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 ⑬전력정책의 과제
[연재기고]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 ⑬전력정책의 과제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8.1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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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경제발전과 국가안보에는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전력 Infra-Structure 확충이 필수이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민간 3사 통합, 1980년대 전두환 정부의 민간 통합회사 공사화, 1990년대 김대중 정부의 한국전력공사 분할 및 민영화 등은 모두 그런 이유에서 추진됐으며, 지금도 세계 모든 나라가 각기 나름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시도하거나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력회사는 1898년 1월에 설립된 한성전기회사였다. 1945년 해방 전후 한반도의 최대 발전소는 1943년 11월 일제가 압록강 하구에 건설한 70만kW급 수풍수력발전소였고, 나머지는 모두 영세한 규모였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이 전력공급을 중단하자, 남한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당시 한반도 전체의 발전용량은 172.2만kW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88.5%가 북한지역에 있었고, 남한 전력수요의 60%를 북한에서 보내주는 전기로 충당하던 중에 발생한 사건이었다.

1961년 5월 군사정부는 종전 민간 3사(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 형태로 유지돼 오던 전력산업을 한국전력주식회사 1사로 통합했다. 경제개발이 국가 최대 과제였던 당시에 자본력이 영세한 기존 전력회사들로서는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1964년부터는 전력 사정이 호전돼 국책사업이나 공공기관 등에만 제한 공급되던 전기가 국민 일반에 골고루 공급되기 시작했고, 그 추세를 이어 1978년 4월에 한국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가 준공됐다.

1982년 1월 전두환 정부는 한전이 더 이상 급증하는 전력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발전소 건설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국전력공사법’을 제정, 정부가 한전의 민간보유 주식 전부를 매입, 공사화했다. 이를 통해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막대한 재정투융자와 외자도입으로 현존하는 거의 모든 발전소를 건설했다. 특히 원자력발전소는 대부분 이 시기에 건설됐다.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 입안됐다가 1999년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본격화됐다. 여러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당시 IMF 외환위기 직후 한전의 외채규모가 나라 전체 외채의 약 10%에 달하는 등 재정 부담이 컸기 때문인데, 당시 미국·유럽 등에서 유행한 신자유주의 바람과도 무관하지 않았다.

2001년 초부터 실시된 구조개편 작업으로 발전부문은 한전에서 분사, 한국수력원자력과 5개의 발전자회사(화력발전)로 분리됐지만, 노무현 정부에 들어 와서 계획 중단으로 민영화까지는 가지 못하고, 모두 한전 자회사 형태로 남아있게 됐다. 그야말로 ‘미완성 교향곡’이 된 셈이다.

현재 한국의 전력시장을 보면 발전 부문은 다사 체제이나, 배전·판매 부문의 경우 1사 체제로 ‘수요독점(monopsony)’ 형태를 띠고 있다. 당초 완전 경쟁시장을 목표로 시작된 작업이 중단되면서 ‘불완전 경쟁시장’이 되고 만 것이다.

비록 한국의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노조의 저항으로 중단돼 당초의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발전부문의 경쟁에 기인한 효과는 발전소 효율성 향상, 기저발전기 이용률 증가에 따른 연료비 및 투자비 절감, 발전소 보수기간 단축, 주파수 및 계통전압 유지율 향상, 고장건수 감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진행한 국가들 중 가격변동 등으로 한때 계획을 수정한 사례는 있지만, 이전의 수직 독점체제로 회귀한 사례는 없다. 최근 에너지분야의 산업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지능형 전력망(Smart Grid)’이 출현했는데, 전력의 수요와 공급에 활발한 상호작용이 예상되며 그 진전은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촉진할 것이다. 또한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도 민간기업의 활발한 참여가 필수이므로 장차 ‘제2기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촉진할 동인이 될 소지가 없지 않다.

전력시장의 개방이 확대되면 망산업(Grid-Industry) 간의 결합서비스, 예컨대 통신과 전력이 결합된 부가가치 서비스의 출현도 가능하게 될 것이다.

한편 제1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02년)부터 제8차 기본계획(2017년)까지의 장기 전력수요 전망에 의하면 목표연도의 수요전망치는 매번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일부 논자는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구조가 선진국형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력수요성장율과 경제성장률은 거의 같은 방향과 폭으로 증감하는 경향이 있으며, 선진국들의 두 가지 변수는 모두 ‘성장의 늪’ 또는 ‘포화상태(Saturation)’도달을 의미한다.

우리 경제의 고도 성장기(1960~1980년대)에는 급격히 증가하는 전력수요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와 업계가 구조개편, 기술개발 및 축적, 전력분야 생태계 구축 등 제반 노력으로 전력분야 세계 10위 국가로 성장했지만, 이제부터는 저성장시대에 접어든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이제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시침(時針)은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시장을 지나 동남아와 중국은 물론,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지역의 신규발전소 건설사업과 일손이 부족한 서구 선진국들의 기존 발전소 보수·운영사업에도 진출할 수 있는 기반구축에 활발하게 나서야 할 시점(時點)을 가리키고 있다.

이 땅 전력사업 121년,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차를 달리게 하고 가로등을 밝힌 한성전기회사. 기술과 자본의 한계로 1904년 미국인 사업가에게로, 1909년에는 일제에게로 넘어갔지만 그 초석은 광무시대 근대화의 꿈과 민족자본이었고,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오늘의 한전에 그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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