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원가 60%가 전기요금…오른 전기요금에 가격경쟁력 하락

[에너지신문]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르면서 국내 화학업체들의 수익성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국내산 석유화학제품 중 전기를 대량으로 투입해 생산하는 PVC(poly vinyl chloride)가 전기요금 인상에 따라 가격 경쟁력 하락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 PVC 호스.
▲ PVC 호스.

전기 사용량이 많았던 태양광 발전분야의 핵심소재 폴리실리콘(polysilicon)의 국내 생산을 최근에 포기한 화학업계는 생산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폴리실리콘보다 더 높은 PVC에도 위험신호가 오지는 않을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저렴한 에너지인 우라늄과 발전용 유연탄 등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에서 국내 사용 전기의 70% 이상을 생산하면서 전기의 가격을 낮게 유지하고는 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한 '재생에너지 의무화'와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이 전기 생산비용을 높이고 있어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전기의 생산·유통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는 원자력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은 태양광·풍력발전소의 전기를 의무적으로 구매하거나 발전5개사(남동, 남부, 동서, 서부, 중부)의 지분 100%를 소유한 한전은 탄소배출권을 구매하며 발전해 비싸진 이들의 전기생산 비용까지도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다.

정부 지분이 51%인 한전은 전기 생산비용을 올랐지만 공급가격을 높이지는 못하고 있다. 전국민이 사용하는 주택용 전기의 공급가격을 잘못 손대면 정권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하기 쉬운 행정부의 수장들은 그동안 한전의 이런 적자구조를 개선하는데는 팔을 걷어부치지 못했다.

최근 발전용 유연탄 가격까지 오르며 급격히 쌓인 적자폭을 줄여야 하는 한전 입장에서 기업들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리는 것이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중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PVC는 왜 전기요금 인상에 취약한가?
PVC는 바닥재, 창틀, 파이프, 벽지 등 주택·건설용으로 주로 사용되고 농업용 필름, 전선피복, 합성피혁(인조가죽) 등에도 사용되는 석유화학제품이다. 국내에서는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이 각각 89만톤, 78만톤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LG화학과 한화솔루션은 PVC를 140만톤 이상을 생산해 50만톤 가까이를 수출했다. 수출액은 4000억원이 훌쩍 넘는다. 전체 수출물량의 62% 이상이 가파른 건설분야의 성장세를 보이는 국가 중 하나인 인도로 향했다.

PVC는 에틸렌(ethylene, C2H4)과 염소(chloride, Cl)로 EDC(ethylene dichloride)를 만들고 EDC와 에틸렌, 아세틸렌(acetylene, C2H2)을 반응시켜 만든 VCM(vinyl chloride monomer)을 중합해 제작한다.

PVC 생산 과정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60%에 육박하는데 이는 PVC 생산의 필수 원료 중 하나인 염소를 얻는데 대량의 전기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염소는 소금(NaCl)을 물(H2O)에 녹인 소금물을 전기분해해 생산한다. 소금물을 전기분해하면 염소와 수산화나트륨(NaOH)이 병산된다. 

▲ PVC 파이프.
▲ PVC 파이프.

PVC도 폴리실리콘처럼 비극적인 결말로 갈까?
국내 최대 폴리실리콘 제조업체였던 OCI는 전기요금이 생산비용의 40%를 차지하는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의 국내 생산을 접었다.

OCI와 함께 폴리실리콘 생산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한화솔루션도 올해 안으로 관련 사업을 철수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연간 7만 9000톤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하던 OCI와 1만 5000톤을 생산하던 한화솔루션은 저렴한 전기를 정부에서 공급받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OCI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태양광 발전용 폴리실리콘을 포기하고 이번달부터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시장에 진출했다. OCI는 전북 군산에 위치한 세 개의 태양광 발전용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 중 두 개를 멈췄고 한 개를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공장으로 전환했다.

한화솔루션 역시 태양광 발전용 폴리실리콘 생산을 연내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폴리실리콘 사업의 연간 적자규모는 영업이익 기준 마이너스 500~800억원 수준”이라며 “폴리실리콘 판매가격이 생산원가의 절반 정도에 그치는 상황이라 공장을 가동하면 할수록 손실이 커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PVC는 태양광 발전용 폴리실리콘보다 수요처가 많고 PVC의 핵심원료인 염소를 얻는 과정에서 병산되는 수산화나트륨의 수요처도 많아 태양광 발전용 폴리실리콘처럼 국내 생산을 포기하는 수준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는 하지만 전기에 대한 의존도가 폴리실리콘보다 더 큰 PVC의 공정을 감안하면 마냥 마음을 놓고 있을 수 만은 없는 상황이다.  

“한전, 적자원인 해결 않고 기업들 돈만 더 요구”
PVC와 폴리실리콘과 같이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산업이 다수 존재한다. 이런 산업분야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은 최근 산업용 전기요금을 인상하고 있는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정책에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전기의 생산·유통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한전은 그동안 전기를 원가 이하로 판매하면서 꾸준히 적자를 봐왔다. 한전은 기업들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으로 적자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지만 기업들 입장에서는 한전의 적자 구조를 개선할 근본적인 해결책은 외면하고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과 직결되는 전기요금 인상만을 추구하는 한전의 정책에 아쉬움을 표한다.

정부 지분이 51%인 한전의 의사결정은 정치권의 몫일 수밖에 없다. 또 한전 지분이 100%인 발전사들 역시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돼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친환경 에너지정책이 한전의 수익성을 줄이고 있고 다수의 국민들이 사용하는 주택용 전기는 여전히 원가 이하로 판매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의무화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등의 도입으로 발생한 환경비용을 부담하는 발전사들은 한전에 증가된 환경비용만큼 더 비싸게 전기를 판매하고 이는 한전의 전기 구입비용을 계속해서 높인다.

전기의 가격은 환경비용의 인상만큼 올라갔지만 민심과 직결되는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상할 수 있는 리더십은 쉽게 등장하지 못한다. 결국 한전은 기업에게 자신들의 적자구조 개선을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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