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주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하재주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에너지신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원전이 극한 상황에서도 얼마나 잘 견딜 수 있는지를 점검하는 ‘원전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도 전염병에 대해 우리 국민과 국가가 얼마나 잘 견디나를 시험하는 스트레스 테스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계치를 넘나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현재의 에너지정책이 미래의 에너지 스트레스 테스트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착찹한 생각이 든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에너지 정책
얼마 전 미국의 대선이 있었기에 미국의 에너지 정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을 생각해 본다.
바이든 행정부의 가장 큰 정책은 기후위기 대응이다.

전통적으로 원자력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민주당이 2020년 7월 30일 발표한 개정 당론에 전력부분의 탈탄소가 시급한 것을 지적하면서 탄소제로 기술인 원자력의 이용을 포함시켰다. 모든 것이 풍부해 폭넓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민주당마저 거의 50년 만에 원자력을 지지하는 입장으로 바꾼 것이다.

이는 신재생만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과학적 판단이므로 매우 의미있게 볼 필요가 있다. 바이든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향후 4년간 2조달러를 투자한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 원자력을 지원하는 내용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2050년까지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 2035년까지 전력부분에서 탈탄소를 먼저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탄소중립의 핵심이 전기화에 있기 때문이다. 생활의 전기화, 산업의 전기화, 수송의 전기차, 전기분해를 이용한 수소에너지, IT를 이용한 4차 산업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기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므로 전기부터 탈탄소화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석탄, 석유, 가스 등 탄소를 배출하는 전력사업자에게 탄소세를 부과해 탄소제로인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그동안 이산화탄소를 석탄의 반이나 배출하지만 저렴하고 풍부해서 가장 경쟁력이 높았던 가스발전의 가격상승을 유도, 사용을 억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책의 기본 방향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시장원리에 따라 탄소배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시행하겠다는 것으로 우리나라가 정치사회적으로 결정한 에너지전환 정책에 따라 탈원전, 신재생 확대 등을 강제 시행하는 것과 매우 대조를 이룬다.

미국의 원자력 정책
미국의 이러한 탄소중립 정책에서 원자력 정책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가동 중인 원전은 안전성과 경제성이 있으면 계속해서 운전을 한다. 현재 87기가 60년의 운영허가를 획득했고 4기는 80년의 운영허가를 획득했다. 40년 넘게 운전하는 원전은 47기에 이른다. 우리가 40년 최초운영허가가 도래하면 무조건 폐쇄하는 비과학적인 정책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둘째는 선진원자로 개발 정책이다. 소형모듈원자로인 뉴스케일 원자로, 빌게이츠가 주도하는 소듐냉각고속로인 나트륨원자로, 고온가스냉각로인 X-100원자로 등은 미국이 집중하는 대표적인 선진원자로다. 미국 정부는 여기에 약 45억달러의 개발비를 지원한다.

눈여겨 볼 것은 이런 원자로가 탄소제로의 기저전력 생산뿐 아니라 신재생의 간헐성을 보완하고 고열을 사용하는 산업에 원자력의 열을 직접 사용해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개념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자력이 신재생과 하모니를 이뤄 탄소배출을 감축하는 것이 원자력기술의 미래라는 것을 시사한다.

미국이 선진 소형 원자로에 집중하는 것은 몇가지 동기가 있다. 미국은 그동안 TMI 사고와 값싼 가스발전에 밀려서 신규건설을 거의 하지 않아 대형원전의 공급 능력을 상실했다. 우리의 탈원전 정책이 지속되면 우리도 공급능력을 상실할 것은 자명하다.

미국은 대형원전 기반이 붕괴됐지만 소형원자로의 경우 원자력추진 항공모함과 잠수함 등의 기반이 있으므로 자국의 산업 능력으로 공급이 가능하다. 또한 엄청난 수의 노후된 석탄발전소를 소형원자로로 대체하면 부지와 전력망을 따로 고민할 필요도 없어 자국 시장이 매우 크다.

수출 전략으로도 큰 가능성이 있다. 신재생이 세계적인 성장세인 것은 아무 나라나 쉽게 건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자력은 국가의 시스템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대형원전은 높은 초기비용과 긴 건설기간 등으로 이런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할 수 있는 나라가 매우 한정적이다.

그러나 전 세계의 발전소 중 96%가 300MW 이하의 소형 발전소이므로 적은 비용으로 짧은 기간에 건설하고 안전성이 월등한 소형 원자로가 있다면 수요는 폭발적일 것이다. 이것이 소형원자로가 바라보는 비전이고, 미국이 소형원자로에 집중하는 이유다.

우리는 소형원자로 역시 상당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미래의 시장에서 뒤쳐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원자력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 한다.

▲ 한빛원자력발전소.
▲ 한빛원자력발전소.

우리의 불합리한 에너지 정책
2017년 고리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탈원전을 선언했다. 그 후 경제성, 전기요금, 환경성, 원전생태계 파괴 등 많은 우려를 낳고 있으나 일단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그러나 205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가 나오면 얘기가 상당히 달라진다. 지금의 탈석탄?탈원전을 하면서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신재생이 아마 80% 이상의 비중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얘기한다. 당연히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모름지기 정책이라는 것은 효과와 효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없으면 정책이 아니라 그냥 캠페인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은 깨끗한 신재생으로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듣기만 그럴싸한 캠페인에 결코 속지 않을 것이다.

친원전 vs 반원전, 친신재생 vs 반신재생과 같은 일차원적이고 비생산적인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에너지안보, 경제 등을 열린 마음으로 과학적 시각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지금 정부는 이런 노력보다는 탈원전은 공약이므로 바꿀 수 없다는 비과학적이고 정치적인 고집으로 일관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바보가 되지 말자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미래의 방향은 상당히 명확하다. 먼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만든 전기를 쓰는 것이다. 그것이 원자력과 신재생이다. 수소도 이런 전기로 만들어야 깨끗한 에너지가 된다.

다행히 우리는 아무나 쉽게 확보할 수 없는 원자력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고 수많은 기업이 있다. 이것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정말 바보다.

새해에는 바보가 되지 말고 탈원전 정책을 제고해 신한울 3,4호기 건설이라도 시급히 재개하는 현명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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