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를 수 없는 전기화, 속도는 늦춰야”

▲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에너지신문] 가스레인지 대신 인덕션(Induction) 방식의 레인지를 사용하고 가스건조기 대신 전기건조기를 사용하는 등 소비자들은 1차 에너지인 액화천연가스(Liquefied Natural Gas, LNG)보다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사용하는 제품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산업현장 역시 가열·건조 공정에 석탄이나 석유제품, LNG를 대신해 전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최근에는 수송용 에너지 시장에서도 석유제품인 휘발유와 경유, 액화석유가스(Liquefied Petroleum Gas, LPG)를 전기로 대체하는 움직임까지 적극적으로 일고 있다.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전기화(electrification)는 결코 바람직한 흐름이 아니다. 냉방과 조명 등 전기를 꼭 사용해야 하는 곳이 아니라면 1차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이용하는 것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대기환경 개선이라는 또 하나의 글로벌 트렌드가 화석연료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들고는 있지만 석탄화력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 비중이 40%에서 최대 50%에 육박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전기화가 과연 친환경적인 것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이슈다.   

전기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업계와 학계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정부 역시 2014년과 2019년에 각각 발표한 2차,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통해 전기화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전기는 1차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이용해 생산한 2차 에너지인데 대한민국에서는 화석연료보다 더 저렴하게 유통되고 있다. 편리한 전기가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한 대한민국의 기괴한 현실에서 효율적인 에너지 소비라는 측면은 계속해서 희생되고 있다. 본지는 5월 특집을 통해 전기화가 갖는 문제점을 알아보고자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편집자주

▲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전기화, 그 시작과 계기는?

전기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1990년대로 볼 수 있다. 가속화된 것은 2000년대다. 정점을 찍은 시기는 이명박 정부(2008~2013년)에서다.

이명박 정부는 일명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라는 친기업 정책을 시행했고 그 정책의 일환으로 산업용 전기를 원가 이하에 공급했다. 이는 기업들이 1차 에너지인 화석연료보다 더 저렴한 2차 에너지인 전기를 적극 소비하면서 전기화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산업용 전기의 소비가 급증해 2011년 9월 15일에는 순환정전이 발생하기도 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을 펼친 노무현 정부(2003~2008년)가 발전소 건설에 소극적인 입장을 가졌었는데 이명박 정부에서 갑작스럽게 전기 소비가 늘어나면서 블랙아웃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현재는 발전소가 포화 상태이기에 전기 생산이 부족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두 차례 석유파동, 전기화에 미친 영향은?

석유파동은 원유(crude oil) 가격이 급등하면서 세계 각국에 경제적 타격을 준 것을 말하는데 1973년과 1978년에 두 차례 일어났다. 석유파동과 전기화는 직접적인 영향이 없다. 다만 1970년대 석유파동은 LNG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됐다.

당시에는 석유제품으로 난방과 취사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두 차례의 석유파동으로 에너지 다변화 측면으로 도시가스와 집단에너지 등 LNG를 이용한 난방과 취사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었다.

정부는 LNG 보급과 함께 석유파동으로 에너지를 아껴쓰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전기화는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한다는 개념이기에 전기화가 석유파동의 대안이 될 수는 없었다. 

전기화가 야기한 에너지 낭비는?

전기화는 세계적인 흐름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지나친 전기화는 에너지 낭비라는 비효율을 일으킨다.

전기화는 에너지 절약과는 거리가 멀다. 1차 에너지인 화석연료를 통해 생산한 전기는 2차 에너지고 생산과 사용과정에서 모두 손실이 발생한다. 냉방과 조명 등 전기를 꼭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1차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이 에너지 낭비를 막는 길이다.

1차 에너지가 2차 에너지인 전기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에너지가 첫 번째로 낭비되고 생산된 전기가 발전소에서 소비처까지 유통되는 과정에서도 약간의 에너지 손실이 발생한다. 또 전기가 제품의 동력으로 사용되면서도 낭비되는 측면이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에너지기기는 그렇지 않은 에너지기기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사용한다. 냉방이나 조명 등 전기 외에는 대체가 힘든 에너지기기를 제외하면 1차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기화 수준은?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화 수준이 OECD 평균 정도로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전기화의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점이 문제다.

