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야누스(Janus)는 성문과 가정의 문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앞뒤가 서로 다른 두 얼굴을 가졌다. 본래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神)이었는데, 다른 두 얼굴이 부각되면서 이중인격자를 가리키는 비유로 더 널리 쓰이고 있다.

1945년 3월과 4월에 이오지마와 오키나와에서 최후의 1인까지 항전하겠다며 백병전과 자폭을 시도하던 일본의 제국 이데올로기에 질린 미국은 무모한 인명피해를 줄이려고 마침내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에 우라늄 원자폭탄을, 8월 9일에는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말 그대로 경천동지의 위력에 경악한 일제는 옥쇄 의지를 단번에 포기하고,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했다. 이 2개의 원자폭탄은 인류가 그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폭탄 아닌 폭탄이었다.

이후 일본은 ‘핵무기를 만들지 않으며, 갖지도 않고, 들여오지도 않겠다’는 비핵(非核) 3원칙을 수용했으나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등은 연이어 핵무기를 개발했으며 미국과 소련은 1954년과 1961년에 원자폭탄보다 위력이 수십 배 더 강력한 수소폭탄을 개발했다.

핵의 성격은 1953년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UN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Atoms for Peace)’을 제안하면서 전환기를 맞았다. 이 연설을 계기로 1956년에 국제 원자력기구(IAEA)가 설치됐고, 인류의 이용후생에 적극 기여하는 원자력의 원자로시대가 열렸다.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1942년 이탈리아의 Enrico Fermi가 만들었다. 1954년 소련의 로브닌스크원전과 1956년 영국의 콜터홀원전이 상업용 원자로를 장착한 제1세대 원전이다. 1959년에 미국도 가압경수로형 시핑포트 원전을 건설해 상업발전을 시작했다.

이후 경제성과 안전성에 대한 요구가 점차 높아지면서 1970년대부터 비등경수로, 가압중수로 등 2세대 원전이 등장했고, 1990년대에 경제성과 안전성을 더욱 강화한 3세대 원전이 등장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는 지속성, 안전성, 경제성, 핵 비확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4세대 원전을 개발 중에 있다.

한편 원전 관련 재앙이 연이어 발생하자 인류는 우려와 회의를 불식하지 못 하고 있다. 주지하듯 1979년 스리마일, 1986년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원전의 원자로에서 사고가 발생하자 세계 각국은 원전정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2017년 한국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발표하고, 동년 7월 24일부터 10월 20일까지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계속할 것인지 여부를 묻는 공론화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치열한 논쟁과 표결을 거쳐 조사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을 재개하되 탈원전 정책은 지속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원자로(Nuclear Reactor)는 핵분열을 유지하고 제어하면서, 핵분열에서 발생하는 열과 연구·개발에 활용할 중성자와 방사선 같은 기본 입자를 만드는 장치다. 대부분 전기에너지 생산에 사용되고 있으며, 병원에서 암 치료나 건설·기계 분야에서 비파괴 검사용으로도 쓰이고, 선박의 동력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핵분열을 일으키는 순도 2~4%의 핵연료를 사용하며, 핵분열의 제어에 필요한 감속재, 제어봉, 냉각재 등을 동반한다.

반면 원자폭탄(Atomic Bomb)은 핵분열 연쇄반응을 통제하지 않고 오히려 급격한 연쇄반응을 촉진, 일시에 최대한의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게 만든 전쟁용 무기이며 순도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사용한다.

원자폭탄은 우라늄-235, 플루토늄-239 등 무거운 원자를 사용하며 1kg의 우라늄-235는 핵분열 시 2×10¹³cal의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는 고성능 폭탄 2만톤이나 석탄 300만톤의 에너지와 대등한 수준이다. 원자폭탄의 효과는 고열, 방사선, 폭풍에 의한 충격 3가지이며, 전자파를 포함하기도 한다.

헝가리 태생 유태인 생명과학자 아서 캐스틀러(Authur Koestler)는 그의 명저 ‘야누스(Janus)’에서 지난 2세기 동안 과학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찰했는데, “생명을 규정하는 본질적 특징을 미래지향적으로 해명하려면 야누스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야누스적 접근은 비유하자면, 암 환자와 암과의 관계를 들 수 있다. 암 환자는 암의 공포를 인정해야 하지만 그 공포에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인간의 무한한 창의력에 기대를 걸면서 암을 데리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우리는 원자력 문제에 관련시켜 미국 동부 펜실베니아주 아미쉬(Amish)마을의 삶을 상기해볼 수 있다.

300년 전 독일에서 재세례파 교인들이 이곳으로 이주 정착했는데, 이들은 자신들만의 엄격한 규율을 지키고, 옛 모습 그대로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자동차를 안 타며 우마차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여성들은 머리를 자르지 않고, 남성들을 턱수염을 자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문명의 상징인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산다.

비록 원자력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여전하지만, ‘원자력은 악마인가? 천사인가?’와 같은 이항대립적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어떨까? 새삼스럽지만 원자력도 인공지능처럼 인류의 삶과 과학기술의 문제이며, 결국 아서 캐스틀러의 ‘야누스적 접근’과 같은 접근이 요구되지 않을까 싶다.

위험한 자동차와 비행기를 타고도 낙관일변도로 살 수도 있고, 해악을 초래할 수도 있는 문명의 이기를 배제하며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사안일로 살기도 어렵고 아마쉬 공동체처럼 살기에는 호오와 시비를 떠나 너무 멀리 와 있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우리는 인간의 진보와 창조성을 믿는 동시에 병리현상까지도 품에 안고 ‘긴장된 이중적 삶’을 계속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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