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원자력전지, 극한환경에서의 전력시스템
[기고] 원자력전지, 극한환경에서의 전력시스템
  • 손광재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
  • 승인 2020.09.2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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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전지 기술로 소형화 한계·고비용 문제 극복 기대
각국 개발경쟁 치열…경쟁력 확보 위해 기술융합 필요 

[에너지신문] 인공지능, 빅데이터,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전지의 중요성 또한 커지고 있다. 그 중심에 배터리 기술이 있다. 전기차 시장 주도권을 위한 기업간·국가간 경쟁의 핵심요소가 배터리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그런데 현재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리튬이온전지가 향후 5~10년 이내에 성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산업연구원(KIET)은 전망했다. 그렇다면 포스트 리튬이온전지 자리를 이어갈 차세대 전지는 무엇일까.

원자력전지와 수소연료전지가 경합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전고체전지가 새로운 도전자로 등장했고, 기존 리튬전지도 리튬황전지와 리튬금속전지 등으로 진화를 모색 중이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안정한 원소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방사선에너지를 방출한다. 이때 방출되는 광자 또는 하전입자의 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전력원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장치·기기를 원자력전지(Nuclear Battery) 또는 방사성동위원소전지(Radioisotope Battery)라고 한다.

이는 원자력으로 전력을 생산한다는 점에서 원자력발전과 비슷하다. 그러나 핵분열 연쇄반응을 이용하지 않고 방사성물질이 가진 고유한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면에서 큰 차이가 있다.

원자력전지는 적용하는 전력변환 기술에 따라 몇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동위원소열전발전기 또는 RTG(Radioisotope Thermo electric Generator)가 있다. 방사성동위원소가 방출하는 방사선을 차폐하면 방사선에너지가 열에너지로 변환되는데, 여기서 발생한 열을 열전재료에 전달하면 재료 내부의 온도차로 생긴 기전력을 이용한다.

두 번째는 베타볼테익(Betavoltaic)전지 또는 베타전지다. 방사성동위원소에서 방출하는 베타선, 즉 전자가 반도체 내에서 전자-정공 쌍(EHPs, electron-hole pair)을 생성하고, 생성된 전자-정공쌍으로 인해 전기장이 형성돼 전류가 흐르는 원리로 작동한다.

이외에도 압전 세라믹을 이용하는 방법 등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고, 지금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며 관련 연구가 활발한 분야는 동위원소열전발전기와 베타볼테익 전지다.

▲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원자력전지.
▲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 중인 원자력전지.

원자력전지에 사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는 10~100년 정도의 반감기를 갖는다. 반감기가 길면 길수록 배터리의 수명은 길어진다. 또한 방사성동위원소의 붕괴현상은 온도, 압력 등 외부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아 충전과 교체도 필요 없다. 수명이 수십 년으로 매우 길고, 극한환경에서도 동작할 수 있어 우주, 심해, 미세전자기계시스템(MMES,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등에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위성의 궤도가 반-알랜 대에 위치, 우주방사선에 태양전지가 파괴됐을 때 전력을 공급하는 임무, 달과 같이 자전주기가 길고 밤낮의 온도차가 매우 큰 행성이나 금성처럼 대기가 불투명하여 태양전지를 사용할 수 없는 행성의 탐사 임무, 나아가 태양과 거리가 먼 심우주 탐사 임무 등에 원자력전지의 효용성이 극대화 될 수 있다.

이차전지의 수명이 급격히 짧아지는 차가운 심해에서 해양감시용 고정센서 등의 전력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 경쟁기술인 화학전지 또는 연료전지의 에너지밀도에 비해 원자력전지의 원료로 사용되는 방사성동위원소의 에너지 함유량은 수백에서 수천배까지 높아 초소형 전력원으로 만들 수 있다.

초소형 전력원은 마이크로 로봇 또는 자가발전형 센서, 나노기술로 만든 매우 작은 기계인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Micro Electro Mechanical System) 등에 장기간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한다.