인구 50만명인 아이슬란드는 지열로 생산되는 전기가 남아돌아 급속한 전기화를 추진하는 국가다. 인구 5000만명에 육박하는 우리는 아이슬란드 다음으로 빠른 전기화 속도를 보이고 있다.

전기화가 글로벌 트랜드인 것에 대해서는 인정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014년에 정부가 발표한 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지난해에 발표한 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가 전기화의 속도 조절이다. 

전기화가 미친 악영향은?

전기화는 무역수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증가시킨다. 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는 전기화는 에너지 수입량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무역수지는 전기화가 진행될수록 적자를 볼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가 전체 생산 전기의 70%가 넘는 국내 사정을 감안하면 전기는 결코 친환경적인 에너지로 볼 수 없다. 석탄화력발전소의 비중이 최대 50%에 육박하는 국내 현실에서 전기화는 석탄 사용을 늘리는 것이다.

온실가스와 미세먼지에서 결코 유리할 수 없는 구조다. 석탄발전소 비중을 줄이고 부족한 전기는 LNG발전소를 통해 생산하는 것이 친환경성을 확보한 전기화의 대안일 될 수 있다. 원자력발전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는 문재인 정부에서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높이려고 하지만 전체 생산된 전기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한 수준이다. 

▲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에너지정책대학원 에너지정책학과 교수

1차 에너지를 직접 사용하는 것보다 전기가 더 저렴한 이유는?

현재 우리의 전기시장을 쉽게 표현하기 위해서 ‘끊인라면이 봉지라면보다 더 저렴한 상황’이라는 표현을 만든 적 있다.

2차 에너지인 전기가 1차 에너지인 화석연료보다 더 저렴한 기형적인 구조는 전기생산과 유통·판매를 독점하는 한국전력공사가 적자를 보면서 만들어내는 기형적 현상이다.

한전은 정부가 51%, 민간이 49%의 지분을 갖고 있어 의사 결정에서 시장의 논리보다는 정치적 판단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전기 생산단가가 상승해도 가격이 올리지는 못하고 있다.

전기는 전국민이 사용하기에 전기료 인상은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이유는 저렴하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최근 한전 적자와 전기화의 관계는?

한전 적자는 앞서 언급했던 이명박 정부의 친기업 정책의 영향이 크다. 전기를 원가 이하로 판매한 당시 한전은 적자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적자 원인은 조금 더 다양한 이유가 있다. 발전용 유연탄 가격의 상승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석탄발전소 비중이 높은 국내 상황에서 발전용 유연탄 가격 상승은 치명적인 문제다. 

세계적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줄어들면서 발전용 유연탄 생산업자들이 줄어들고 자연스럽게 가격이 오르고 있다. 비싼 유연탄으로 생산된 비싼 전기를 발전5개사(남동, 남부, 동서, 서부, 중부)로 구매한 한전이지만 소비자들에게는 인상된 발전용 유연탄 가격과 연동해서 전기요금을 청구하지 못했다.

한전이 최근 적자를 본 또다른 이유는 재생에너지 정책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재생에너지 의무화제도는 한전의 전기 구매비용을 높였다. 

최근 화제인 전기차에 대한 견해는? 

전기차가 최근 산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아직도 전기차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유지되는 시장이기에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불안정한 시장인 것도 사실이다.

휘발유와 경유, LPG 등 현재 수송용 에너지인 각종 석유제품에 부과되는 막대한 세금에는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을 야기한다는 징벌적 성격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현재 국내에 유통되는 전기차는 사실 1차 에너지원을 따지면 석탄차거나 원전차다. 결과적으로 교통혼잡과 환경오염이라는 측면에서 세금 부과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와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세금이 부과되야 하는데 전기차에 석유제품과 같은 세금이 부과될 경우, 지금처럼 산업계가 전기차에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전기화를 환영하는 목소리에 대한 생각은?

전기화를 찬성하는 사람은 두 부류가 있다. 한 부류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의 환경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전기를 재생에너지로만 생산한다면 전기화가 나쁘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재생에너지로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 현재 상황에서는 현실가능성이 높지 않기에 약간 비현실적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부류는 원전주의자로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전기화의 비효율성과 무관하다는 주장이다. 원자력발전소가 정권이 교체된다고 해서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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