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유럽의 목표는 대담하다.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 배출 제로(0)’ 달성을 일찌감치 약속했을 뿐 아니라, 향후 10년간 역내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 감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는 기존의 중간목표였던 90년 대비 40%에서 15%p 상향한 것으로, 올 6월 회원국 모두의 동의를 얻으며 통과된 ‘유럽 기후법(European Climate Law)’에 명시돼 있다.

이 대담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의 행정부 격인 유럽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 이하 집행위)는 2050년 탄소중립, 2030년 탄소배출 55%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일련의 조치를 ‘Fit for 55’라는 표제 하에 발표했다. 에너지, 수송, 건축물, 토지이용 등 분야에서 새로 설정한 온실가스 절감 목표를 법제화하는 일련의 입법안이 이 발표에 포함된다.

이중 국내에서 가장 관심을 받은 항목은 오래전부터 예고되었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의 구제적인 실행방안이다.

EU의 배출권거래제(이하 EU ETS)가 역내 기업에만 적용될 경우 가격경쟁력 악화를 우려한 기업들이 환경 기준이 느슨한 역외로 생산설비를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EU에게 경제적 손실을 안길 뿐 아니라 탄소감축이라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EU는 이른바 ‘탄소누출’을 막기 위해 EU ETS와 연계해 역외 기업에 환경부담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번에 제시한 법안이 그대로 통과하면 2023년부터 EU로 수입되는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전기 부문 최종 제품의 온실가스 배출량 신고가 의무화되며 2026년부터 실제로 비용이 부과된다.

CBAM 시행이 상기한 다섯가지 부문의 EU 대상 수출기업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은 자명하다. 벌써부터 EU가 환경을 앞세워 새로운 ‘무역 장벽’을 세운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개발도상국을 위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친환경 전환을 일찌감치 시작한 EU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철강업계가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한 보고서는 탄소국경세 도입 시 1차 철강 산업의 대 EU 수출이 약 11.7% 감소할 것이라 추정하기도 했다.

‘Fit for 55’는 CBAM 이외에도 여러 조치들을 담고 있다. EU 역내의 배출권거래제가 한층 더 강화된다. 항공부문에 주어지던 무상할당이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폐지되며 기존 적용대상이 아니던 해운, 육상운송, 건축물 분야로 EU ETS가 확대된다.

내연기관 관련 규제도 강화돼 2035년 이후로는 화석연료를 사용하는 승용차/승합차의 생산을 전면 금지한다. 에너지 관련 지침을 제정해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에 인센티브를 부여했다. 삼림 등 천연 탄소흡수원 확대를 통한 온실가스 흡수 목표를 구체화했다.

EU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를 통해 역내 경제 구조를 바꿀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탄소중립 노력을 압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우리 정부와 기업의 발빠른 대응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역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천명했으므로 뒤로 물러설 길이 없다. 지금 당장은 CBAM이 국내 기업 수출에 급격한 변화를 미치지 못하도록 세계무역기구(WTO) 협정과의 합치성 검토 등을 통해 대응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기업도 친환경 기술 혁신을 통해 임박한 기후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EU 및 국제사회의 노력은 우리 기업도 피할 수 없는 도전이자 기회다. 이번에 EU가 제시한 CBAM이 어떤 방식으로 구체화되는지 살피며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적극적인 친환경 기술 투자를 통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더 강화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산업과 노동자, 지역이 없도록 세심한 관심이 촉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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