제 우리도 법적으로 탈탄소 문명사회로 가는 대장정을 시작한다. 2050년 현재의 청년 세대는 에너지 제로 주택에 살면서, 재생에너지로 충전하는 전기 자동차로 출퇴근하고, 유기농 식품과 일회용 플라스틱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원을 생산하고 쓰고 매립하는 지속불가능한 시대에서, 지구가 버틸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원을 순환하는 지속가능한 시대로 전환될 것이다.

약 100년 전, 우리는 식민지와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해 오늘날 세계가 부러워하는 선진국에 진입했다. 이제 우리가 추격할 모델은 사라졌지만, 세계의 변화를 스스로 예측하고 연대하며 속도감 있게 또 전진해야 한다.

그리고 30년 후, 2050년 탈탄소 문명의 맨 앞에 있는 대한민국을 상상한다. 이는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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