지난 수년간 도시 관제, 교량관리, 기상관측, 자산관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행된 USN(Ubiquitous Sensor Network) 실증시험 및 현장시험에 따르면, 현재 USN 기술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센서 노드에 구동 전력을 공급하고 이를 유지하는 문제와 배터리에 의한 소형화의 한계 및 고비용 등이다. 그런데 장시간 동작이 가능하고 초소형화가 가능한 베타전지 전력원 기술로 이러한 핵심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원자력전지가 갖는 이러한 장점과 활용성에 주목, 세계 각국은 치열한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 중반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초기형 RTG의 개념 정립과 시작품을 제작했다. 1956년에는 Po-210을 사용한 최초의 RTG를 제작, 1959년부터 위성에 장착했다. RTG는 미국의 심우주 탐사에 핵심적인 요소로, 탐사선에 전력과 열을 공급한다. 최근까지 45개 이상의 RTG를 26개 우주 탐사선에 이용했다.

러시아는 1965년 Po-210을 연료로 하는 RTG(오리온-1, 오리온-2)를 장착한 지구 저궤도 위성 코스모스-84와 코스모스-90을 발사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Pu-238을 사용해 화성 탐사선에 보낼 우주선에 탑재할 장수명 RTG 개발을 시작했다.

미국과 러시아는 또한 Sr-90을 원료물질로 심해용 RTG를 개발, 잠수함의 이동을 감시하는 해저시스템에 사용했으며 알래스카 등 북극 주변의 지진 탐지장치의 전력공급원으로 지상용 RTG를 활용했다. 또 바다 위의 위치를 알려주는 부표, 북극해 연안의 등대 등의 무인시스템 운용에 RTG를 기본 전력원으로 사용했다. 유럽우주기구(ESA; European Space Agency)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연구로 우주용 RTG를 개발하고 있으며, 열전소자와 열보호재료 관련 기술은 아직 최적화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서는 오는 2030년 달 탐사에 활용을 목표로, 한국원자력연구원이 탐사선에 전력을 공급하는 RTG를 개발하고 있다. RTG의 핵심 기술 중 장수명 열원의 국산화를 위한 연구개발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지원으로 2019년부터 시작돼 우주탐사뿐 아니라 극지, 심해에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원자력전지 내부 구조도.
▲ 원자력전지 내부 구조도.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순 베타선원인 Ni-63을 이용해 베타전지 개발에 필요한 핵심 원천기술을 확보했으며, 국내 최초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전력회수 실증에 성공, 시제품을 개발했다. 현재는 베타전지의 상용화를 위한 연구개발이 진행 중이며, 향후 5년 이내에 외부환경 독립형 안전감시 센서시스템의 전력원으로 상용공급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장수명의 원자력전지와 고출력의 고분자 연료전지를 결합해 고립된 극한환경에서도 수년간 장기 운용이 가능한 잠복형 무인체계용 전원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또한 베타 붕괴로부터 발생되는 베타 검출신호의 무작위성을 이용, 진성난수 발생기를 개발하고 있으며 2025년 세계 최초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기술은 사물인터넷 보안, 유무선 통신보안 및 인터넷뱅킹 등의 보안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고, Monte Carlo 계산과 같은 공학적 프로그램과 암호통신과 같은 고속난수가 필요한 분야에 사용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국가 전략기술로서 RTG 기술에 대한 중장기 개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이 기술은 우주뿐만 아니라 심해, 국방 등 특수목적 분야에서 활용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국가 전략 기술로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중장기 기술개발 로드맵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탐사 사업과 같은 단일 사업의 필요에 따라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어 세계 수준의 기술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베타전지는 반도체 기술과 초저전력 센서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그 효용성이 점차 증대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의 Widetronix, 러시아의 TVEL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이 기술은 댐, 터널, 군사시설 및 교량 등에 사용되는 안전감지 센서의 전원 문제를 획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수요처와의 협력방안 마련 또한 필요하다.

특성별·출력별로 사용처에 특화된 원자력전지를 개발, 선진국과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여러 기관들이 각기 보유한 기술을 융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참여주체들의 참여 범위와 방법 등에 대한 정부의 종합조정 역할과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방사성동위원소에서 전력을 생산하려면 열전, 압전, 스털링 등 다양한 변환기술들이 필요하다. 원자력전지는 특수목적 이외에 산업체의 수요가 없기 때문에 산업체에 이관, 사용할 수 있는 기술 수준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관련 기초연구에 대한 국가차원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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