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기고]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⑦ 석유정책의 두 측면
[연재기고]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⑦ 석유정책의 두 측면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승인 2019.05.23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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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신문] 김신종 고려대학교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는 행정고시 22회 합격 이후 산업자원부 및 환경부 등에서 오랜 기간 공직에 몸담았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다. 본지는 에너지의 기원에서부터 미래 에너지 전망에 이르기까지 김신종 교수의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통찰력이 담겨 있는 ‘김신종의 에너지 이야기’를 연재한다./편집자주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 김신종 고려대 에너지환경대학원 교수

석유는 ‘상품’인 동시에 ‘전략물자’이기에 위기에는 국가안보 차원, 평시에는 시장기능 정상화 차원에서 그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석유위기를 기간별로는 단기와 중장기, 내용별로는 가격과 수급 위기로 나눌 수 있지만 그 구분이 명확하지는 않다. 지난 정책들을 체계화해 놓으면 향후 실제 상황에서 활용 가능할 것이다.

21세기 초에 1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고유가가 거의 7년간 계속됐다. BRIC’s의 고도성장과 베네주엘라, 나이지리아, 이라크 등 석유국가(Oil State)들의 정세불안, Major와 OPEC의 감산, 허리케인, 석유의 금융자산화 등 크고 작은 사건들이 뒤엉켜 공급부족이 장기화됐기 때문이다. 이전의 국제유가 상승은 대부분 중동지역 정세불안 때문이었고, 짧으면 2~3개월, 길어야 6개월 이내에 안정을 되찾았었다.

정부는 2003년 1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경제안정화 대책’, 2004년 4월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상황별 대응방안’을 각각 발표했는데 국제원유가의 기준선을 설정해 1,2,3단계로 나누고 1,2단계의 대응수단으로 법인세·관세·석유수입부과금 인하, 비축유방출, 석유수급조정명령을 실시했다. 3단계는 배급제, 등화관제, 차량통행제한 등 소비절감 조치와 유가완충자금 집행으로 대응 수준을 격상해나가는 내용이었다.

2003년 3월 ‘석유위기대응계획’은 에너지비상대책반의 구성·운용, 단계적(자발적‧강제적) 에너지 소비절약시행, 비축유 방출, 최고가격고시제, 유가완충자금 집행, 단계별(부분‧전면) 석유수급조정명령, 해외유전 생산석유 반입, 석유품질기준 완화, 제한송전, 석유배급제 등이 담긴 보다 실무적인 내용이었다.

2004년 5월 ‘최근 국제유가 동향과 대책’은 그 대책에 산업정책의 색채가 더해졌다. 에너지 다소비 산업부문을 찾아내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로의 이행을 촉진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비중 상향(2.3%→5%), 석유의 자주개발율 확대(3%, 2400만배럴→10%, 1억배럴), 소요재원의 조달을 위한 에너지특별회계의 징수대상 확대, 불요불급한 환급이나 면제분 환원, 일반회계나 다른 금융자금의 이용 확대 등을 포함했다.

장차 실제상황이 발생하면 대응방안이 국무회의 등에서 결정되겠지만 그때 취택할 세부내용을 미리 설정해 놓은 것인데 앞으로도 국내외 시장상황과 잘 결부시켜 부단히 진행형으로 보완,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1974년에 설립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OPEC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국들이 OECD 산하에 설치한 조직이다. 핵심 업무는 국제시장에서 석유공급에 문제가 발생하면 비상 공급물량을 배당·조정하는 일이다. 회원국들이 미국의 전략석유 비축분(SPR)과 같은 비축을 시도하고,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수요를 줄이는 한편 공조체제를 기반으로 비축유를 방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1979년에 한국석유공사를 설립, 1980년부터 석유비축사업을 추진해왔다. 1차 사업(1980~1988)은 4개의 비축기지 건설 및 목표 지속일수 60일분이었는데 실제 66일분을 달성했고, 2차 사업(1990~1993)은 6개 비축기지 추가 건설 및 민간 사업자에게도 비축의무 부여했는데 실제 지속일수 106일분(정부 50.7일분, 민간 55.5일분)을 달성했다.

