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⑩셰일혁명과 에너지권력의 재편
[연재기고]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⑩셰일혁명과 에너지권력의 재편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 환경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7.0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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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1998년에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죠지 미쳴(George P.Mitchell)은 무려 집념 50년 만에 세계 최초로 심지하 2~4km의 셰일 층에서 가스를 뽑아 올려 상업생산에 성공했다.

이는 ‘혁명’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성공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 정도로 보였지만, 결국 태풍이었다. 지난 수세기 동안 열강이 피로 그린 ‘에너지 권력지도’를 어느 날 한 사나이의 집념이 바꿔 놓았다. 세계사에서 창의와 기술혁신이 이데올로기를 넘어선 또 하나의 사례이다.

세계 에너지시장에서 우군이자 최강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석유 감산을 둘러싼 치킨게임까지 치르고도 미국 셰일업계는 살아남았다. 미국의 셰일산업은 두 개의 강을 건넌 ‘혁명아’다.

중동지역의 전통 석유와 미국의 셰일석유 개발에 사용되는 기술에는 다른 점이 많다. 전자는 투과성이 높은 암석층이 압력을 받으면서 여러 암석에서 석유가 흘러나와 대량으로 고인 기반암까지 수직시추하고 압력을 걸어 장기간 추출하지만, 후자는 소량의 석유가 갇혀 있는 암석 내부의 작은 광혈까지 수직시추하고 다시 수평시추와 수압파쇄를 해 공간을 넓힌 후 단기간에 추출한다. 즉 전통석유는 덮개암을 잘 찾아 뚫기만 하면 되나, 셰일석유는 수평시추 공법으로 지질의 성격이 다른 여러 암석층 사이를 파고들어 석유가 고여 있는 작은 광혈들에 접근해야 하며, 단단한 광혈에 도달하면 수압파쇄 공법을 사용해야 한다.

수압파쇄 공법은 모래가 섞인 수백만 갤런의 물을 유정 갱도에 주입하고 강력한 펌프로 수평 갱도의 가장 안쪽 끝까지 일단 밀어 넣는 기술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세상의 셰일유정은 시추 여건이 천태만상이다. 수직시추의 접촉면은 수십 피트이며, 수평시추의 접촉면은 보통 2마일이 넘는다. 초(超)고난도의 이 공법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의 셰일산업은 그렇게 우호 자본과 기술의 지원으로 난관을 극복했지만 호황을 누린 것도 잠시 뿐, 2014년 6월부터 존망의 기로에 서게 됐다. 국제유가가 배럴 당 연중 최고치인 114달러를 찍다가 11월 28일 OPEC정상회담 무렵에 70달러로 폭락한 것이다.

OPEC회의에서 최대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전 세계의 예상과는 달리 감산불가를 선언했다. 당시 아랍 국가들의 평균 전주기비용(full-cycle cost)은 배럴당 30달러, 사우디아라비아는 25달러, 미국셰일은 75달러, 모두가 미국 셰일산업의 와해를 점쳤다.

그러나 예측은 빗나갔다. 비록 미국의 절반 이상의 한계기업들이 퇴출됐지만, 그 후에도 생산량은 안정적이었다. ‘가격이 폭락하면 효율을 높여야 한다’는 응전원리에 따라 미국 셰일업계는 이윤삭감, M&A, 기술혁신 등을 거듭했으며 이제는 유가 40달러 이하인 상황에도 적응한 것으로 보인다.

20세기에도 세계의 에너지권력은 부침을 거듭했다. 20세기 초반 1,2차 세계대전 당시 패권국가는 18~19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이었다. 영국은 일찍부터 석유의 중요성을 알았고, 필요한 행동을 적시에 할 줄도 알았다.

1,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에는 적국인 독일의 산유국 진출을 막았고, 심지어는 동맹국인 프랑스마저도 적절히 견제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한동안 ‘영국에 의한 평화(Pax Britanica)’가 유지됐다.

그러나 2차 대전 후 영국은 산업시설 파괴, 채무 증가, 식민지 반란 등으로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 질서 유지가 어렵게 되자 미국을 앞세운 전후질서(브레튼 우즈체제)의 구축에 나섰다. 그러다 동서냉전기에 국력의 한계를 느끼고 1971년 마침내 수에즈 동쪽의 자국 군대를 모두 철수시켰다. 이때부터 한동안 ‘미국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가 유지됐다.

1970년대까지는 영·미계 메이저 석유회사들이 세계 에너지시장을 주도했으나 1960년 결성 당시에는 큰 힘을 쓰지 못하던 OPEC이 1970년대 1,2차 세계 석유파동기에는 아랍국가들의 결속 덕분에 ‘OPEC의 시대’를 구가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 약 20년간 저유가시대가 지속됐다. 소비국들의 부단한 노력으로 에너지 소비절약, 에너지 이용효율화, 대체에너지 개발이 이뤄졌고, 생산국들과 소비국들은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시장균형’을 이루었다. 이 시기의 세계 에너지시장은 OPEC, 러시아, OECD, 메이저가 공존하는 ‘Multi-Polar’ 시대였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세계 에너지시장은 또다시 요동친다. BRIC’s의 고도성장(수요폭증), 미국 발 세계금융위기(수요폭락), 북아프리카와 아랍 산유국들의 연쇄민주화(공급위축) 등으로 국제유가는 광폭의 등락을 거듭했다.

더불어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로 세계 에너지시장의 권력지도는 또다시 재편되기 시작했다. 한동안 석유·가스 수입국이던 미국이 국내 셰일가스의 생산량을 서서히 늘려 2017년부터는 자급자족을 넘어 새로운 공급자로 등장했고, 수입국들은 수출국 및 수출량 증가 덕분에 선택지가 늘어나는 반사 이익을 누리게 됐다.

미국은 2018년 초 세계 1,2위이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최대산유국으로 올라섰고(BP, 2018세계에너지보고서), IEA는 2021년부터 미국이 순수출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시리아, 이란 등에서 보여준 태도로 보아 더 이상 세계 에너지질서를 유지해야 할 동기나 목표를 상실한 듯하다. 장차 어떤 상황이 되면 미국이 국제무대에서 빠져 나갈 지도 모르며, 세계의 에너지질서는 각자도생의 정글 양상으로 전개될 개연성이 있다.

그렇다면 자원빈국에다 기존질서에 의존해온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배한삼두의 심정으로 심사숙고를 거듭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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