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리스크에 따른 자원 수급 방안 모색
공기업 주도 해외자원개발 필요성 부각

[에너지신문] 올해 초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고조되며 원유 수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국내 정유·화학업계가 긴장 속에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중동지역의 충돌위기 속에서 국제유가가 일제히 상승하며 국내 산업계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전문가들은 이 갈등을 통해 당장 국내 원유 수급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견해를 내비쳤고, 실제 큰 동요없이 사태는 수습됐다.

문제는 ‘중동발 불안’이 여전히 꺼지지 않는 불씨라는 점, 그리고 세계 해상원유수송량의 3분의 1은 호르무즈해협을 거친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70.3%에 달하며 이 물량의 대부분인 97%가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한다. 때문에 만약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거나 전면적인 군사 작전이 발생한다면, 국내 정유사들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

▲ 석유공사와 GS에너지는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UAE 탐사광구 개발에 성공,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사진은 할리바 광구 전경.
▲ 석유공사와 GS에너지는 우리나라 기업 최초로 UAE 탐사광구 개발에 성공, 본격적인 상업생산에 들어갔다. 사진은 할리바 광구 전경.

실제, 산업통상자원부도 중동 지역에 전운이 감돌면서 정유사들과 가스공사 등이 참여한 긴급회의를 열고 석유·가스 수급과 가격동향을 점검하고, 석유 수급 위기가 발생하면 2억배럴 규모의 비축유를 방출하는 등 비상 대응 방안 등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처럼 중동발 분쟁 등 국제 정세의 상황 변화에 따라 국제 석유·가스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할 해외자원개발사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9월, 석유공사 할리바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가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실효성이 있음을 입증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이 원유는 호르무즈 해협 외곽에 위치한 푸자이라 항구를 통해 수출되기 때문에 美-이란 간 갈등고조에 따라 해협이 봉쇄되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생산 원유의 국내 도입이 가능해 에너지 안보의 전략적 의미가 크다. 

▶ 왜 해외자원개발이 어려울까?

최근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부각되고 있지만, 선뜻 누구도 앞장서 해외자원개발에 나서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자원가격이 폭락했다. 2010년 초반, 최고점을 기록한 자원 가격은 △생산 능력 증대 △중국 등 신흥국가의 경제 둔화에 따른 수요 감소 △미국의 셰일 혁명(석유)에 따른 과잉 공급 등의 요인으로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2014년 상반기 배럴당 100달러를 상회하던 원유가격은 이후 계속해서 급락하면서 2016년 초에는 배럴당 20달러대 1/4 수준까지 추락했고 지금은 배럴당 6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광물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광물은 2010년대 초반부터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100달러를 상회하던 유연탄은 60달러대로, 2011년 180달러까지 올랐던 철광석도 2016년 60달러선까지 급락했다. 니켈 역시 2만 5000달러에서 2016년 1만달러까지 추락했다.

자원가격이 폭락하자 해외자원개발 기업의 채산성 급격히 악화된 점도 원인 중 하나다. 물론 자원개발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자원가격이 낮은 시기에 외환위기까지 겪으며 구조조정을 위해 자원 관련 자산을 매각했고, 외환위기 이후 자원가격 상승기인 2005년 이후 자원 확보에 뛰어들어 2010년대 초·중반의 자원하락의 여파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때문이다. 공기업의 채산성 악화와 일부 부실사업(Harvest사, 볼레오 동광)으로 해외자원개발 실패로 시민들의 인식이 사늘하게 식었다. 과거 해외자원개발은 자원빈국인 우리나라가 자원확보를 위한 개척 정신과 오지에서 고생하는 역군 등 희망의 상징이었지만, 최근에는 혈세 낭비, 배임, 적폐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 얼룩졌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해외자원개발 사업의 축소로 이어졌다. 공기업의 경우 추진했던 사업의 부실로 신규 사업이 중단됐으며, 민간기업도 채산성 악화, 인식 악화, 지원 정책 축소 등에 따라 신규 사업 참여를 축소하거나 기존 사업을 매각, 해외자원개발 사업 수는 계속해서 줄어들었고, 관련 부서 구조조정 및 인력 감축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원개발 공기업의 신규 사업 추진 중단으로 민간 기업의 사업 발굴 기회마저 상실했다는 점이다. 