3차 사업(1995~2008)은 8개 기지 추가 건설이었으며 실제 지속일수 135일분(정부 72일분, 민간 63일분)을 달성했다. 참고로 IEA 회원국들은 1990년 걸프 위기, 2005년 허리케인, 2011년 리비아 내전 시기에 비축유를 실제로 비상 방출했다.

한편 에너지 안보를 위해 원유도입선 다변화정책을 새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1913년 윈스턴 처칠은 의회에서 “한 가지 품질에, 한 가지 공정에, 한 나라에, 하나의 루트에, 하나의 분야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석유의 안전과 확실성은 다양성에 있고, 다양성에서만 석유는 그 의미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의 관련 정책은 1974년 5월에야 수립됐다. 1,2차 석유파동 당시에는 Major가 국내 소요 원유를 독점 공급하는 상태에서 사우디, 쿠웨이트, 이란 3개국에서 100% 도입했는데, Major의 공급능력이 타격을 받자 한국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후 원유도입선 다변화정책으로 1982년부터 동남아, 에콰도르 등에서도 원유가 도입돼 1985년에는 중동의존도가 57%까지 내려갔으나, 국제유가 등락에 따른 잦은 인센티브 변경으로 2005년부터 80% 이상으로 되올라왔다.

지난 5월 2일, 핵문제로 이란산 원유 수입이 중단됐다. 지난해부터 미국의 예고가 있었지만, 이번과는 달리 장차 예고 없는 수입제한 문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차제에 느슨해진 우리나라의 원유도입선 다변화정책을 제대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참고로 미국은 셰일석유 이전에 이미 원유도입선을 중동(20%내외), 남북중미, 유럽, 중앙아시아 등으로 다변화했고, 유럽은 동서냉전 기간 중에도 중동 편중에서 러시아(30%상한)로 다변화했으며, 중국도 산유국이지만 고도성장으로 소요량의 40% 를 해외에서 수입하게 되자 중동, 러시아, 중앙아시아로 다변화했다.

한국은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 상태에서 자동차 2000만여대가 운행되고 하루 약 200만배럴씩 페르시아만 석유를 해로로 반입하고 있는데, 그 수송거리(부산-쿠웨이트 기준)는 무려 6350해리이다.

역대 정부는 원유수송로의 안전을 미국 해군에 의존하며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으나, 동지나해와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해양경계를 맞대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1993년부터 중국이 석유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바뀌자 경쟁하듯 해군력을 증강하고 있다. 근간 대내외 상황을 고려하면 우리나라도 에너지와 식량의 수송 안전을 위한 대책수립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내 석유시장은 정부가 가격, 수급, 유통질서 등을 전반적으로 관리했으나 1980년대에 자유화됐다. 정부의 관리가 느슨해지자 불법 부정거래의 폭이 커졌다. 기존 석유유통업은 엄격한 시설기준이 종전과 같이 적용됐지만 석유수입업은 제한이 없어져 일부 업자들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발했으며, 자유화 이전 유사휘발유 단속 및 정유사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해 주유소의 상표표시제(Pole Sign)를 실시했으나 공정거래위원회가 2001년 9월 ‘상표표시제 시행에 관한 고시’를 개정, ‘1업소 1상표’제도를 철회하되 실제 판매제품과 게시된 상표가 일치토록 했고 산업자원부도 석유사업법시행령을 이에 맞춰 개정한 바도 있다.

석유는 우리의 일상생활 유지에 필요한 ‘상품’이자, 국가의 존속과 발전에 불가결한 ‘전략물자’이다. 우리 국민 모두 현재 상황을 고려하며 석유의 두 측면에 상식 수준의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새삼스럽지만 오늘날 북한은 이 문제에도 기인한 난국으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체제불안은 이미 예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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