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대섭 전력거래소 전력계획처장

지난 9월 유례없는 긴급 부하조정으로 인해 온국민이 한바탕 혼란을 겪은 바 있다. 이는 예상치 못한 늦더위로 전력수요가 급증하고 발전력이 부족하게 되면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최근의 전력소비 급증 추세를 볼 때 전력수급 불안은 비단 이번 겨울 뿐 아니라 중단기간까지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발전소 건설공기상 1∼2년 내 발전력 확충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에서 강구할 수 있는 수단은 강력한 수요관리를 통한 소비절감 밖에 없으며, 전력수급 비상상황에서 소비절감을 통한 위기 극복 사례는 가까운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은 금년 3월 동일본 대지진 발생 직후 진앙지 주변에서 운전 중이던 원전 10기 및 다수의 수화력 발전소가 정지되면서 공급력 부족이 발생함에 따라 동경지역 관내 순환정전을 통해 전력부족을 해소하였다.

이 후 일부 발전소 긴급 복구 등 추가 공급력 확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대 전력이 발생하는 하계기간 중 약 10.3%의 공급력 부족이 예상됨에 따라 강력한 수요관리에 초점을 맞춘 하계 수급대책을 시행하였다.

우선, 공급력이 부족한 동경전력 및 동북전력 관내지역에 대해 전년도 최대수요 대비 15% 절감목표를 부여하였다. 이를 위해 500kW 이상 대규모 수용가에 대해서는 전년도 7∼9월 평일 오전 9시∼오후 8시의 최대전력 대비 15% 수요를 삭감하고 미이행시 페널티를 부과하는 전기사용제한령(전기사업법 제27조)을 발효하였다.

그 외 소규모 수용가와 가정용 수용가에 대해서는 냉방온도 상향, 고효율에너지 기기 대체, 승강기 가동중지, 대기전력 차단 등과 같은 자발적 감축 프로그램을 통해 수요절감을 유도하였다. 또한 사업자를 대상으로 자발적인 근로시간조정 및 순번제 휴무 실시 등을 시행하였다.

이처럼 다양하고 실질적인 수요관리 프로그램 추진을 통해 일본은 하계수요를 전년 동기 대비 약 21% 감소시킴으로써 별도의 순환정전 없이 하계수급 안정을 도모하였다.

지난 7월1일부터 9월2일까지 두달간 실시한 전력사용제한령에 동참한 업체는 637개에 달한다. 일반 가정의 경우 자발적 참여가 두드러졌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과정에서 동경전력 및 일본 정부에 대해 실망스런 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금번 하계 수급비상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그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도 향후 예상되는 수급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수요관리 자원을 대폭 확대함을 물론, 일본처럼 비상시 작동할 수 있는 보다 실질적인 수요관리 프로그램 마련이 필요하다.
자발적인 수요감축 유도를 위해 현재의 전력 위기상황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국민들이 충분히 인지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편 전력사용제한령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일본은 제1차 석유위기가 발생한 1974년 전력사용제한령을 발동, 화력발전소 연료를 절약하기 위해 전력사용을 약 15% 제한한 바 있다. 현재 일본은 수급비상시 강제로 전기서용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규제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급비상(400만kW 이하)시 시장운영규칙(지경부 승인) 및 국가위기관리지침(행안부 훈령)에 따라 부하차단 등의 긴급조치를 시행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본처럼 강력한 법적근거에 의해 전기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제도는 미흡한 상황이다.
참고로 1999년 이전까지는 우리나라도 과거 전기사업법에 전기사용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전기사업법 제21조)가 존재했으나 규제완화 조치 차원에서 삭제됐다.

당시 법조항을 살펴보면 “상공부장관은 전기의 공급부족으로 비상상황 발생시 필요한 한도내에서 사용전력량의 한도, 사용최대전력의 한도..,(중략) 전기의 사용을 제한하거나 수전전력의 용량한도를 정해 일반전기사업자로부터의 수전제한이 가능하다”이다.

따라서 전기사업법에 존재했던 소비자 대상 수요조절 명령을 할 수 있는 법적제도를 조속히 마련함으로써 비상 대응체계를 구축함은 물론, 근본적으로는 전력요금의 현실화를 통해 가격에 의해 수요가 반응하는 수요관리 메카니즘 구축이 시급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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