소규모 사업을 추진하는 민간기업은 통상 공기업과의 동반진출(지분 참여)을 통해 해외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데, 이 길마저 막힌 것이다. 이에 더해 투자를 이끌어내는 마중물 역할을 하던 금융지원, 조세제도 등 지원 정책도 축소돼 해외자원개발사업 투자 의사 결정을 이끌어 내는 설득력도 약화됐다.

결국, 수익성  악화와 이미지 추락, 공기업의 신규 사업 중단, 지원제도 축소라는 다수의 부정적 요인이 복합 작용하며 해외자원개발업계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 

▲ 핵심광물자원 확보는 전 세계적 과제로 떠올랐다. 사진은 볼레오 광산 전경.
▲ 핵심광물자원 확보는 전 세계적 과제로 떠올랐다. 사진은 볼레오 광산 전경.

▶해외자원개발, 공기업이 리드해야

해외자원개발은 △ 많은 초기 투자금 소요 △ 높은 사업 실패 확률 △ 외국기업에 대한 높은 진입 장벽 등의 특성이 있다. 때문에 국내 자원개발 현장이 없고 해외자원개발 후발주자인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민간만으로는 사업을 추진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즉, 해외자원개발을 위해서는 공기업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동안 자원개발 공기업은 민간기업 만으로는 진입이 어려운 국가(UAE) 또는 위험 지역(이라크, 리비아) 등에 진출해 자원 확보의 첨병 역할을 했고, 사업을 발굴할 경우 민간기업과 동반 진출해 민간의 자원개발 투자의 마중물 역할을 담당했다. 여기에 인력양성, 기술개발 등 자원개발 업계의 생태계 조성에도 주도적이었다.

하지만 현재 자원개발 공기업이 발이 꽁꽁 묶여 있다. 2015년 이후 발생한 자원개발 공기업의 부실로 구조조정 국면이 장기화함에 따라 공기업의 신규 사업 투자가 중단됐고, △자원 확보 △민간기업 투자 유인 △자원개발 생태계 활성화 등 자원개발 분야에 필수적인 공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자원 선진국들도 초기에는 공기업의 역할을 통해 자원개발 기업, 기술 등 생태계를 육성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정부 지원과 기술력을 통해 1960년대부터 공기업으로 성장, 해외자원개발 사업에 진출했고, 2000년대 민영화됐지만 정부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적 역할도 병행하고 있다. 유럽 역시 빈약한 석유자원 탓에 국영기업으로 출발해 해외 진출한 후 민영화로 전환했다.

우리나라는 보유자원이 없고 후발주자로 경쟁력도 낮아 자원개발 산업 입장에서는 자원 안보를 위해서는 공적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해외자원개발 투자를 주도해야 할 국내 대기업들도 글로벌 자원개발 기업에 비교하면 중소기업 수준에 불과해 공기업 주도의 성장이 반드시 필요하다. 

▶꾸준하고 일관적인 정책 지원 필요

앞으로 기후변화와 재생에너지 확대 등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전통 에너지·자원 수요는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대부분의 에너지·자원을 수입하는 우리나라로써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꾸준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산업기반을 다지는 단계에서는 투자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기업들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꾸준하고 일관적인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해외자원개발에 대한 지원을 축소해왔다. 정부는 해외자원개발을 위해 △공기업 출자 △해외자원개발 융자 △해외자원개발 조사 △조세 지원 제도 등의 정책 수단을 통해 업계를 지원하고 있지만 2010년대 들어서면서 관련 지원 정책과 예산을 계속해 줄이고 있다.

특히 해외자원개발 융자의 경우 2016년 융자 예산 폐지 후 ‘해외자원개발 특별융자’로 제도가 개편된 후 지원 조건이 크게 축소됐다. 조세지원제도도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일몰, 2019년 12월부로 모두 사라졌다.

때문에 과거 정부에서 적극 추진하던 해외자원개발 정책을 반면교사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외환위기 이후 위축된 해외자원개발 재개의 모멘텀을 마련했으며, 제1차 해외자원개발 기본계획을 수립, 안정적인 해외자원개발 추진 정책 기틀을 세웠다. 노무현 정부 때는 △공기업 대형화 정책 △종합적인 지원체계 구축 △인력양성 정책 등 해외자원개발 확대를 위한 정책을 수립하기도 했다.

현재와 같은 저유가 시기는 상대적으로 저가에 자산을 확보·개발해 고유가 시 수익을 거두는 투자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 기회라는 점에서 보다 적극적인 해외자원개발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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