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2019년 6월 정부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를 확정하면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소규모 태양광용 ESS로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또한 같은 달,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제주도, 경상북도, 현대자동차는 제주테크노파크에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자원 순환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면서 국내 1호 사용후 배터리 성능평가 기관인 ‘제주도 배터리 산업화 센터’를 열었다.

제주도 배터리 산업화 센터는 앞으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잔존 가치 및 성능 평가, 차종별 사용후 배터리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재사용 배터리 활용 연구 및 실증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이처럼 최근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경제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배경에는 전기차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에 따른 부차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전기차 시장이 성장하면 부차적으로 전기차에 장착돼 활용됐다가 배출되는 배터리 규모도 커지게 되는데, 2022년까지 최소 1000대에서 최대 9000대 이상으로 전망되며, 향후 전기차 확산 속도가 가속화되면 배출규모도 따라서 급증하게 된다.

그래서 사전적으로 이를 소화할 수 있도록 전기차에 특화된 폐차 시스템과 함께 배출된 배터리를 다시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그리고 이를 관리·운영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예방적으로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전기차에서 한 차례 사용된 후 분리 배출된 배터리를 지칭하는 용어부터 정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주로 배터리를 못 쓰게 되거나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에서 ‘폐(廢)배터리’로 지칭해 왔고, 처리 역시 기존 폐기물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새로운 유형의 폐기물 관리라는 차원으로 접근해 왔다.

▲ BMW 제주 e-고팡 충전소 컨테이너 내부.
▲ BMW 제주 e-고팡 충전소 컨테이너 내부.

전기차에 한번 쓰이고 난 이후 배출, (반납)수거된 배터리는 잔존수명이나 배터리 건강상태(SoH: State of Health) 등에 따라 원래 목적이었던 전기차용 배터리로 재사용(Reuse)되거나, 심지어 다른 목적으로 재차 사용, 즉 이차사용(Second use)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폐기나 재활용만을 처분 수단으로 상정한 용어인 ‘폐배터리’보다는 전기차에서 한 번 쓰고 난 이후의 배터리, 즉 ‘사용후 배터리’라는 용어가 보다 적합해 보인다.

네이버 뉴스 검색 결과를 기준으로 언론에서도 ‘전기차 폐배터리’라는 용어를 활용하는 빈도는 2018년은 364건, 2019년은 850건 정도인데 반해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 용어 활용 빈도는 2018년에는 전무했으며, 2019년 116건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논어’의 격언에는 ‘이름(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하는 일이 이뤄지지 않는다(名不正則言不順 言不順則事不成)’라는 말처럼 정책 마련에 앞서 정확한 용어 사용이 중요함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와 함께 전기차 배터리의 재사용 내지 이차사용의 환경적 가치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기차에 주로 활용되는 리튬이온 전지는 생산공정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납축전지보다 약 9배 많으며 광화학스모그, 오존층, 산성비, 부영양화 영향도 등은 약 5배에서 심지어 10배 정도 높다.

이는 주로 대기환경오염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리튬이온 전지 생산이 납축전지에 비해 대기환경에 보다 높은 환경부하를 야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전기차 배터리를 재사용 또는 이차사용하게 되면 새로운 리튬이온 전지 생산을 대체함으로써 추가적으로 신규 전지를 생산하지 않아도 되며, 이를 통해 리튬이온 전지의 용량 1kWh당 온실가스(CO2 eq.) 배출량을 약 48.8kg이상 저감할 수 있다.

결국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온실가스 저감 차원에서도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재사용 또는 이차사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 수 있다. 이를 감안한다면, 정부에서 환경문제 해결 차원에서라도 이러한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의 재사용·이차사용을 장려할 필요가 있다.

한편 해외에서 이뤄지고 있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재사용 또는 이차사용하는 비즈니스는 주로 전기차를 제조, 판매하는 자동차 제작사가 자사 전기차를 판매한 이후 배터리를 회수, 교환하거나 리스하는 서비스 등과 연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관련 사업에서 일차 사용된 배터리를 대규모로 확보할 수 있는 국제적인 메이저 자동차 제조사가 중심에 있으며, 배터리 회수의 주체도 자연스럽게 자동차 제조사가 되는 경우가 보통이다. 

반면 국내에서는 구매보조금을 전기차를 지급받아 구입한 경우,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전기차 소유자가 해당 차량 폐기 또는 수출로 인해 자동차 등록 을 말소할 경우, 관할 주소지의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배터리를 반납하도록 의무화돼 있다.

▲ 르노삼성차 SM3 Z.E. 전기차 택시 배터리 교체하고 있다
▲ 르노삼성차 SM3 Z.E. 전기차 택시 배터리 교체하고 있다

다시 말해 보조금을 지급한 지자체가 사실상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보조금 형식으로 선구매해 회수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구매보조금을 받지 않은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는 회수 의무 책임자 자체가 불명확하다.

이로 인해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활용한 산업화를 지원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에 대해서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도입할 필요가 있다.

다만, EPR상의 재활용 책임을 부과할 주체로 자동차 제조(수입)사로만 한정할지, 범위를 확대하여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까지도 포함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해 보이며, 지차체에게 회수의무를 부여하는 현행 방식과 연계 내지 전환에 대한 심도 있는 검토도 요구된다.

이에 덧붙여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를 재사용 또는 이차사용하는 비즈니스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사용내지 이차사용 배터리의 충분한 수요 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공공부문부터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의 수요를 창출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에서 사용 중인 무정전 전원장치(UPS)나 재생에너지 연계 배터리 ESS 등에는 사용후 배터리의 사용을 일정정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만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2019년 8월 개소한 제주 ‘e-고팡’ 전기차 충전소처럼 재생에너지 연계 배터리 ESS를 활용한 전기차 충전소는 전기차 사용후 배터리의 주요한 활용처가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이러한 충전소 보급 확대를 지원하는 방안 마련을 검토하자.  

저작권자 © 에너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