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거안사위’, 평안할 때일수록 가까운 미래에 위험과 곤란이 닥칠 것을 생각하며 미리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말로 ‘춘추좌씨전’에 나온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나 ‘잘 나갈 때 몸조심하자’는 말과도 같은 뜻이다.

1987년 2월, 한국가스공사 평택인수기지와 수도권 주배관망 준공을 계기로 우리나라에 인도네시아산 LNG가 도입됐는데, 그때까지 LPG를 원료로 하던 수도권 도시가스 7사와 서울특별시가 LNG 수령을 강력히 거부해 주무부처를 난처하게 했고, 설상가상으로 감사원이 특별 감사까지 실시했다. 경제성이 유리한 LPG를 놔두고 왜 값비싼 LNG를 들여와서 물의를 빚느냐는 힐책을 동반한 책임추궁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오늘날, LNG의 위상은 매우 높다. 에너지원 다원화정책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석탄과 원자력 사용을 억제하는 ‘에너지전환’ 정책의 대안 중 하나로 거듭 조명을 받을 뿐만 아니라 과거 공기업 구조개편 때마다 거론되던 가스공사의 분할·민영화론은 자취를 감췄다.

동아시아의 한·중·일 세 나라가 1960년대부터 20~30년마다 번갈아 올림픽을 유치, 일본은 1964년 도쿄, 한국은 1988년 서울, 중국은 2008년 북경에서 개최했다.

유치경쟁 초기부터 세 나라의 대기오염 문제가 부각됐고, 기록에 끼칠 부정적 영향도 우려한 선진국 육상선수들이 세 나라의 유치를 꺼렸다. 1994년 한중수교 직후 북경을 방문했던 사람들에게 숨쉬기를 부담스럽게 했던 북경의 매연과 석탄사용에 기인한 독특한 악취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도쿄나 서울도 올림픽 개최 전에는 오십보백보였는데, 세 나라가 LNG를 도입해 올림픽을 무사히 치러 국가의 체면을 간신히 유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용기식 LPG를 사용하다 올림픽을 전후해 배관식 LNG로 전환했다. 초기 LNG사업은 경제성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시작됐으나, 그후 규모의 경제까지 갖춰 이제는 그 자체로서 존재가치가 분명한 연료가 된 것이다. LNG는 에너지정책을 거시적 안목으로 봐야 하는 사례로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LNG 도입 초기에 정부는 수도권 도시가스 7사가 참여하는 ‘콘소시엄 방안’과 ‘공기업 신설’ 방안을 검토한 바 있는데,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막대한 초기 투자비가 들어가는 이 사업에 국내 도시가스회사들이 자체 신용만으로는 투자비를 조달할 수 없어 어차피 정부의 지원이 필요했고, 수출국과의 협상에서도 단일창구가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도 수도권지역에 도시가스용 LNG를 첫 보급할 때 정부는 기존 도시가스 업계의 격심한 저항에 부닥쳐야 했다.

최근 세계 LNG시장의 여건은 다시 괄목할 만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일가스 등 공급의 확대로 시장의 유연성이 확대됐고, 지역독점을 고착화해 오던 배관 이용도 공동이용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수출국과 수입국의 교차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이에 더해 20세기 말 신자유주의 바람은 공공부문의 민영화와 규제완화로 이어져, 각국의 전력 및 가스산업의 자유화와 경쟁도입이 큰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1999년 정부는 가스산업 구조개편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2001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가스공사 노조의 반발과 2004년 5월 제13대 국회의 회기종료로 법안은 자동폐기 됐다.

장차 가스산업의 구조개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해관계자들과 충분한 협의 후 추진함이 바람직하다. 비록 세계 가스시장이 종전보다 많이 유연화 됐지만 아직도 공급자시장에 가깝고, 민영화 내지 자유화할 경우 경쟁으로 얻을 이익도 크지만, 구매력 분산이 우리 측 협상력을 떨어뜨릴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대세를 이루고 있는 두 가지 구조조정 방식은 훗날 정책 결정에 참고가 될 것이다.

첫번째는 가스공사를 인위적으로 3개의 회사로 나누는 강제 분할방식, 그리고 두번째는 가스공사를 분할하지 않고 다른 회사들을 LNG도입 및 도매부문에 참여시켜 경쟁을 촉진하는 신규 진입방식이다. 전자는 호주 및 아르헨티나 등에서, 후자는 EU, 미국, 일본 등에서 선호되는 방식이다.

가스도 석유와 같이 생산지역이 편재돼 있어 비상시에는 공급 절벽을 만날 수 있다. 지역 분쟁으로 수출국 생산시설이 파괴될 수 있고, 1970년대의 석유파동처럼 정치적 이유로 공급중단을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LNG의 안정적 도입은 국가 안보에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가급적 중장기 계약으로 필요한 물량을 좋은 조건에 가져와야 하고, 특정국가에 치우치지 않는 ‘도입선 다변화’가 필요하다.

한편 한국의 LPG산업은 LNG에 비해 각종 세금과 의무비축 부담이 있고, 유통단계도 길어 가격경쟁력이 열위에 있다. 또한 유통체계가 낙후돼 인건비와 배송비 상승으로 경쟁력이 취약하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도시가스 배관이 들어가지 않은 지역이 아직도 가구 기준 약 40%인 현실을 감안할 때, 에너지원의 다변화 및 영세 서민층을 위한 LPG산업의 경쟁력 제고방안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참고로 2019년 2월 현재 한전의 에너지 원별 전력구입 단가는 kwh당 원자력이 65원, 석탄이 97원인데 비해 LNG는 143원, 신재생에너지는 평균 222원이다. 가스산업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지만, 값비싼 에너지임을 항시 잊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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